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 와병 2년…그를 둘러싼 오해와 진실
진실공방 속 삼성 변화 눈길
[일요서울|박시은 기자] 2014년 5월 10일 늦은 밤 쓰러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여전히 삼성서울병원 VIP 병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의사소통은 불가능하지만 외부자극에 반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후 삼성그룹은 사실상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체제에 돌입했다. 계열사 재편 작업, 미래 먹거리 사업 돌입 등 이 부회장식 경영행보로 변화해가고 있는 것이다. [일요서울]은 이 회장의 현재 상태와 투병 기간 동안의 삼성그룹 변화를 전반적으로 살펴봤다.
구조 개편 불구 리더 공백 불안…사실상 이재용 체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후 시작된 투병생활이 만 2년을 넘어섰다.
이 회장은 2014년 5월10일 늦은 밤 서울 한남동 자택에서 갑작스러운 호흡곤란을 호소하다 인근 순천향대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 도착 직후 심장마비가 발생해 심폐소생술을 받았고, 다음 날 새벽 삼성서울병원으로 옮겨가 심장혈관을 뚫는 수술을 받았다.
심폐기능이 정상을 되찾으면서 중환자실에서 일반병동(VIP 병실)으로 옮겨간 후로 지금까지 계속 치료를 받고 있다.
현재 이 회장은 하루 13~14시간 정도는 눈을 뜨고 지내며 수면 등 기본적인 생체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의사소통은 불가능하지만 꾸준히 외부자극에 반응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서울병원 측은 “이 회장의 건강상태는 알려진 바와 같이 신체기능이 정상 수준으로 회복된 상태”라면서 “꾸준히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실제 이 회장이 의식적으로 반응하는 것인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삼성그룹 측도 이 회장의 상태에 대해 구체적인 얘기는 꺼내지 않고 있다.
자식 빼고 다 바꿔라?
이렇다 보니 2년여 동안 이건희 회장 식물인간설 등이 수시로 불거져 나왔다. 재계 서열 1위인 삼성그룹 수장의 건강 상태와 경영 복귀 가능성에 따라 삼성그룹의 주가도 영향을 받았다.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나돌 때마다 삼성그룹 측은 이를 부정하며 소문을 진압해왔다.
그러는 사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그룹 경영 전면에 등장해 이 부회장식 변화를 꾀해왔다. 핵심 사업을 중심으로 계열사 재편 작업을 진행하고, 조직문화 전반에 대한 혁신을 시도하는 등이다.
우선 한화그룹, 롯데그룹과의 1, 2차 빅딜을 통해 화학과 방위사업 계열사를 정리했다. 지난해 9월에는 사실상 그룹 지주회사인 통합 삼성물산을 공식 출범시켰다.
그룹의 상징이라 불리는 서울 태평로 사옥 매각도 추진중이다. 서초동에 있던 삼성전자 직원들을 수원 사업장으로 보냈다. 그룹 내 사업 재편도 이뤄졌다. 전자와 금융을 양대 축으로 건설, 중공업, 서비스 등에 맞춰 사업 영역을 정리한 것이다.
이 같은 이 부회장의 행보는 최고가 될 수 없는 사업은 과감히 접고 잘하는 것에 집중하는 실용주의 노선으로 평가된다. 과거 이건희 회장이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고 했다면 이재용 부회장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는 주의인 셈이다.
또 올초 대부분의 금융 계열사를 자회사로 소유하고 있는 삼성생명이 삼성카드의 최대주주가 되면서 금융지주회사 전환이 급물살을 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앞서 이 부회장은 2014년 삼성생명 주식 12만주를 취득해 주요 주주에 등재되며 금융계열사 승계를 위한 사전작업을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조직 혁신에도 힘을 쏟고 있다. 최근 삼성그룹은 ‘스타트업 삼성 컬처 혁신’을 선포하고, 빠른 의사결정을 위한 직급 줄이기에 나섰다. 또 능력이 있다면 호봉과 상관없이 승진시키겠다는 내용을 담아 벤처와 같은 초심으로 간다는 뜻을 밝혔다.
뿐만 아니라 미래 먹거리 사업으로 바이오와 핀테크, 전장 사업을 지정해 본격적인 투자에 나섰다. 이는 이건희 회장이 쓰러지기 전부터 5대 신수종 사업으로 지목한 태양광, 의료기기, LED, 바이오 제약, 전기차 배터리 사업 등에서 성과를 내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삼성은 인천 송도에 세계 최대 규모의 의약품 생산 공장을 짓고, 2020년까지 전기차 배터리사업에 3조 원가량을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가족들 자주 병실 찾아
삼성그룹은 사실상 이재용 부회장 체제에 돌입한 분위기다.
또 이 부회장을 비롯한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 삼남매의 후계 구도 개편에 대한 관심도 높다. 최근 삼성그룹의 계열사 재편으로 볼 때 이 부회장은 전자·금융, 이부진 사장은 호텔·유통, 이서현 사장은 패션·광고로 분류되는 삼남매의 후계 구도 개편 속도가 빨라질 것이란 전망이 많다.
때문에 지난해 연말 이재용 부회장의 승진 가능성에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다.
하지만 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이 입원한 이후 있었던 두 차례 정기인사에서 소폭의 사장급 이하 승진 인사만 단행했다. 부회장 승진자도 두 해 연속 나오지 않았다. 따라서 이 부회장이 회장직을 맡을 가능성은 당분간 크지 않아 보인다.
다만, 이를 두고 삼성그룹이 추구하는 변화의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사실상 공백으로 있는 회장직이 채워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비핵심 계열사 매각과 사업구조 개편, 꾸준한 인력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있지만 가시적인 성과를 얻으려면 명확한 리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삼성그룹의 향후 행방에 대한 각계의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그룹 수뇌부와 임직원들은 지난 10일 이 회장의 회복 기원 메시지를 쏟아냈다. 이날 사내 인터넷 포털 격인 ‘마이싱글’과 포털 안에 있는 온라인 사보 격인 ‘미디어삼성’에는 “회장님 얼른 쾌차하시길 기원합니다”는 내용의 글이 1만 건 이상 올라왔다.
최지성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부회장)은 요즘도 병실을 자주 찾아 병세를 살피고 주요 현안을 보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을 비롯한 가족들 역시 수시로 건강상태를 살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