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 취재] 이정현 KBS 녹취록 ‘음모론’ 대두
[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새누리당 이정현(58·3선·전남 천) 의원이 8·9 전당대회 당 대표 선거 출마 의사를 밝혔다. ‘세월호 보도 개입 사건’의 당사자로 지목돼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는 이 의원이다. 당 대표 출마가 성급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녹취록 공개 시점이 절묘했다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박 대통령의 임기 말 레임덕이 가시화되고 있고 당 대표 선거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시점이다. 야당과 비박계가 ‘21세기 노론’ 친박계를 상대로 ‘환국’하기 위한 음해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면초가 빠진 이정현… 누가 죽이려 하나?
-언론 악용 사례 과거 야권에 더 많아
당 대표 출마 의사를 밝힌 이정현 의원 앞에는 ‘새누리당의 신데렐라’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보수당의 불모지인 호남에서 ‘박근혜의 입’으로 불리는 이 의원의 당선을 예측한 사람은 없었다. 실제 이정현 의원은 호남의 마음을 얻기까지 3번의 실패를 딛고 일어섰다. 이를 두고 당 안팎에선 이정현 의원의 정치인생을 빗대 ‘보수당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이러한 이 의원이 최근 불거진 세월호 보도 통제 관련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청와대 홍보수석으로 재직 당시,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해 세월호 관련 보도 자제를 요청한 내용의 녹취록이 공개된 것이다.
시기 적절히 공개된 녹취록 野 ‘정치 공세’?
이에 야당은 정부의 명백한 ‘언론 통제’라며 원색적 비난을 쏟아부었다. 또한 이 의원에게는 당 대표 출마를 포기하고 자숙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내는 가운데, 이 전 수석의 통화 녹취록이 때마침 지금 시점에 공개된 것은 야권의 ‘정치 공세’ 일환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녹취록은 지난 2014년 4월에 일어난 이야기인데 왜 지금에야 이 파일의 녹취록이 공개되었으며 이 파일이 공개됨으로써 이익을 보는 집단은 누군가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주언 전 KBS 이사와 김시곤 전 보도국장의 발언이 의문의 불씨를 키웠다. 김 전 이사는 한 라디오에 출연해 “김시곤 전 국장이 세월호 참사 이후에 길환영 사장하고 갈등을 빚어 사표를 종용 받았다. 그 당시부터 시작해서 김 전 국장이 녹취파일을 가지고 있고 이 외에도 김시곤 비망록이라고 해서 여러 가지 자료들을 가지고 있던 사실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김시곤 전 보도국장은 사장이 사표를 종용한 것은 ‘대통령의 뜻’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호사가들 사이에선 김 전 국장이 세월호 참사 직후 길환영과 사이가 틀어지자 통화 녹음을 시작한 것이고, 비망록을 쓰면서 자료를 모은 후 한동안 묵혀뒀다가 총선 결과가 야당 압승으로 나오자 자료를 넘겨준 것 아니냐는 의심이 끊이질 않고 있다.
홍보수석 업무 수행 위한 ‘읍소’ 였을 뿐
더욱이 한 방송 관계자는 “녹음을 했다는 것은 결국 나중에 공개할 의지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본인은 자기에게 불리해질 얘기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며 “이 전 수석이 실수를 한 것은 맞지만, 대통령 일이라면 앞뒤를 안 가리는 이 전 수석이기에 그의 말하는 방식 등 개인적 특성을 아는 사람으로서 이건 (보도 통제가 아니라) ‘읍소’였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어 그는 “홍보수석이 언론사에 전화는 당연히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홍보수석은 언론에 대응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본연의 임무”라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청와대가 언론에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관여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과거 이명박 정부 시절 야당의 ‘광우병 선동’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당시 PD 수첩 책임프로듀서인 조능희 PD등 제작진은 2008년 4월 29일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라는 방송을 방영했다. PD 수첩은 그해 5월 13일과 7월 15일 추가 보도까지 했다.
이에 협상을 주도했던 농림수산식품부가 해당 방송으로 신뢰와 명예가 훼손됐다며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 및 반론 보도를 청구한 사건이 있었다. 실제 이 방송을 시발점으로 광화문에는 촛불을 들고 시위하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걸리면 100% 사망한다. 뇌에 구멍이 나서 고통스럽게 죽는다. 영화에 나오는 좀비처럼 미치게 된다는 등의 유언비어가 난무했지만 현재 한국은 동아시아에서 쇠고기를 가장 많이 먹는 나라가 됐다.
이 뿐만 아니라 김대중 정권 시절 ‘햇볕 정책’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신랄히 비판하던 한 언론사는 보복성이 강한 세무조사를 받아야만 했다. 일각에서 이번에 터진 ‘세월호 보도 개입’사건을 걸고넘어지려면 과거 야당이 언론을 악용한 사례도 들춰내야 할 것이라는 날선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한편 오는 8·9 전당대회 출마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입장을 표명했던 친박계 맏형 서청원 새누리당 의원이 장고에 들어가며 ‘진박’과 ‘범친박’ 간 균열이 현실화될 전망이다. 서 의원 주변에서는 ‘100% 불출마’였던 기류가 급변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오히려 여러 명의 친박계 인사들이 동시에 뛰어서 표를 긁어모은 다음, 최후 단계에서 단일화를 통해 표를 모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는 분석이 나왔다. 결국은 서청원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반면 비박계는 총선 책임이 있는 서청원 의원이 출마할 경우 ‘총선 책임론’을 앞세워 비난을 이어갈 것이 자명하다. 즉 당 대표 선거에서 30%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 대국민 여론조사에 사활을 걸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한 김용태 의원은 정치인 대 젊은 정치인, 구세대 정치인 대 신세대 정치인으로 대립각을 세워 본인을 부각시킬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박계의 응집력이 친박계에 비해 현저히 낮다는 것이 약점이라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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