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는 한방보험, 표정관리 하는 보험사
치료·보약 경계 모호…손해율 우려 커져
[일요서울|박시은 기자] 각 보험사들이 ‘한방보험’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상품 출시와 함께 가입자 수가 급증하며 인기를 끌자 보험사들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보험사들은 막상 마음껏 웃지 못하는 모습이다. 한방 특성 상 치료와 보약 경계, 진료비 체계 등이 모호해 손해율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일각에서는 병원과 소비자들 사이에서 도덕적 해이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심사 기준 재정비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일요서울]은 보험시장의 뜨거운 감자인 한방보험을 살펴봤다.
아직 데이터 부족·도덕적 해이 경계
최근 한방 진료와 치료를 보장하는 ‘한방보험’이 인기가 높아졌다. 한방보험은 양방치료를 받은 환자에게 한방치료를 보장하는 전제조건을 달고, 1년 기준 최대 3회, 약침 및 특정 한방 물리요법은 최대 5회 식의 횟수 제한이 존재한다.
또 실손형이 아닌 보장한도를 제한하는 정액형 상품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뇌출혈 등 3대질병과 디스크, 자동차 사고로 인한 부상같은 일부 질환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
한방보험을 가장 먼저 출시한 곳은 현대라이프생명이다. 현대라이프생명은 지난 1월 한방보험을 최초 출시하고, 배타적사용권을 획득했다. 배타적사용권은 독창적인 상품을 개발한 회사의 이익을 보호해주기 위해 일정기간 동안 개발한 상품을 독점 판매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현대라이프생명은 상품 출시 보름 만에 판매 2000건을 돌파했으며, 한 달 동안 3000건 이상의 판매액을 올렸다.
그러다 배타적사용권 기간이 끝나면서 동부화재와 KB손해보험, 메리츠화재 등도 잇달아 한방보험 상품을 내놨다. 동부화재와 KB손해보험의 경우 상품 출시 한 달 만에 각각 9000여건과 8000여건의 실적을 올렸다. 이에 따라 동부화재는 4억7000억 원의 초회보험료 실적을 거뒀으며, KB손해보험은 4억6500억 원의 실적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아직까지는 보완해야할 점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적용 대상자가 제한돼 있고, 보장한도 및 횟수를 제한하고 있지만 ‘한방’이란 특성상 우려 요소가 여전하다는 것이다.
불경기에도 살 상품 필요
특히 치료와 보약의 경계가 모호하고, 진료비 체계가 정형화돼 있지 않다는 점이 거론된다. 심사가 상대적으로 간편한 만큼 손해율이 높아질 상황도 많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형 손해보험사들의 경우에도 자동차보험을 판매하며 확보한 데이터를 이용해 한방보험의 리스크를 보완하긴 했지만 완벽한 데이터를 확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경기가 어려워지면 가장 먼저 줄이는 게 보험이다. 이렇다 보니 최근 불황이 지속되면서 보험사들의 어려움도 커졌다”면서 “부족한 데이터와 한방 특성상의 우려 요소가 있어도 소비자들이 직접적으로 필요로 하면서, 새로운 보험 가입으로 유도할 수 있는 상품 개발이 필요한 시점이 맞물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아마 한방보험 상품도 어느 시점부터는 실손보험처럼 가입자 수가 늘어나는 게 반갑지 않은 상품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생명보험업계도 한방보험 상품 진출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어느 정도 데이터를 가진 손해보험사와 다른 상황이어서, 섣부르게 도전하기엔 손해율에 대한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또 이 같은 점을 악용한 과잉 진료 등의 도덕적 해이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가벼운 교통사고나 굳이 받지 않아도 되는 치료나 약 제조에 대한 보험처리를 요구하는 이들로 인한 손해율 상승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만약 일부 병원에서 환자에게 치료 목적 외의 첩약 처방을 추가로 해주더라도 보험사는 세부적인 진료내역서를 보지 않으면 이를 확인하기 어렵다.
개정 나선 보험사 등장
역마진 우려가 제기되는 가운데 상품을 개정하는 보험사들도 나타나고 있다.
라이나생명은 일부 GA(독립보험대리점)를 통해 한방보험을 판매해오다 지난 2일 이후 한방보험 상품 판매를 일시 중단했다. 해당 상품은 개정한 후 재판매한다는 방침이다.
KB손해보험도 같은 날 인수지침을 강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만기 갱신 기간 유형을 두 가지로 출시했지만 인수지침을 강화하면서 한 가지 유형으로만 판매하도록 바뀌었다.
삼성화재의는 다른 보험사와 달리 건강보험에 한방치료 특약을 신설하지 않고, 어린이보험에 한방치료 특약을 추가했다. 건강보험에 많이 가입하는 고령자에 비해 어린이들은 성인이 되기 전까지 한의원을 찾을 확률이 적기 때문에 리스크 최소화를 위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곧 한방보험 출시를 앞두고 있는 한 보험사의 관계자는 “새로운 상품이다 보니 시장 선점을 위한 상품경쟁력 높이기가 무리하게 이뤄지면 상품 개정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면서도 “대부분 보험사들이 출시하는 새로운 상품은 이렇게 몇 번의 개정을 거쳐 보장 범위와 갱신 기간 등이 짧아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밖에 한방 진료에 대한 수가 표준화 등 심사 기준을 정비 필요성도 높아지고 있다. 공신력 있는 통계를 만들고, 위험률 산출의 정확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 최근 한방 의료기관을 이용한 보험금 청구 환자가 늘어나고 있는 만큼 표준진료지침 마련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3년부터 자동차보험 심사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위탁된 뒤 한방병원(의원 포함)의 진료비와 환자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1년 한방병원을 이용한 환자 수와 진료비는 각각 12만4000여명, 965억 원이었으나 2014년 33만2000여명, 2369억 원으로 3배 가까이 늘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