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전탑에 걸려도 탄다!’ 목숨 건 ‘비행’ 이대로 괜찮나
물 속에 빠지고 하늘서 떨어지고… 패러글라이딩 안전사고
2016-07-08 변지영 기자
비행 자격증 한 번 취득하면 평생 교육 필요 없어
스릴에 가려진 안전 불감증…안전 교육 제도화 절실
[일요서울 | 변지영 기자] 무더운 여름철이 다가오자 하나둘 무더위를 날릴 수 있는 이색 레저 스포츠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비슷한 레저 스포츠들이 늘다 보니 좀 더 독특한 운동을 찾으려는 수요도 증가했다. 그런데 이 독특함이 지나쳐서 목숨을 잃는 경우까지 생겨나고 있다. 사전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거나 안전장치를 착용하지 않고 스릴과 재미만을 추구하는 레저 스포츠는 자칫 목숨을 건 위험천만한 모험이 될 수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레저 활동이라고 하면 산을 찾는 등산족을 떠올리기 마련이었다. 최근에는 여가 시간에 실내 공간에서 벗어나 활동적인 레저 스포츠를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수요가 늘고 있는 신종 레저 스포츠에 짜릿함이 더해져 새로운 종류의 레저 스포츠나 전문 장비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새로운 사람들과 다양한 아웃도어 활동을 함께 즐기고 소통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레저 스포츠는 보통 레포츠로 불린다. (여가를 뜻하는 leasure 와 운동 sports 의 영어 합성어) 여가시간에 신체활동이나 정신 건강을 증진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하는 스포츠 활동을 말한다.
레포츠를 함께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소셜플랫폼프립(Social platform Frip)의 관계자 한여울(가명·27)씨는 “여름철을 맞아 뻔하고 진부한 것을 타파하고 좀 더 스릴 있는 이색 레포츠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며 “전문 기기를 이용하거나 시간을 투자해 전문적으로 배워야하는 레포츠에 관심을 갖는 고객 문의가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미에 치우쳐 안전 수칙 간과해
그러나 봇물 터지는 레포츠 수요에 비해 안전 관리 시스템은 체계적인지 의문이다. 자극적인 레포츠들은 위험요소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안전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난해 동력 패러글라이딩으로 두 명이 사망한 데 이어 올해 들어 7월 현재까지 벌써 2명이 사고로 숨졌다. 최소 안전장치인 안전모도 사용하지 않는 업체가 많다.
바람에 의지해 하늘을 나는 패러글라이딩은 스릴을 즐기는 이들에게 적격이다. 그러나 최근 한 달 간격으로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던 이들이 잇달아 사망하거나 다치는 사건이 발생하자 이를 둘러싼 안전성 논란이 일고 있다.
3일 시흥시 소래포구 방산대교의 인근 패러글라이딩장 상공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하던 백모(61)씨가 10여m 아래로 추락해 숨졌다. 경찰 관계자는 백 씨가 다른 회원들에게 인사하기 위해 상공에서 패러글라이딩을 360도로 돌리던 중 중심을 잃어 사고가 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백 씨는 패러글라이딩 경력이 1년 3개월로 지난해 3월 국토교통부 항공운항 승인을 취득한 후 동호회 회원들과 패러글라이딩을 즐겨왔다.
패러글라이딩 대회에서도 이틀 사이 2명의 참가자가 잇달아 고압 전선에 걸리는 사고가 있었다. 5월 6일 고창군수배 패러글라이딩 대회에 참가한 유모(15)군은 패러글라이딩 장비가 송전철탑 고압전선에 걸리는 위험천만한 사고를 겪었다. 전문 실력을 갖춘 패러글라이딩 선수도 예외는 아니었다. 7일 김모(54) 선수는 경각산 활공장에서 고창 방장산으로 가는 비행 중 돌풍을 만나 나무에 걸리기도 했다.
동력 패러글라이딩 추락 사고가 잇따르면서 의무 안전교육 및 장비 안전점검 신설 등 대책 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대회를 주관한 대한행패러글라이딩협회는 이와 같은 지적에 이틀 연속 사고는 유감이지만 안전 규칙에 따라 대회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협회 관계자는 “봄철에는 갑작스럽게 돌풍이 불어 패러글라이딩 중에 한두 차례는 비상 낙하산을 펼치는 경우가 있다”며 “국제 기준에 따라 경기 전 기상상태를 살펴 대회를 진행하며, 대회 중간에도 선수들의 의견을 참고해 안전에 위험이 있을 경우는 즉시 대회를 중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년째 패러글라이딩을 즐기고 있는 강모(33)씨는 “패러글라이딩은 바람의 방향과 강도에 따라 변수가 많아 사전 교육과 안전 규칙을 준수해야 사고를 막을 수 있다”며 “일부 레포츠 업체에서는 당일치기로 체험하려는 사람들에게는 별다른 교육과 안전 규칙을 고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그는 “초반 6개월 정도 배워 어느 정도 탈 줄 알게 되면 과감한 시도들을 하게 되는데 이때 사고가 많이 발생한다”며 주의를 요구했다.
대한레저스포츠협의회 명재선 총재는 “우리나라 레저 스포츠 업체들은 안전은 뒤로 미뤄놓고 단순히 돈벌이 수단으로만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레포츠 업체를 선택할 때 지나치게 싼 곳에 집착하다 보면 안전은 뒷전으로 밀릴 수 있으니 지나치게 저렴한 가격을 부르는 곳은 지양하라고 조언한다.
허술한 안전 매뉴얼
현행 항공법에 따르면 동력 패러글라이딩인 초경량 비행 장치 자격증은 한 번 취득하면 평생 의무 안전교육이나 장비 안전점검을 받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동력 패러글라이딩 사고 가운데 약 30%가 불안정한 기상 여건 때문이고 주로 조종자가 장비를 미숙하게 다루거나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았을 때 발생 빈도가 높다고 지적한다. 또 안전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끌 컨트롤 타워의 부재도 문제라고 언급한다.
국내 동력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는 패러글라이더는 700명 정도로 파악되고 있지만, 한국동력패러글라이딩협회에 가입한 정회원은 불과 100여 명에 불과하다. 협회에서는 정회원에게 매년 2회 안전교육과 정기 장비 검사 등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협회에 가입하지 않은 대부분의 비회원은 안전교육 등의 제도권에서 벗어나 있어 안전비행 조종이나 비행금지 규정을 지키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H 패러글라이딩동호회의 비행단장 김모씨는 “언제나 패러글라이딩은 바람이란 변수가 있다. 경험이 적은 상태로 혼자 비행하는 것은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또 현재 “관련 항공법을 강화하거나 패러글라이더들에게 안전교육 등 매년 일정 시간 이상의 교육을 반드시 이수하도록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위험 알고 즐겼다면 사고 시 40% 책임
안전 규칙과 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고 레저 스포츠를 즐길 경우, 일어나는 사고에 대해서는 개인의 책임도 크다.
실례로 2012년 수상스키를 타다 어깨를 다친 A 씨 개인에게도 40%의 사고 책임이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A 씨가 레포츠 특성상 위험한 운동임을 알고 즐겼다는 것이다. 담당 판사는 “A 씨도 위험성을 인식했고 그 위험성을 감수한 상태에서 수상스키를 탄 것”이라며 “수상스키와 같은 수상레포츠는 재미를 위해 위험성이 내재된 활동이란 특성을 고려해 40%의 사고 책임을 물었다”고 설명했다.
한국체육대학교 레저스포츠학과 안성환 교수는 “결국 안전문제는 소비자와 운영업체의 안전 불감증에 있다”며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효율적이고 통일된 매뉴얼과 이를 의무화하는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bjy-0211@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