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 정세균-우윤근 發 개헌 공론화 앞과 뒤
개헌론’ 총론은 공감, 각론에선 동상이몽
[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20대 국회가 문을 열자마자 개헌론이 '뜨거운 감자'로 등장했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개헌의 필요성을 공식적으로 제기한 이후 정치권에서 서서히 논의가 확대되는 모양새다. 하지만 개헌론을 둘러싼 기류는 복잡하다. 여야 중진들은 물론 일부 대선 주자들까지 개헌의 필요성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지만 방식과 시기, 내용에는 극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여권은 이원집정부제를, 야권은 대통령 4년 중임제, 의원내각제, 이원집정부제를 주장하고 있고 청와대와 일부 친박 의원들은 개헌 자체에 반대하고 있다. 더욱이 개헌 논의로 자칫 경제나 민생이 소홀해질 것이란 우려마저 나온다. 정세균 발(發) ‘개헌론’이 추진력을 얻을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된다.
-여야 확실한 대선주자 없는 지금이 개헌 ‘적기’
여소야대 정치 지형에 맞춰 협치를 강조하는 목소리가 커진 가운데 ‘개헌’이라는 대사(大事)가 수면 위로 다시 떠올랐다. 정세균 신임 국회의장은 내년이면 현행 헌법이 제정된 지 30년째가 된다며 “개헌은 누군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며 개헌론에 불을 지폈다. 개헌의 핵심 내용은 권력구조의 변화다. 4년 중임제, 의원내각제, 이원집정부제가 중심 사안이다.
재점화된 개헌론… 핵심은 권력구조 개편
새누리당에서는 현행 ‘87년 체제’가 수명을 다했다는 공감대 아래 이원집정부제로 권력구조를 개편하자는 중론이 형성됐다. 김무성 전 대표와 홍문종·정종섭 의원 등 친박계 의원,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 등이 특히 긍정적이다. 이원집정부제는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외치(外治)를 담당하고, 국회에서 내치(內治)를 책임질 총리를 배출하는 체제다.
이원집정부제가 되면 외교에 강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더욱 강력한 여권 대선주자로 떠오를 수 있게 된다. 여기에 당내 주류인 친박계에서 총리를 배출할 여지도 생긴다. 친박계 내에서 ‘반기문 대통령, 친박 총리’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비박계 권성동 사무총장은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뽑기를 원하니 분권형 대통령제(이원집정부제)가 현실적 방안”이라 말하기도 했다. 이원집정부제는 권력이 분산되면서도 대통령을 직접 선택할 수 있기에 실현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다.
하지만 일부 친박계 의원들은 ‘민생 우선’을 강조하며 개헌 논의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곧바로 개헌 논의에 들어갈 만큼 국민적 합의가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며 “1987년 헌법 체제가 한계에 도달했다는 점은 동의하지만, 국민은 경제살리기 등 먹고사는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개헌 논의가 우선순위에 자리를 잡으면 국민적 동의와 추진력을 얻을 수 있겠냐”고 밝혔다.
청와대 또한 개헌 관련 반대 의견을 고수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개헌이 국정운영의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이유로 개헌 반대 의견을 지속적으로 피력하고 있다. 집권 후반기 여소야대로 재편된 정국에서 개헌론이 화두가 되면 국정 동력이 급격히 약화될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임기말 레임덕 현상을 차단하고자 함이다.
한편 야당은 사정이 훨씬 복잡하다. 야권의 유력한 대선 주자인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4년 중임제’와 지방 분권형 개헌에 긍정적이다. 이원집정부제나 의원내각제에 대해선 “정권 연장 의도가 담긴 개헌이라면 찬성할 수 없다”며 선을 그었다. ‘4년 중임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5년단임 대통령제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대통령 임기를 4년으로 줄이고 한 차례 연임이 가능한 제도다. 그러나 대통령의 권력 분산이 쉽지 않기에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많다.
의원내각제 일부 패권주의자들이 선호하는 제도
반면 더민주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를 선호한다. 내각제와 이원집정부제는 모두 국회의 권한이 극대화되는 제도다. 두 사람 모두 직접 대권을 차지하기에는 불가능한 상황에서 권력의 중심에 설 기회를 만들려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이를 두고 대통령 집권은 못하지만 국회의원은 내 맘대로 주무를 수 있는 패권주의자들이 선호하는 제도라는 비판도 나온다.
패권주의로 가면 보이지 않는 힘이 작동되어 국민의 정치 감시가 불가능해질 것이란 전망이다. 김종필 전 총리 이후 의원내각제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크지 않다. 국민의 불신이 큰 지금 국회가 모든 나랏일을 도맡아 하는 의원내각제가 실현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개헌에도 ‘골든타임’은 있다. 과거 이명박, 박근혜 후보처럼 강력한 대선주자가 존재하는 상황에선 개헌 추진이 사실상 어렵다. 하지만 지금 새누리당은 차기 주자가 안 보이는 상황이다. 헌법학자와 대다수 국회의원들이 지금이 개헌의 ‘적기’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물론 대통령의 권한을 어떻게 나눌지 각 정당과 정치인 사이 이해관계에 따라 셈이 나뉘는 상황에서 자칫 청와대가 두려워하는 ‘개헌 블랙홀’로 빠져들 개연성도 분명 존재한다. 그럼에도 국가 현행 헌법을 시대상에 맞게 어떻게든 바꿔야 한다는 당위성에는 의원들과 국민들 모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민들이 현행 헌법인 ‘5년단임제’의 폐해를 외치고 있는 상황에서 개헌론 함구는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국회와 정부가 20대 국회 개원을 맞아 한목소리로 협치를 강조하고 있다. 임기 후반 대통령에 의한 개헌 추진은 권력 연장 의도라는 의심을 살 수 있는 상황에서 국회 주도로 ‘협치’를 통한 개헌을 보여준다면 국민들의 정치권에 대한 신뢰 회복의 첫 걸음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