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타이어 집단사망 사건, 또 다른 의혹 드러났다
생산공장 죽음의 연기 ‘흄’ 발생·은폐 논란…새로운 역학조사 요구 중
[일요서울|강휘호 기자] 한국타이어 집단사망 사건의 실체가 또 다른 의혹으로 뒤덮이고 있다. 해당 사건은 2006년 한국타이어 대전공장과 금산공장 등에서 노동자 14명이 숨을 거둔 사건을 말한다. 특히 이들은 역학조사를 실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원인조차 밝혀낼 수 없었다. 그런데 당시 실시된 역학조사에서 상당수의 유해물질이 검사 대상에서 제외됐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아울러 한국타이어 산재협의회는 이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이 고의로 은폐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일요서울이 이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노동자들 폐섬유증, 비인두암, 뇌종양 등 다양한 병력
환기조차 안 되는 공장, 유해물질 검사해달라 문제제기
한국타이어 산재협의회가 제공한 사망자 명단을 살펴보면 1992년부터 현재까지 암이나 뇌, 심장질환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된 노동자들은 총 131명이다. 이들의 병명은 정신질환, 특발성 폐섬유증, 비인두암, 뇌종양, 재생불량성 빈혈, 패혈증 등 다양하다.
더욱이 이들 대다수가 산재 판정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문제로 지적된다. 박응용 산재협의회 회장은 “노동자들이 건강을 잃고, 목숨을 잃은 것도 심각한 문제인데 대부분 산재처리조차 되지 못한 것이 현실”이라고 전했다.
또 박응용 회장에 따르면 역학조사를 했을 때 유해물질 등에 대한 조사가 상당수 빠져 있었다. 일례로 타이어를 고온처리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고체성 연기인 ‘흄’과 1급 발암물질로 분류되는 ‘벤젠’ 등에 대한 조사가 실시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이와 관련해 한 언론은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2008년 타이어공장 근로자 7000여 명을 대상으로 역학조사를 실시한 뒤 공개하지 않던 보고서를 단독 입수, 보도했다. 보고서에는 흄 연기 안에 발암가능성이 있는 성분이 검출됐다고 명시된 내용이었다.
이어 보고서는 흄의 위험성은 지적했지만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며 명확한 결론은 내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영국에서는 흄 연기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사실을 명징하게 밝혔고 오래전부터 ㎥ 당 0.6mg 이하로 관리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관리기준이 명료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를 두고 한국타이어 산재협의회는 “100% 한국타이어 공장의 현실”이라면서 공장 내부를 찍은 동영상을 증거물이라고 내놓았다. 동영상 안에는 작업장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뿌연 연기가 가득 메워져 있는 모습이 들어 있다.
실내 환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모습이다. 근로자들 일부는 마스크 등 기본적인 보호장구도 착용하지 않았다. 환기 시설 설치가 의무화 돼있지만 실내 온도가 낮아지면 불량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환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박응용 회장의 설명이다. 현재 한국타이어 산재협의회는 한국타이어 노동자 집단사망의 정확한 원인 규명 및 새로운 역학조사를 요구한 상황이다.
산재협의회는 “1990년대 중반부터 계속된 노동자 집단사망에 대한 2008년 역학조사는 고열과 과로로만 이뤄졌다"며 “고려대 안산병원 직업환경의학과가 한국타이어 중증질환자 4명의 복합유기용제인 에이치브이(HV)-250의 업무관련성 평가서(진단서)를 발부함에 따라 당시 역학조사가 허위로 조작됐음이 확인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사실 확인을 위해 한국타이어와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한 관계자는 “담당자가 출장을 갔다. 오늘은 연차를 써 회사에 오지 않았다”면서 전해주겠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또 해당 담당자 역시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한편 한국타이어를 둘러싸고 불편한 주장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2008년 사건이 번졌을 당시 각계각층에서 각기 다른 시선으로 사건이 언급된 내용도 재조명된다. 한국타이어 유기용제 의문사 대책위원회는 그때부터 “솔벤트 등 유기용제에 장기간 노출돼 있으면 암 등 각종 질환이 발병한다”며 “한국타이어와 노동부는 십수 년 전부터 한국타이어 노동자들이 공정 과정에서 유기용제에 노출돼 병들고, 죽어가는 것을 알고도 이를 방치·은폐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지원 의원도 2008년 국정감사 자리에서 “한국타이어 문제는 12년간 117명이 사망했는데 노동부 산하 산업보건연구원 등 국가기관이 돌연사의 원인이 작업환경과 관련이 있다고 하고 학술계, 시민단체에서도 전부 움직이고 있다”며 “이런 문제를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고 진짜 잘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흥미로운 점은 당시 여·야의원들이 해당 사건을 놓고 공방전을 벌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대통령의 사돈기업인 한국타이어에 대해 부실한 역학조사가 진행됐다고 주장하고,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은 오히려 한국타이어가 대통령의 친인척이 운영한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10여년이 넘도록 진실공방이 이어지고 있는 한국타이어 공장 집단사망 사건이, 새로운 근거의 제기로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할 수 있을지 지켜볼 만한 대목이다. 산재협의회의 주장들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자칫 제2의 옥시 사건 또는 정재계 유착 논란까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hwihols@ilyoseoul.co.kr
한국타이어 집단사망 사건이란?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중앙연구소, 충남 금산공장 등 3개 시설에서 지난 2006년 5월부터 직원 14명이 급성 심근경색 등으로 잇따라 돌연사해 그 원인을 두고 논란을 빚어온 사건이다. 이후 2008년 8월 한국타이어에서 1년 사이 돌연사 혹은 사고로 노동자 8명이 사망한 사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세간에 알려졌다. 이에 따라 그 해 10월 대전지방노동청은 한국산업안전공단 산하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한국타이어 노동자 돌연사와 관련한 역학조사를 의뢰했다.
그 결과 연구원은 “한국타이어 노동자들이 일반 인구에 비해 심장질환으로 많이 사망한 것이 사실”이라며 “한국타이어에서 발생한 심장성 돌연사 등 질병 사망은 고열이나 과로 등 직무와 관련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던 유기용제와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화학물질에 의한 심장성 돌연사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결론을 내리면서 은폐 논란이 일어났다. 또 노동자들과 유가족들은 한국타이어 작업현장에서 사용되는 화학물질 솔벤트가 심장질환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벤젠이 함유된 솔벤트는 타이어 접착에 필요한 유기용제(세척제)로 쉽게 증발해 호흡기를 통해 흡수되며 뇌와 신경에 해를 끼치는 유해물질로 알려져 있다. 아울러 대전지방노동청이 특수건강검진 결과 재검진 대상자와 질병유소견자 등에 대해 사후관리를 소흘히 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국타이어 유기용제 및 유독물질 중독 피해자 대책위원회는 1996년부터 2006년까지 한국타이어 노동자 가운데 병으로 숨진 93명과, 2008년 이후 드러난 38명도 유기용제와 연관성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자세한 역학조사와 특별근로감독을 거듭 요구하고 있다.
<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