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왜 패륜아가 됐나

70대 친부 살인사건 범행동기 수수께끼

2016-05-13     신현호 기자

[일요서울 | 신현호 기자] 지난 8일, 70대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시신은 흉기로 수차례 찔리고 둔기에 맞아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돼 있었다. 범행 현장을 본 경찰은 잔인한 살해 방법에 고개를 저었다. 곳곳에서 범행을 계획한 흔적이 발견됐고, 은폐를 시도한 정황도 발견됐다. 범행을 저지른 살인범의 정체는 숨진 남성의 아들과 딸이었다.

지난 9일 오후 6시 45분쯤 광주 북구 우산동의 한 아파트 4층 집에서 A씨(76)가 숨진 채 발견됐다. 심장 이외에 여러 곳이 흉기에 찔려 있었고, 얼굴은 둔기로 수차례 맞아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잔인하게 살해됐다. 어금니를 제외한 치아도 모두 훼손돼 있었다.

당초 경찰은 범인이 A씨를 살해한 뒤 치아를 뽑았을 것으로 판단했지만, 부검 결과 살아 있는 상태에서 둔기에 맞아 부러진 것으로 확인됐다. 직접적인 사망 원인은 흉기에 의한 심장 파열이었다. 경찰조차 “살해 방법이 굉장히 잔혹하다. 원한과 증오가 범행 현장 곳곳에서 확인됐다”고 혀를 내둘렀다.

범인은 가까이에

증오에 가득찼던 인물은 가까이에 있었다. A씨를 잔인하게 살해한 범인은 A씨의 딸 B(47·여)씨와 아들 C(43)씨였다. A씨가 살해된 날은 지난 8일, 어버이날이었다는 점에서 국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들은 아버지를 살해하기 위해 범행 도구를 미리 구입하고 세 차례나 아버지 집을 찾아 범행을 시도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B씨 남매는 지난 6일 한 생활용품 매장에서 청테이프 4개와 순간접착제 1개, 전선을 묶는 데 쓰는 ‘케이블 타이’ 2세트 등 결박에 필요한 도구를 구입했다. 하지만 범행에 사용되지는 않았다. 현장에서 발견된 십여개의 흉기와 둔기를 이용해 무차별적으로 찌르고 때려 아버지를 살해했다.

경찰에 따르면 남매는 6일 오후 11시 5분경 아파트에 들어갔다 7일 새벽 0시 5분경 밖으로 나왔다. 또 7분 뒤 다시 아파트로 들어갔다가 오전 1시 59분경 빠져나왔다. 청테이프 등을 구입한 직후 범행을 시도했으나 아버지가 이틀 동안 집을 비워 실패한 것으로 추정된다. 의도치 않게 범행을 미리 준비한 모양새가 됐지만 즉흥적인 선택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이들 남매는 아버지가 집에 들어온 8일 오전 8시 5분 이후 범행을 저지른 뒤 오전 9시 9분경 아파트를 빠져나왔다. 살해 방식이나 범행 후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아파트를 빠져나온 점을 감안하면 남매는 귀가한 즉시 아버지를 살해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일부에서 알려진 대용량 쓰레기봉투를 대거 준비해 시체를 훼손, 유기하려던 정황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경찰은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대용량 쓰레기봉투와 세제 4통, 일부 흉기를 바탕으로 이들 남매가 아버지를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하고 유기하기 위해 범행을 치밀하게 준비한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대용량 쓰레기봉투는 한 장에 불과했으며 안에는 고추와 쓰레기가 들어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을 감식했던 경찰은 “현장에서 수거한 쓰레기봉투는 한 장 뿐이다. 절단용 흉기도 없었다. 사체 부패 방지나 은폐를 위해 시신에 세제를 뿌린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들은 또 아버지를 살해하기 위해 세 차례 집을 찾아간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이들 남매가 범행 준비를 위해 사전 답사를 한 것으로 추정했으나 “아버지가 이틀 동안 집을 비워 실패한 것 같다. 8일 오전 교회에 갈 준비를 하기 위해 귀가한 아버지를 살해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왜 살해 했나

이들은 왜 그랬을까. 남매가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어 정확한 범행 동기가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당초 경찰은 재산 문제로 인한 다툼이 존속 살인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지만 이들의 석연치 않은 행동들이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 A씨 남매가 범행을 사전에 계획하고 이빨을 뽑는 등 사체가 심하게 훼손될 만큼 무참하게 살해한 이유로는 여전히 설명이 충분치 않다. 게다가 아버지 소유로 된 24평형 주공아파트의 시세는 1억 원 안팎인 것으로 알려졌다.

남매는 지난 2011년 9월, 어머니가 사망한 뒤 아버지와 완전히 연락을 끊고 살았다. 지난 2010년 1월 7일 A씨는 아버지를 가정폭력으로 신고했고 2011년을 비롯해 두 차례나 아버지를 상대로 접근금지 명령을 받아내기도 했다.

경찰은 어머니가 숨진 뒤 이들 남매가 어렸을 때부터 학대를 받아왔던 아버지를 떠나 독립한 것으로 보고 있다. 수년간 연락조차 없이 살아온 남매가 아버지와 다시 왕래한 건 지난 4월 남동생 C씨가 아버지를 찾아가 집문서를 내놓으라며 소동을 벌이면서다.

남동생은 경찰에 “1990년대 초 교통사고를 당해 하반신 마비로 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은 어머니를 돌보던 아버지가 2009년 요양병원에 보내자고 했고 그것 때문에 화가 나 8월쯤 남구 봉선동 오피스텔로 모셔왔다”고 진술했다.

이어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아버지가 미워 연락도 안 했다. 아버지는 결혼 뒤 어머니에게 매번 폭행하고 학대를 일삼았다. 아버지가 너무 증오스럽고 미웠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남매가 살해한 아버지를 대형 고무용기에 눕히고 그 위에 이불 10개를 쌓아놓은, 시신 은폐 방식도 의문이다. 경찰은 사전에 세 차례나 아버지 집을 답사하는 등 범행을 계획한 것과는 달리 시신을 숨긴 방식은 매우 즉흥적이라는 설명이다.

범행 전 이사를 하기 위해 오피스텔의 보증금을 받으려 했던 점으로 미뤄 도피 계획을 세운 것으로 보이지만 범행 이후 이틀간 자신의 집에 머문 점에 대해서는 경찰도 “도피를 계획한 것으로 보기 힘들다”고 분석했다.

경찰은 “어머니와 누나에 대한 학대를 보고 자라왔던 분노와 증오가 범행 동기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여기에 어머니가 함께 살던 집이 아버지의 여자 친구에게 넘어갈 수 있다는 불안과 분노가 더해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남매는 여전히 범행 동기에 대해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다. 경찰은 이들에 대한 심문조사를 진행하는 한편, 증거확보에 주력할 방침이다.

shh@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