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한곡 때문에 ‘소통’ 사흘 만에 ‘대치’로
-새누리 "납득 못해… 재고 해달라"
-보수 단체 “북한 영화 배경음악으로 쓰인 종북 노래”
[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을 제창할지 합창할지를 놓고 대한민국이 둘로 갈라졌다. 정부가 올해도 5·18 기념식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의 합창 방침을 고수하면서 5·18 단체 및 야권의 강한 반발이 예상된다.
5·18 기념일이 1997년 정부 기념일로 지정된 이후 이명박 정부 첫해인 2008년까지 5·18 기념식에서는 모든 참석자들이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는 방식이 유지됐지만, 2009년부터 합창단이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면 원하는 참석자들이 따라 부르는 방식으로 변경됐다.
그간 5·18 단체들과 일부 야권 인사들을 중심으로 제창 방식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했지만 정부는 보수단체의 반대에 따른 국론 분열을 이유로 응하지 않았다.
올해는 다를 것이라 전망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3일 여야 3당 원내대표와의 회동에서 야당의 '님을 위한 행진곡'의 기념곡 지정 요구에 "국론 분열을 일으키지 않는 좋은 방안을 찾도록 국가보훈처에 지시하겠다"고 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훈처는 각계 의견을 수렴한 결과, 님을 위한 행진곡의 '제창'이 국론통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님을 위한 행진곡의 제창에 찬성하는 여론 못지않게 이에 반대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는 판단이다.
이에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16일 국가보훈처가 5·18 기념식 때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합창' 방식으로 부르기로 결정하자 "참석자 모두가 부르는 제창으로 하고 국가 기념곡으로 지정해야 한다"며 반발했다. 새누리당도 정부에 제창 불가 방침에 대한 재고를 요청했다.
더민주 우상호 원내대표는 당 회의에서 "아직 시간이 있기 때문에 보훈처장은 이 문제를 다시 검토하고 청와대는 다시 지시하라"고 말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도 "협치와 소통을 강조한 청와대 회동 합의문을 찢어버리는 것"이라며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에 대한 해임 촉구 결의안 제출 방침을 밝혔다. 더민주도 뜻을 같이 하기로 했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 또한 기자들에게 "제창을 허용하지 않은 것은 유감스럽다. 아직 이틀 남았으니 재고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민경욱 원내대변인은 "대통령이 국론 분열을 피할 좋은 방법을 찾으라고 했는데도 보훈처가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국가보훈처(당시 김양 처장)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2009년부터 공식 식순에서 뺀 뒤 식전행사 합창단 공연으로 돌렸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2008년 정부 기념행사 직후부터 보훈·안보단체에서 “특정단체들이 ‘민중의례’ 때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 묵념하지 않고 민주열사에 묵념하며 애국가 대신 부르는 노래를 대통령이 참석하는 정부 기념식에서 주먹을 쥐고 흔들며 제창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근거였다.
또한 보수단체는 ‘임을 위한 행진곡’의 작사자인 황석영 씨의 행적을 문제 삼았다. 황석영씨가 시나리오 집필을 맡은 북한의 5·18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의 배경음악으로 이 노래가 사용된 전례가 있다. 노래 제목과 가사에 나오는 ‘임’과 ‘새 날’이 영화에서 김일성 주석과 사회주의혁명을 의미하는 것이란 논란이 있어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양립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jh0704@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