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장애 여고생 상습 성폭행한 버스기사들 형량 고작 ‘2년’

‘늘였다 줄였다’ 형량은 고무줄?

2016-06-17     변지영 기자

 2012년부터 3년간 정신지체 여고생 성폭행해 출산까지

너무 낮다!” 일반인과 법조인 법 감정틈 넓어
 
[일요서울 | 변지영 기자] 충청남도 서천에서 시내버스로 통학하던 정신지체 여고생을 3년에 걸쳐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시내버스 기사들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가해자들은 형이 너무 높다는 이유로 항소했다가 되려 실형을 선고받게 됐다. 그러나 이마저도 징역 2년에 그쳐 형 집행 방식에 관한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또 주목받는 사건에만 반짝 형을 높게 측정하는 등 고무줄 판결이 아니냐는 비판도 일고 있다.
 
여고생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버스 운전기사들에게 항소심 재판부가 집행유예였던 원심을 깨고 실형을 선고했다. 대전고등법원은 지난 20126월경부터 지난해 2월까지 약 3년여간 지적장애가 있는 여고생을 여관이나 승용차로 데려가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충청남도 서천지역의 시내버스 운전기사 3명에게 징역 2~4년의 실형을 내렸다.
 
여고생 A(당시 17)은 지적장애 3급으로 학교를 통학하기 위해 시내버스를 이용했다. 버스 기사 B(66) 3명은 자신들의 버스를 타고 통학하는 A양의 전화번호를 알아낸 뒤 차례로 연락해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혐의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A양은 버스 기사 B씨의 아이를 임신해 출산까지 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적장애를 가진 10대 여고생을 보호하기는커녕 자신들의 성욕 해소 대상으로 삼고 임신시켜 출산까지 하게 한 이 사건은 사회적인 공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엄중한 형벌이 필요하다던 재판부는 버스 기사 3명에게 터무니없이 낮은 형량을 처분했다.
 
왜 버스기사들은
집행유예를 받았나
 
피고인들이 집행유예를 받은 것에는 A양의 지적 장애가 문제됐다. 이에 대해 원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합의했고 피해자의 정신장애로 성관계에 고의성을 파악하기 어려워 강제성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당시 피해자에게 장애가 있음을 알지 못했고 강제적이지 않았음에도 형량이 높다며 항소했다. 반대로 검찰은 형량이 지나치게 낮다며 항소했다.
 
이에 2심 재판부는 이들이 강제성을 띠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1심 판단에 동의하지 않았다. 대전고등법원 제1형사부는 피고인들이 피해자에게 정신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고 암묵적으로 서로 성범죄를 저지른 정황이 인정된다며 실형을 선고했다.
 
형량이 고무줄인 이유는
 
대법원은 20097월 판결을 내릴 때 법관의 자의적 판단으로 형량 차이가 지나치게 커지는 것을 막고 국민의 상식을 반영하겠다며 양형기준제도를 실시했지만 현실과의 괴리는 여전하다. 이 제도는 범죄 유형별로 지켜야 할 형량 범위를 정한 것으로 법관의 지나친 주관이 개입된 이른바 고무줄 판결을 막을 수 있으리라 기대됐다. 그러나 여전히 여론의 인기몰이 사건에 따라 형량의 변동은 크다. 또 판사의 깊은 고뇌 없이 양형기준에만 얽매여 형식적인 자판기식양형이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든다.
 
419일 자유경제원이 양형기준제도의 문제점과 그 해법을 찾기 위해 마련한 토론회에서 황대성 변호사는 우리나라에 양형기준제도가 시행된 지 오래된 것은 아니다. 앞으로 시행착오를 통해 제도가 정착하기를 기대한다제도를 기계적으로 적용할 것이 아니라 적어도 사람냄새 나는 판결이 선고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죄명이 무엇이건 사람들이 진짜로 원하는 것은 범죄자가 저지른 범죄에 상응하는 죗값을 치르는 것이다. 그럼에도 죄명이 형량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국민 법 감정에 맞는
양형 이뤄져야
 
양형기준에 따르면 살인은 기본적으로 1016년을 선고하도록 돼 있는 반면 상해치사는 기본이 35년을 선고하도록 돼 있다. 이 양형기준에 따르면 상해치사죄와 아동복지법위반죄가 동시에 적용된 칠곡 계모 사건에서 계모에게 선고된 징역 15년이 부당하다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러한 양형기준이 과연 국민의 법 감정과 변하는 사회에 부합하는지는 의문이다.
 
형사정책연구원에서는 올해 초 일반인 1000명과 판사 등 법조인 52명을 대상으로 ‘10대 청소년 강간 사건에 대한 적정 형량을 비교하는 조사를 했다.
 
조사 결과, 일반인의 36%는 성폭행범이 피해자와 합의했어도 실형을 선택했다. 반면 법조인들은 8%만이 실형을 결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형량은 법조인 58.8%26개월4년형을 선택했지만 일반인은 4~7년 이상(34.7%)의 중형이 적절하다고 선택했다.
 
양형기준제도는 국민들의 법 감정을 반영하고자 만들어진 취지에 맞게 국민의 법 감정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일반인 1000명 중 양형기준제도를 잘 안다는 응답은 10%에 그쳤다. “권력자는 법을 위반해도 처벌받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의견에 82.6%가 동의했다. 법집행이 공정하다는 인식도 대체로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원 측은 국민으로부터 지지받는 양형기준을 운영하기 위해선 형사사법 기관의 신뢰 회복이 중요하다거꾸로 양형기준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면 판사의 자의적 결정이라는 논란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