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특별 사면 노리는 경제인 “이번에는…”
재벌 총수란 이유만으로 사면 제한 …‘역차별’
[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1일 ‘경제 살리기’와 ‘국민 단합’ 측면에서 사면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박 대통령은 두 차례 사면권을 사용했지만 경제인들은 철저히 배제했다. 작년 광복절 특사 때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사면된 게 전부다. 그러나 이번 사면은 이전과 사뭇 다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올해는 유난히 돌발사고도 많고 특히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로 인한 경제사정이 녹록지 못하다. 더욱이 기업의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 기업 총수들이 상당수 자리를 비운 상황이다. 이들의 장기 부재가 투자와 고용 창출에 악재임은 자명한 사실이기에 경제인 사면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회장님들 ‘경제 살리기’ 선봉에 다시 설까?
-사면권 남용, 과거 정부에서 훨씬 많아…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당시 대기업 지배주주와 경영자의 중대 범죄에 대한 사면권 제한을 공약으로 못 박았다. 실제 집권 후 처음 실시한 재작년 설 특사에서 비리 정치인과 기업인은 일체 배제됐다. 작년 광복절 70주년 특사 때도 재벌 총수로는 최태원 SK 회장이 유일했다.
그러나 이번 사면 대상에는 이전에 비해 기업인이 늘어날 것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박 대통령이 “우리 경제가 대내외적으로 어려움이 많고 국민 삶의 무게가 무거워 희망의 전기가 필요하다”고 한 발언이 근거다. 브렉시트와 환율 전쟁, 주요 산업의 구조조정과 최악의 청년실업, 내수 침체 등 국내외 경제여건과 북핵 관련 외교·안보 분야 상황이 너무 좋지 않다. 이에 경제 살리기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기업인의 역할에 기대를 걸 것이라는 분석이다.
아울러 정치지형도 여소야대로 급변했다. 북핵을 둘러싼 외교·안보 분야도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엄청난 위기가 올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그런 만큼 국민 통합 분위기를 조성하고 국가 역량을 결집한다는 취지의 특별사면은 긍정적 효과를 불러올 전망이다.
물론 국민이 느끼는 상실감은 클 수밖에 없다. 매 정권마다 재계 인사들의 처벌과 사면을 반복하는 장면을 지켜본 국민들이다. 경제를 살리려다 오히려 국민들의 위화감만 불러일으켜 국론 분열을 조장할 수도 있다.
최악의 청년 실업, 과감한 결단 필요해
그렇다 하더라도 재벌 위주 경제체제인 우리나라 경제구조에서 경제인들의 협조 없이는 경제 활성화가 사실상 불가능한 실정이다. 브렉시트, 싸드 등 국내·외적으로 사면초가에 빠진 형세다.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박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들에 비해 사면권을 제한적으로 사용했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대통령은 각각 7번에서 9번의 사면을 남발했다. 숫자도 많게는 1000만 명을 넘겼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그동안 2회의 사면에 그쳤고 그 규모도 각각 6000명 안팎에 머물렀다. 또한 두 차례에 걸친 사면에서도 생계형 사범 위주였다. ‘재벌 총수 적극 배제 원칙’이 잘 지켜진 셈이다.
이 같은 이유로 이번 사면에 경제인이 어느 정도 포함돼야 한다는 재계와 청와대 그리고 여당의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더욱이 국민의당도 정치인과 경제인에게 다시 일할 기회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또한 특별사면이 민생사범 중심으로 진행돼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예전처럼 강경한 태도는 아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제계 사면 대상자 후보 윤곽이 어느 정도 잡히는 모양새다. ▲구본상(전 LIG넥스원 부회장), ▲김승연(한화그룹회장) ▲담철곤(오리온회장) ▲ 최재원(SK그룹 수석부회장) ▲현재현(전 동양회장) ▲강덕수(전 STX그룹 회장) ▲이재현(CJ 그룹 회장) ▲이호진(전 태광그룹 회장) ▲조석래(효성그룹 회장)등이 후보자로 거론되는 가운데 가장 유력한 후보는 김승연 회장이다. 지난해 유력한 후보로 거론됐지만 막판에 명단에서 제외돼 아쉽게 탈락한 만큼 이번에는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CJ 사면이냐 재상고냐… 갈팡질팡
이재현 CJ그룹 회장 또한 사면 대상자 후보이지만 정작 이 회장 측은 고뇌에 빠진 듯해 보인다. 특별사면은 형이 확정돼야 대상이 될 수 있기에 대법원에 재상고 준비를 하고 있는 이 회장은 아직까지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미 재상고를 포기했기 때문에 이 회장만 재상고를 포기하면 형이 확정되지만 사면을 기대하고 재상고를 포기했다가 사면 대상에 포함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는 만큼 CJ그룹은 다방면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뿐만 아니라 정치인도 사면 대상자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이광재(전 강원지사) ▲이상득(전 국회의원) ▲정봉주(전 국회의원) ▲홍사덕(전 국회의원) 등이다. 그러나 정치권 인사가 최종 사면 대상자에 이름을 올릴지는 미지수다.
한편 광복절 특별사면 대상에 음주운전 사범은 제외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14일 “경찰이 특별사면 때 음주운전 사범을 제외하는 방향으로 청와대에 의견을 전달했다”며 “정부 내에서도 이런 방침에 동의하는 분위기다”라고 밝혔다. 음주운전 사범에 대한 사면은 현 정부 들어 이뤄진 2차례 특사 중 지난해 광복절 특사에서 처음으로 실행됐다.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다. 누구를 사면 대상으로 할지는 전적으로 대통령 의지에 달려 있다. 정치적 논란거리는 될지 몰라도 법적 시비 대상은 아니다. 또한 재벌 총수란 이유만으로 사면을 받지 못하는, 역차별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현실이다.
아울러 박 대통령은 사면의 대 원칙으로 ‘국민적 역량 결집’과 ‘재기 기회 부여’를 언급했다. 이 두 원칙에 충족하고 잘못을 진지하게 뉘우치고 있다면 법의 형평성 범위를 벗어나지 않게 나라를 위해 봉사할 기회를 다시 부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물론 사면·복권된 경제인들은 그에 상응하는 경제활동을 해야 할 것이며 정부의 경제정책에도 적극 협조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사회 각계각층의 여론을 수렴해 국민이 납득할 만한 범위 안에서 사면 대상을 선정하고 이를 초석으로 경제 위기를 극복해 나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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