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녀 반려견 도살 사건 ‘충격’
수도꼭지에서 피가 ‘뚝뚝’…“너도 개처럼 되고 싶냐”
2016-06-24 권녕찬 기자
외도 의심해 반려견 무참히 살해
실형 가능성 희박…징역 ‘단 2건’
무늬만 동물보호법 ‘있으나마나’
동물 학대가 사람 학대로 이어져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지난달 ‘강아지 공장’의 실태가 밝혀져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가운데 최근 반려견 2마리가 한 남성에게 무참히 살해돼 사람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누리꾼들은 이 남성을 엄벌에 처해야 한다며 온라인 서명 운동까지 벌이고 있다. 하지만 실제 가해자를 중형에 처할 가능성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당 법 형량이 매우 낮아서다. 한국에서 동물을 학대하는 것은 재물을 망가뜨리는 일보다 죄가 가볍다. 동물들은 사실상 물건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피 좀 빠지라고 싱크대에 널어놨다. 너도 이렇게 만들어버리겠다”.
김모씨(39·남)는 동거녀 A(35)씨에게 이렇게 협박성 문자를 보냈다. A씨의 반려견 2마리를 무참히 살해하고 나서다. 김 씨는 창원시 자택에서 태어난 지 1년밖에 안 된 말티즈 2마리의 목을 흉기로 찔러 싱크대 수도꼭지에 건 뒤 A씨에게 ‘인증샷’도 함께 보냈다.
A씨의 외도를 의심했던 김 씨는 A씨가 집마저 들어오지 않자 반려견을 죽이는 보복성 살해를 저지른 것이다. 피해자 A씨는 “내 자식이 살해당한 것과 같은 심정이다. 나도 같이 죽고 싶다”면서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조사에서 가해자 김 씨는 “복수심에 사랑하는 애기들(강아지)을 숨지게 했다. 술에 취해 몹쓸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자식을 죽인 것 같은 애통한 심정이다. 후회한다”고 진술했다.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는 지난 20일 ‘동거녀의 반려견을 잔인하게 살해한 후 협박한 남성을 엄벌에 처해달라’는 청원글이 올라왔다. 24일 오전 현재 10,600여명이 서명에 동참했다. 한 누리꾼 장모씨는 “정말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잔인한 짓이다. 인간이길 포기하는 이런 행동에는 강력하고 엄한 처벌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네티즌 B씨는 “절대 용서하면 안 된다. 동물을 저렇게 잔인하게 죽일 수 있는 사람은 인간에게도 마찬가지로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역대 최고형은 ‘단 6개월’
사람들의 바람대로 김 씨는 엄한 처벌을 받을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김씨가 실형을 살 가능성은 높지 않다. 현행 법률의 처벌 기준이 낮기 때문이다. 동물보호법 제8조에는 동물학대 등을 한 자에 대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 목을 매다는 등의 잔인한 행위 ▲ 노상 등 공개된 장소에서 혹은 같은 종류의 다른 동물이 보는 앞에서 죽이는 행위 ▲ 사료 또는 물을 주지 않아 고의로 죽이는 방법 3가지 방식으로 동물을 살해했을 때 최대 징역 1년을 받게끔 돼 있다.
이는 그나마 지난 2011년 8월 당시 동물 보호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변화하고 동물 학대를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처벌을 강화한 것이다. 2011년 8월 이전에는 동물을 살해해도 500만 원 이하의 벌금이 전부였다.
10년간 동물학대 등으로 실형이 내려진 건 단 2건에 불과하다. 게다가 2건 모두 징역 6월이었다. 2014년 12월 전남 장성에서 무면허 상태로 오른손에는 운전대를, 왼손에는 8개월된 그레이하운드의 목줄을 잡고 2km 가량을 주행한 김모(47)씨에게 징역 6월의 실형이 선고됐다. 운동시킨다는 명목이었다. 차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개는 아스팔트 바닥에 끌려 찰과상을 입었다.
2011년 12월 승려 출신인 이모(58)씨가 술에 취해 길을 가던 중 남의 집에 있는 진돗개가 자신을 보고 짖는다는 이유로 담을 넘어가 진돗개를 수차례 때리고, 다시 담 밖에서 도끼를 들고 진돗개에 접근해 머리를 마구 내리쳐 죽였다. 재판에 넘겨진 이 씨는 징역 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수백 마리의 고양이를 죽여도 실형을 받지 않은 사례도 있었다. 지난해 한 50대 남성이 길거리를 떠도는 고양이를 잡아와 산 채로 끓는 물에 넣고 털을 뽑아 손질해 식용으로 판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른바 ‘고양이 공장’에서 죽은 고양이 수가 확인된 것만 600여 마리에 달했다. 하지만 지난 4월 법원은 초범이라는 이유로 집행유예 2년과 사회봉사 80시간을 선고하는 데 그쳤다.
놀라운 것은 김 씨와 이 씨의 징역 6월이 동물보호법만을 적용한 게 아니라 각각 도로교통 위반, 재물손괴죄를 더한 처벌 결과라는 점이다. 사실상 동물보호법만으로는 실형이 선고된 사례가 없는 셈이다.
이번 동거녀 반려건 도살 사건의 경우 가해 남성이 동물보호법 위반과 함께 협박죄 등을 적용받을 것으로 보이지만 실형을 선고받을지조차 의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백성문 변호사는 “협박죄는 형이 약해 실형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는 데다 협박에 흉기를 사용한 것도 아니어서 이 남성은 실질적으로 실형을 살 가능성이 별로 없고 살아도 아주 짧게 살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은 어떨까
우리나라와 달리 외국에선 동물 학대에 실형이 선고되는 경우가 많다. 미국에서는 6주된 강아지를 총으로 사살한 여성에게 징역 5년의 중형이 선고됐고, 영국은 거세마(생식 기능을 제거한 수컷 말)를 학대한 20대 남성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폴란드의 한 여성은 임신한 개를 굶겨 죽여 징역 2년을 선고 받았으며, 리투아니아에선 이웃집 개를 강물에 던진 남성에게 징역 8개월의 실형을 내렸다. 애완견이 살이 찌도록 방치했다는 이유로 10년 동안 애완동물 접근 불가 명령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동물 학대 방지를 위한 보호법도 이미 체계화 돼 있다. 독일의 경우 2002년 세계 최초로 ‘국가는 미래 세대의 관점에서 생명의 자연적 기반과 동물을 보호할 책임을 가진다’는 내용의 동물권을 헌법에 명시했다. 이는 동물을 물건이 아닌 생명으로 여긴다는 방증이며, 생명은 마땅히 법으로 보호돼야 함을 나타낸 것이다.
미국에서는 동물 수송 시 최소 28시간에 한 번씩 물, 휴식, 사료를 제공해야 하는 ‘28시간’ 동물보호법이 시행되고 있다. 연방수사국(FBI)은 올해부터 동물 학대를 살인사건과 마찬가지로 주요 범죄로 간주한다고 밝혔으며 동물 학대자 신원도 공개한다고 천명했다.
동물보호 못하는 동물보호법
현재 우리 법체계에서 동물은 물건과 동일한 취급을 받는다. 동물이 생명체가 아니라 하나의 재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법적으로 동물은 주인의 물건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동물학대의 경우 재물을 손괴하는 것과 같다. 일각에서는 오히려 동물이 재물보다 더 낮은 취급을 받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재물을 망가뜨렸을 때의 처벌은 최대 3년으로 동물보호법의 기준 형량 1년보다 높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사법 기관은 동물 학대범에게 더 높은 형량을 위해 재물손괴죄 등을 추가로 적용하는 경우도 많다.
전문가들은 동물 학대에 대한 법적 처벌 수위를 대폭 높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동물보호연합 이원복 대표는 “우리 법률이 동물을 학대한 사람들에게 너무 관대하다”며 “외국의 경우처럼 학대·상해 시 징역형은 물론 접근금지나 소유권을 제한하는 등의 법률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재물손괴죄가 아닌 동물보호법상 학대혐의를 적용해 엄중하게 처벌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일부 국회의원과 시민단체 등은 동물 학대 처벌 강화를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의원은 새누리당 문정림 의원과 함께 지난해 7월 여야 의원 39명으로 출범한 동물복지국회포럼 공동대표를 맡아 동물 보호 활동을 벌이고 있다. 현역 의원뿐 아니라 동물복지단체, 교수, 전문가로 구성된 이 기구는 19대 국회 말기에 만들어진 탓에 뚜렷한 성과는 없었지만 이번 국회에서는 동물 보호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일 예정이다. 박 의원은 “반려동물을 기르는 인구가 1천만이 넘는 만큼 관련 입법과 예산을 챙기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며 “후순위에 밀려 있는 동물복지를 조금이라도 앞당기는 데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오는 29일에 발대식을 열고 20대 국회에서 동물 복지 향상을 위한 공식적인 활동에 나선다.
한정애 더민주 국회의원도 동물보호법 개정에 힘을 보태고 있다. 한 의원과 28개 동물유관단체는 최근 야만적인 동물 생산과정 문제로 큰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던 ‘강아지 번식장’ 문제 해결을 위해 24일 오후 ‘동물 보호 컨퍼런스 & 동물보호법 개정 건의식’을 개최했다. 한 의원은 “강아지 공장 문제를 해결하려면 동물 생산업을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전환하고, 반려동물 인터넷 판매 및 광고를 금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9월 정기국회 때 개정안이 꼭 통과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또 입법 개정 활동과 함께 행정적 체계도 뒷받침 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동물자유연대 김영환 간사는 “현재 농림축산식품부에는 동물 보호를 전담할 수 있는 이른바 ‘컨트롤 타워’가 없다”며 “예산과 전담 인력이 없는 현재 상황에서 동물 보호는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김 간사는 우리 사회가 동물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직 동물을 쓰다 버리는 식의 단순 소비재로 여기는 경향이 크다”며 “우리가 가족을 돈 주고 사지 않듯 반려동물을 원할 땐 구매가 아니라 분양(입양)방식으로 하나의 생명으로서 거둬달라”고 당부했다.
동물 학대, 사람 학대로 번져
마지막으로 전문가들은 동물 학대와 사람 학대는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동물 학대가 계속되면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행동이 더 끔찍한 범죄로 이어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유소년기에 동물을 학대한 경우 성인이 돼서 연쇄살인 등 강력범죄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연쇄살인범의 특징 중에는 동물을 학대하고 애완용 동물을 죽이는 경향이 나타난다.
대표적 예로 ‘희대의 살인마’로 불리는 유영철이 있다. 노인·여성 등 20명을 무자비하게 살해한 유영철은 첫 범행 직전에 개를 상대로 살인연습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장모와 아내를 비롯해 젊은 여성 등 8명을 살해한 강호순 역시 사람을 죽이기 전 개 사육장을 운영하면서 잔혹하게 동물을 살해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그는 “개를 많이 죽이다 보니 사람을 죽이는 것도 아무렇지 않게 느껴졌다”고 진술한 바 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동물 학대 심리 속에는 가학성, 생명체 존중의식 결여 등이 있다”며 “동물을 대상으로 발현된 폭력성은 차후에 기회가 되면 그것이 사람을 포함한 다양한 생명체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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