‘멧돼지 주의보’ 망가지고 다치고 사망까지…보상은 받을 수 있을까
기물 파손 보상은 불가… 상해·사망은 가능
신고 건수 1년 새 2배… ‘지그재그 도망’ 효과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전국 도심에 멧돼지가 잇따라 출몰해 주민들이 크고 작은 피해를 입고 있다. 지난 7일 새벽 경기도 의정부 한 식당에 멧돼지가 급습해 식당을 헤집으며 식기, 집기, 에어콘 등 기물을 파손했고, 지난달 11일 경북 고령군에서 농로를 지나던 70대 노인이 갑자기 나타난 멧돼지에 7곳을 물려 중상을 입었다. 이처럼 멧돼지로 인해 날벼락 같은 일을 겪으면 피해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
지난 7일 의정부 금오동 한 감자탕집에서 식사 중이던 손님 10여명은 화들짝 놀랐다. 갑자기 멧돼지 한 마리가 식당 안으로 들어와 구석구석을 헤집으며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손님들은 테이블 위로 올라가거나 맨발로 뛰쳐나가는 등 식당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그렇게 10분여간의 난동 끝에 멧돼지가 밖으로 달아나면서 상황은 일단락됐다.
식당 관계자는 “식당이 의정부에서 번화가에 속한 데다 아파트촌 한가운데라서 멧돼지가 나타나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이 사고로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철제 카트가 찌그러지고 강화유리가 깨지는 등 기물이 파손돼 식당은 손해를 입었다.
이 손실은 보상 받을 수 있을까? 날벼락 같은 일이지만 보상 받을 수 없다. 환경부 자연정책과 관계자는 “현재 멧돼지 등 야생동물로 인한 기물 파손에 대한 보상 규정은 없다”고 밝혔다. 야생동물을 담당하는 의정부시 관계자도 “유감스럽지만 지자체 차원에서 피해를 보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화재보험에 가입할 때 야생동물 피해 특약에 가입했다면 보상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인명 피해는 어쩌나
지난해 12월 강원도 삼척시 한 야산에서 멧돼지가 마을 주민을 습격해 한 명이 숨졌다. 지난달 11일 경북 고령군에서는 밭에서 일하던 이모(78)씨가 갑자기 나타난 멧돼지에 팔과 다리 등을 수차례 물려 중상을 입었다. 이씨는 밭에서 일하고 있던 중 멧돼지가 내려와 귀, 팔, 손등, 다리 등 7군데를 물렸다.
이처럼 인명 피해가 발생할 경우에는 해당 지자체로부터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 11조에 따라 농업·임업·어업종사자의 생산활동이나 일반 주민의 일상생활 도중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피해를 입었다면 보상을 받게끔 돼 있다.
피해보상액은 상해를 입은 자에게 최대 500만 원, 사망한 경우에는 사망위로금, 장제비(장례를 치르는 사람에게 지급하는 금액) 명목으로 최대 1000만 원까지 보상 받을 수 있다. 치료 중 사망한 경우에는 신체 상해에 따라 치료비를 추가 보상받을 수 있다.
다만 입산금지구역에서 무단으로 산에 올라가 피해를 입거나 수렵 등 야생동물 포획허가를 받아 포획활동 중 피해를 입은 경우에는 보상 대상에서 제외된다. 또 시·군·구 조례 등에 의해 다른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치료비 및 사망위로금 등을 받은 경우 등은 이중으로 보상받을 수 없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자체적으로 보험에 가입해 야생동물에 대한 피해 보상에 나서기도 한다. 경북도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전 도민을 대상으로 야생동물 인명피해 보험에 가입하고 이번달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사고 시점 기준으로 경북에 주소를 둔 주민이면 보상받을 수 있도록 했고, 보험료는 전액 도비로 부담한다. 울산시 울주군도 올해 초 조례를 개정해 멧돼지, 고라니, 뱀, 벌 등 야생동물에 의한 피해보상을 인명피해까지 확대했다.
농작물도 피해 보상 대상이다. 농업인 등이 직접 경작 또는 재배하거나 양식하는 농작물, 산림작물 및 수산양식물이 멧돼지, 고라니 등에 피해를 입었다면 보상을 받을 수 있다. 피해보상금은 산정된 피해액의 80% 이내에서 최대 500만 원까지다.
멧돼지 피해 갈수록 커져
국민안전처 중앙소방본부에 따르면 2010년부터 6년간 멧돼지로 인한 농작물 피해 규모는 342억7000만 원에 이르고, 공격을 받아 숨진 사람은 6명에 달한다. 문제는 멧돼지 출현 빈도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 600~800여 건을 유지하던 신고 건수는 지난해 1700여 건으로 2배가량 증가했다.
멧돼지의 출몰이 잦아지자 주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의정부 장암동에 사는 최모(59)씨는 “최근 도심 번화가까지 나타나 밤에 다니기가 불안하다”며 “만약 멧돼지를 내 앞에서 맞닥뜨린다면 눈앞이 캄캄해질 것 같다”고 말했다.
만약 멧돼지가 나타난다면 ‘지그재그로 도망쳐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멧돼지 특성상 앞만 보고 달리기 때문에 지그재그로 달리면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이 때 큰 소리를 치거나 물건을 던지는 등 멧돼지를 자극해선 안 된다. 지그재그로 달리다가 가까운 전봇대, 나무, 바위 등 장애물 뒤로 숨는 게 상책이다. 국립생물자원관 한상훈 박사는 “멧돼지를 자극하지 않으면서 주변 시설물을 이용해 몸을 숨기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멧돼지를 정면에서 마주해 서로 눈이 마주쳤다면 움직임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뒷걸음질 쳐 주위 방어시설로 대피해야 한다. 가방 등 갖고 있는 물건으로 몸을 보호하고, 공격 위험을 감지하면 멧돼지가 올라오지 못하는 높은 곳으로 신속히 이동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