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을 부르는 소리 ‘층간소음’…외국선 이렇게! 우리는?
2016-07-08 권녕찬 기자
선진국, 경고 3번에 강제퇴거·벌금 수백만 원까지 부과
처벌 수위↑·층간소음 관리위원회 구성해 해결 주도 절실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지난해 7월 경기도 부천에서 층간소음 살인사건이 발생한 데 이어 지난 2일 경기도 하남의 아파트에서도 층간소음을 참다못한 한 남성이 위층 주민을 살해했다. 층간소음은 폭력을 넘어 살인을 유발할 만큼 심각한 사회 문제로 비화되고 있지만 뚜렷한 해결책은 다가오지 않는다. 한편 선진국은 소음을 지속적으로 유발할 경우 강제퇴거 조치, 가중 벌금 등 강력한 법적·제도적 규제를 마련해 시행 중이다.
미국의 대도시 뉴욕에서는 ‘뉴욕시 법전(Local Laws of The City of New York)’에 따라 타인의 생활을 방해하는 정도의 지속적인 소음을 내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이를 어길 경우 ‘강제퇴거’ 규정을 정해 놓고 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피해자의 항의 편지나 의견을 받으면 소음 유발자에게 2회까지 경고를 할 수 있고, 3회 이상일 경우 강제퇴거 조치할 수 있다. 위반 횟수에 따라 벌금이 부과되며 계속 위반 시 벌금 수준이 점차 높아진다. 소음유발 시간대별로 아침 7시~밤 10시 사이에 1차 위반 시 40여만 원, 2차에는 80만 원, 3차에는 120여만 원의 벌금을 물게 되는 식이다. 밤 10시~아침 7시 야간에는 벌금의 강도가 더 세다.
뉴저지주는 1차적으로 최대 약 300만 원 미만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으며, 이를 무시하고 지속적으로 소음을 유발할 경우에는 최대 금액을 넘지 않는 선에서 벌금을 가중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을 마련해 시행 중이다.
독일의 경우 ‘연방질서 위반법’에 이웃을 괴롭히거나 타인의 건강을 해치는 소음의 배출은 위법이라고 명시하고, 이를 위반하면 최대 630만 원까지 과태료를 부과한다. 영국은 1996년에 제정된 ‘소음법(Noise Act)’에 의거, 특히 밤 11시부터 아침 7시까지 야간 소음에 대해 엄격히 규제한다. 각 지방 자치단체는 소음관련 전담부서를 두고 소음 신고에 따라 경고 및 누진 벌금을 부과한다.
호주는 소음에 대한 규정이 더 까다롭다고 알려져 있다. ‘환경보호법(Environment Protection ACT)’에는 주거 공간내의 소음 기준을 주간 40dB, 야간 30dB로 정하고 있다. 또 아파트 입주 계약서에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어떤 소음이 허용되는지 규제 항목이 정확하게 명시돼 있고, 소음 유발자에 약 50만 원까지 벌금을 부과한다.
법적·제도적 제재 미비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층간소음에 대한 법적·제도적 제재가 미비한 상황이다. 경범죄 처벌법에 따라 악기나 전자기기 소리를 크게 내거나 노래를 크게 부르는 등의 소음을 유발할 경우 처벌할 수 있지만 벌금 기준이 10만 원 이하로 낮고, 처벌을 결정하는 소음 기준이 명시돼 있지 않다.
이런 가운데 층간소음에 대한 사회적 갈등은 계속 커지는 모양새다. 층간소음으로 인한 이웃 간 다툼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환경부 산하 소음 민원 콜센터인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에 따르면 민원 건수가 2012년 8795건에서 지난해 1만9278건으로 대폭 증가했다. 서울시 공동주택 층간소음 상담실의 건수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년간 856건이었던 상담이 올해 6개월 동안만 500여건의 상담이 접수됐다.
문제는 층간소음이 살인까지 유발하는 사례가 갈수록 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일 경기도 하남의 한 아파트 20층에서 거주하던 김모(34)씨가 위층에 사는 노인 박모씨(68·여)를 흉기로 마구 찔러 살해했다. 지난해 7월에는 경기도 부천 원미구 연립주택에서 층간소음 문제를 제기하는 아래층 이웃에게 화가 난 위층 사람 A씨(49)가 아래층에 사는 B씨(21)와 B씨 어머니(50)에게 흉기를 휘둘러 B씨가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고, 2013년에는 중랑구 한 아파트에서 설 연휴를 맞아 부모를 뵈러 온 30대 형제가 층간 소음 때문에 이웃과 다투다 흉기에 찔려 숨졌다.
제도 강화·공동체 의식 필요
전문가들은 우선 층간소음으로 이웃과 분쟁이 발생하면 제3자를 통해서 해결하라고 조언한다. 서울시 층간소음 상담실 관계자는 “해당 주민과 직접 대면할 경우 감정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이 크므로 관리인이나 집주인 등 제3의 인물을 통해 풀어가는 게 좋다”고 권고했다.
또한 층간소음 문제를 상담하고 중재해주는 각종 기관을 활용할 것을 주문했다. 한국환경공단 산하의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 시·군·구에서 운영하는 ‘공동주택관리 분쟁조정위원회’, 비영리 시민단체 ‘아파트 주거문화개선 시민운동본부’의 문을 두드리면 도움이 된다.
이어 전문가들은 현행법에서 규제를 더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 주택법 44조에는 공동주택에 사는 주민들은 주거생활의 질서 유지를 위해 공동주택관리규약을 만들고, 층간소음 분쟁을 방지하는 자치 조직을 구성할 수 있도록 돼 있다. 하지만 주거문화개선 시민운동본부에 따르면 이러한 ‘층간소음 관리위원회’ 자체 구성율은 전체 20%도 안 되고, 활발히 활동하는 곳은 5%도 되지 않는다. 지키지 않아도 제제 조항이 없어 실효성이 없는 탓이다.
차상곤 주거문화개선연구소장은 “층간소음 운영규칙 제정과 관리위원회를 구성해 활동 결과를 보고하게끔 하고 지켜지지 않으면 벌금 등 페널티를 부여하는 등의 강제 조항을 추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층간소음 관리위원회는 이웃사이센터의 축소판”이라며 “입주민들이 관리위원회를 자체 조직하고 직접 참여해 의견을 모아 해결해 나가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더불어 이웃간 배려가 근본적으로 바탕이 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층간소음으로 빚어진 범죄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이유는 남을 배려하지 않고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성향 탓”이라며 “이들의 갈등을 조정하기 위해 강력한 법적 규제를 제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끼치는 부분에 대해 이해하고 서로 조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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