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만 있고 삶이 없는 최저시급 마트 노동자들

“탁상 결과물이 내 삶 좌지우지 한다” 울분

2016-07-15     이범희 기자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최저시급 수급자들을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돈이 없어 힘들어하는 삶의 단면을 다룬다. 그러면서 임금을 올려 이들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자고 말한다. 그런데 임금 인상 실체를 들여다보면 여러 이해관계의 충돌로 임금 상승분 적용이 어렵다.

그나마 소폭이라도 인상되면 다행이겠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최근 최저임금위원회가 협상을 진행 중이지만 회의를 거듭할 때마다 실망스러운 결과물만 외부로 알려진다. 그래서 최저시급 마트 노동자들의 눈물과 한숨도 마를 날이 없다.

사실상 공익위원 결정에 직접 생활해보라는 반감 드러내
지난해도 심의촉진구간 중간값으로 결정…올해도 반복

알려진 바에 따르면 최저임금 미만을 받는 노동자들이 220만 명에 달한다.
최저임금의 영향을 받는 저임금노동자는 전체 임금노동자 1931만 명 중 11.5%인 473만 명에 달한다.
이 경우는 시급 6030원(2015년 기준, 주 40시간), 월 126만 원을 받는 노동자들을 기준으로 한 수치이지만 실제 더 많은 노동자들이 시급 6030원 선상에 있다.

얼마 전 하루 16시간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던 택배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그 노동자의 연간 노동시간은 4500시간이 넘는다.
이 노동자의 월수입이 250만 원이라 하더라도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시급은 6600원 수준에 불과하다. 훨씬 더 많은 노동자들이 최저임금의 난간에 있다.

인간다운 삶 살고 싶다

강규혁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위원장은 “대형마트에는 패스트푸드 매장이 거의 입점해 있다. 롯데리아의 빅불버거 세트 가격은 6800원이다. 하지만 마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한 시간을 열심히 일해도 햄버거 세트 하나 살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먹고 사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임금이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임금이 지급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최저임금노동자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 진솔하게 적은 ‘산문집’을 소개했다.  
‘따뜻한 밥상을 꿈꾸는 최저임금 - 마트노동자의 최저임금이야기’라는 표제로 꾸며진 이 책은 민주노총 홈플러스 노동조합원들이 만들었다.

최저임금위원회의 전원회의에 앞서 자신의 삶을 다시 한 번 봐달라는 의미가 담긴 것으로 10여 명의 마트 노동자들이 자신의 삶에서 최저시급으로 버텨야 했던 쓰라린 일화(?)들을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산문집에 등장한 주인공이자 홈플러스 경기본부에서 일하는 송지원씨는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 한 최저임금 1만 원은 이룰 수 있는 꿈이다’는 꿈을 안고 살고 있다.

그는 “사고 싶고 누리고 싶은 게 참 많다. 못난 부모  한시름 덜어준다고 알바 두 탕 뛰느라 늘 지쳐 있는 두 딸랑구들 몸보신 시켜주고  가족여행도 가고 늘 부족한 생활비로  인해 대출받은 거 상환도 하며 그리 살고 싶다”고 했다.
“모두가 하나되어 싸우고 쟁취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인갑답게 사는 거다”며 동료들에게 파이팅을 외치기도 했다. 

10년 넘게 일한 구정미(47) 씨는 “수당, 상여금으로 받던 돈을 기본급에 더해서 시급이 늘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한 달에 받는 총액은 여전히 110~120만 원 수준”이라며 “이번에 최저임금이 충분히 인상되지 않으면 올해 시급이 동결될까 걱정”이라고 지적했다.

음료 부문을 맡고 있는 구씨의 하루는 오전 9시인 마트 개장 시각보다 한 시간 빨리 시작한다.
하루 평균 트럭 4~5대에 실려오는 상자에는 1.5L 음료수가 가득 들어 있다. 손님들이 들어오기 전에 가격표를 갈아끼우고 음료수 상자를 일일이 나르다 보니 허리디스크까지 걸렸지만, 해고될까 겁이 나 말도 못한다.

구 씨는 “형편 모르는 사람들은 최저임금 받고 일하느니 직장을 옮기라고 속 편하게 말한다”며 “식당에 가면 200만 원정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임금 체불도 잦은 데다 작은 식당은 쉽게 망해 일자리를 날릴까 겁이 나 직장을 옮기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구 씨의 가장 큰 고민은 두 아들. 7년 전 남편을 사별하고도 대학생으로 번듯하게 키워냈지만, 어려운 집안 형편에 그동안의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될 것 같아 걱정이다.

구 씨는 “큰아들은 사립대 진학을 포기하고 집 근처 국립대를 선택했는데, 이제 대학원 진학 희망마저 포기하려고 한다”며 “막 제대한 둘째 아들도 복학을 포기하겠다고 했다”며 답답해했다.
시화점 소속 임숙희씨는 “계산원으로 다닌 지 13년 해마다 월급이 오르긴했다 100원  150원  200원…세금에 붙잡힌 월급은 올랐다고 하는데 매번 그대로였다”며 “기업정부  위원님들, 반찬값 벌러 회사 다닌 것 아닙니다. 이 월급으로 살아보기 한번  해보세요”라며 탁상행정의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는 노·사·공익 합의로 최저임금이 결정된 것이 2009년 이후 단 한 차례로 없었던 것을 꼬집은 셈이다.

노동자 희망 결국 내년에…

이듬해부터는 노동자 또는 사측의 불참이나 기권 속에 공익위원안을 표결에 부쳐 최저임금을 결정했다. 7번의 중재안에서 결과적으로 6번 사용자측 인상안 쪽으로 기울었다.
올해도 마찬기자다. 공익위원의 표결에 결과가 나왔다. 그것도 소폭으로 인상 돼 또 다시 최저임금 노동자들의 윤택한 삶은 내년 협의를 기대해야 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한편 최저임금위원회는 노동자·사용자·공익위원이 각각 9명씩 총 27명으로 구성된다. 노사 간 견해가 첨예하게 대립할 때는 결국 공익위원이 캐스팅보트를 쥐는 구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