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성추문 주역들, 지금 뭐하나

성 스캔들 고위공직자 근황 추적

2016-05-23     신현호 기자

시간 흐르자 자연스레 일상생활 복귀
새 직업 갖거나 준비 중…“아직 일러”

[일요서울 | 신현호 기자]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 추문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전직 고위공직자들이다. 그들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당시 누구보다 윤리적으로 청렴해야 할 공직자였기 때문에 이들의 도덕성은 국민의 심판대에 올라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사건은 잊혀갔다. 성 추문의 주인공들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조용히 일상으로 복귀하고 있었다. [일요서울]이 창간 22주년을 맞아 성 스캔들로 물의를 빚었던 고위공직자들의 근황을 추적했다.

‘법률사무소 인헌 변호사 김수창’. 서초동 법조타운의 한 빌딩에 차린 그의 사무실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지난해 10월 더팩트는 김 전 지검장의 최근 모습을 포착, 보도해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사진 속의 김수창 ‘변호사’는 정장 차림을 하고 뿔테 안경을 쓴 말끔한 모습이었다. 불과 1년여 전 ‘수치심으로 죽고 싶은 심정’이라던 우울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기자는 빌딩 인근 커피숍과 식당 등에 들어가 최근 그를 본 적이 있는지 물었다. 커피숍 직원은 “너무 많은 손님들이 오가기 때문에 최근에 왔었는지 모르겠다. 얼굴을 다 외울 수도 없다”고 말했다.

김 전 지검장의 존재감은 사건 2년이 채 못돼 희미해진 듯 했다. 그가 변호사를 개업한 사실 자체를 모르는 사람도 많았다. 한 식당 주인은 “최근 우리 식당에는 안 온 것 같다. 손님들도 그런 말을 하는 걸 못 들어 봤고 이 근처에 사무실을 개업한지도 몰랐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그의 변호사 사무실 개업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 빌딩 정문 앞 쉼터에서 만난 A씨는 “아무래도 사상 초유의 사건이었던 만큼 이미지가 좋을 수 없지 않겠나. 변호사 개업은 아직은 빠른 게 아닌가 싶다”면서 “지검장 출신이면 법조계 안팎에서 도움을 받아 금방 재기에 성공할 것”이라고 추측했다.

김 전 지검장은 지난 2014년 8월 13일 제주시내 대로변에서 음란행위를 하다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그는 이날 밤 11시 30분경 제주시 중앙로 모 음식점 앞과 맞은편 건물에서 자신의 성기를 드러내고 총 5차례 음란행위를 했다. 이 시각 귀가 중이던 여고생 A(당시 18세)양은 그의 모습을 목격하고 112에 신고했다.

경찰에 붙잡힌 김 전 지검장은 조사 과정에서 동생의 이름과 주민번호를 대며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관련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그러나 경찰의 지문 채취과정에서 거짓말이 드러나 그의 신분이 탄로났다. 그럼에도 그는 “경찰이 비슷한 인물로 오해한 것”이라며 끝까지 혐의를 잡아뗐다. 심지어 사건 발생 5일 후에는 서울고검 기자실을 직접 찾아 억울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건 일주일 만인 18일 사표를 제출, 법무부는 바로 수리하고 면직 결정을 내렸다. 나흘 뒤, 결국 변호사를 통해 자신의 모든 혐의를 인정했다.

경찰은 김 전 지검장에게 공연음란죄를 적용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 제주지검은 광주고검 검찰시민위원회 의견을 수렴해 같은해 11월 김 전 지검장을 치료조건부 기소유예로 처분했다.

사건이 잊힐만할 즈음,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은 서울지방변호사회에 변호사 등록 신청을 했다. 사건 6개월 뒤인 지난해 2월이었다. 그러나 자숙기간을 거쳐야 한다는 서울지방변호사회의 지적에 자진 철회했다. 다시 6개월 뒤 병원 치료 확인서 등을 제출, 변호사 입회를 허가받았다.

김 전 지검장의 변호사 등록 허가가 알려지자 법조계에서는 찬반 논쟁이 일기도 했지만, 현재 그는 변호사의 삶을 살고 있다.

‘인턴 성추행’ 공소시효 만료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2013년 5월 7~9일 박근혜 대통령 방미 당시 주미대사관 대학생 인턴 여성의 엉덩이를 움켜쥐었다는 의혹에 휘말리며 전격 경질된 후, 혐의를 부인하는 기자회견 열고 잠적했다.

그러던 중 지난해 10월, 2년 5개월 만에 그의 모습이 공개됐다. 김포에 위치한 그의 자택에서였다. 더팩트에 따르면 그는 종종 가족과 외출 및 쇼핑 등을 하며 평범한 삶을 살고 있었다. 특히 그의 외모는 완전히 달라졌다. 짧은 머리는 단발로 길렀고, 검은 뿔테 안경은 회색빛이 도는 둥그런 테와 색을 입힌 렌즈의 안경으로 바뀌었다.

그로부터 7개월이 지난 지금 그의 자택을 찾았다. 윤 전 대변인은 최근 들어 자주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윤 전 대변인과 같은 아파트에 사는 한 주민은 “예전에 한두 번 본 적 있는데 최근에는 못 봤다”면서 “(윤 전 대변인의) 부인되는 분은 상대적으로 자주 보인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다른 한 주민에게도 비슷한 말을 들을 수 있었다. 한 부동산 관계자는 “예전에 한참 사건으로 시끄러울 때는 기자들이 (윤 전 대변인의) 집 앞으로 출근을 했다. 우리 부동산에도 매일같이 찾아왔었다”고 회상하면서 “얼마 전만해도 산책을 하고 물건을 사기도 한 것 같은데 요즘엔 잘 모르겠다”고 설명했다.

아직은 일반인처럼 자유롭게 밖을 나다닐 때가 아니라고 판단한 모양이다. 특히 지난 7일 해당 사건의 공소시효가 만료돼 또 한 번 언론 등에서 이슈화 될 가능성도 있어 더 조심하는 게 아니냐는 귀띔도 있었다.

윤 전 대변인은 지난 2013년 5월 7일 워싱턴DC 숙소 인근 호텔 바에서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파견된 20대의 인턴 여직원과 술을 마셨다. 이 여직원은 호텔 바를 나온 윤 전 대변인이 자신의 방으로 데려가 술을 한 잔 더 마셨는데, 이 때 윤 전 대변인이 몸을 더듬는 등 1차 성추행을 했다고 주장했다.

여직원은 윤 전 대변인이 “허락 없이 엉덩이를 ‘움켜쥐었다(grabbed)’”고 진술했다. 여직원에 따르면 욕설을 동반한 윤 전 대변인의 성추행은 30여분 동안 진행됐다. 참다못한 여직원은 방을 뛰쳐나갔다.

윤 전 대변인은 다음날(8일) 새벽 5시경 다시 이 여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방으로 불렀다. 이를 거부하자 윤 전 대변인이 욕설을 퍼부었다. 여직원은 어쩔 수 없이 윤 전 대변인의 방에 갔는데, 이 때 그가 알몸 상태였다고 여직원은 주장했다.

이에 대해 윤 전 대변인은 여직원이 자신의 호텔 방에 들어왔을 때 속옷 차림으로 있었던 건 샤워를 하고 나왔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특히 “(여직원과) 술을 마신 건 맞지만 추행이라는 행동까지는 없었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또한 욕설이니 폭언을 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일축했다.

그러나 그가 보여준 행동은 여러 가지 의문점을 남겼다. 여직원의 신고를 받은 경찰은 윤 전 대변인을 조사하기 위해 호텔로 찾아왔다. 그러나 윤 전 대변인은 자신이 대한민국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수행하기 위해 온 외교사절단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조사에 응하지 않았다. 경찰은 윤 전 대변인에게 호텔에 머물고 있으라고 통보한 뒤 일단 돌아갔다.

이 직후 윤 전 대변인은 덜레스 국제공항으로 급히 향했다. 숙소에 있던 자신의 짐도 챙기지 않은 상태였고,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제공하는 차량의 지원도 받지 않았다.

윤 전 대변인은 자신의 신용카드로 400여만 원에 달하는 대한항공 비즈니스석 항공권을 직접 발권, 오후 1시 30분 워싱턴DC 발 한국행 비행기를 타 한국시간 9일 오후 4시 55분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이후 윤 전 대변인은 종적을 감췄다. 이를 둘러싸고 ‘미국에 있다’, ‘암 수술을 받았다’ 등의 소문이 돌기도 했지만 행방은 묘연했다.

기업 회장으로 재기 등

‘신정아의 남자’로 유명세를 치른 변양균 전 대통령 정책실장은 현재 기업인으로 변신해 활약 중이다. 변 회장은 과거 기획예산처 주요 보직에 장관까지 두루 거친 ‘경제통’으로 알려졌다. 그는 현재 옵티스그룹의 회장을 맡고 있다. 옵티스는 광디스크 저장장치(ODD)와 핵심부품인 광픽업을 연구개발 및 생산하며, 팬택을 인수한 회사로 유명하다.

지난해 6월 당시 팬택 인수를 추진하던 옵티스는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을 회장으로 영입했다. 현재 변 회장은 옵티스와 팬택을 아우르는 옵티스그룹의 전체 경영을 맡고 있다. 그는 지난 2007년 공직을 떠난 이후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IPTV140 사업을 해왔으며, 2011년부터는 셋톱박스 업체 휴맥스 고문을 맡기도 했다. 변 회장은 또 투자회사인 스마일게이트인베스트먼트 회장을 겸임하고 있다.

‘신정아 사건’은 지난 2007년 7월 당시 동국대 교수였던 신정아 씨의 학력 위조 의혹에서 시작됐다. 이후 신 씨와 인연을 맺은 미술계·대학가·불교계 인사 등으로 여파가 확산되며 문제가 심화됐다. 또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의 스캔들 등 정계로비 의혹도 불거졌다.

골프장에서 경기진행요원(캐디)을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항소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데 대해 지난 1월 상고했다. 박 전 의장은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박 전 의장은 지난 2014년 9월11일 원주지역의 한 골프장에서 지인들과 라운딩 중 담당 캐디 A(24·여)씨의 신체 일부를 접촉해 강제추행한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

박 전 국회의장은 성 추문 논란 중 건국대 석좌교수 재임용으로 또 도마에 올라 임용이 철회되기도 했다. 지난해 8월 박상천 전 민주당 대표와 이맹희 CJ 명예회장의 빈소를 조문하는 등의 일상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별장 성접대’ 의혹으로 논란이 됐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은 최근 변호사 자격 등록을 신청해 허용됐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지난 1월 20일 변호사 등록심사위원회를 연 뒤 김 전 차관의 변호사 자격 등록 신청을 받아들였다.

앞서 김 전 차관은 지난 2013년 3월 건설업자 윤모(55)씨로부터 강원도 원주의 한 별장에서 성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돼 법무부 차관에 취임한 지 6일 만에 사퇴했다. 검찰은 지난 2014년 1월 재수사까지 했지만 “동영상 속 등장인물이 피해자라고 주장한 여성으로 특정되지 않고 객관적 자료가 없다”며 김 전 차관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김 전 차관은 이후 지난해 11월 서울변회에 변호사 등록 및 입회 신청서를 냈다. 서울변회는 1차 심사를 거쳐 재심사를 열고 김 전 차관의 변호사 자격 등록 부적격 및 입회거부 결정을 내렸지만 대한변회는 이를 뒤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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