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 국회 청년 인턴들의 애환
법 만드는 곳에 법이 실종됐다?
2016-05-13 고정현 기자
[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국회 인턴들의 근무환경이 열악한 것으로 조사됐다. 과도한 노동시간, 최저 임금 이하의 대우, 성차별, 폭언·폭행 등 법을 만드는 국회에서조차 근로기준법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사실상 노동착취와 다를 바 없다. 최근 국회인턴노조가 결성됐지만 영향력은 미미하다. 이 같은 악조건을 떠안고도 청년들은 스펙 쌓을 목적으로 묵묵히 견딜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계약서 있는 ‘노비’ 언제 버려질지 모르는 ‘미생’
-‘인맥쌓기’, ‘줄타기’ 등으로 전락하기도…
우리 사회의 인턴 처우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빈약하다. 가뜩이나 전례 없이 혹독한 취업 한파를 겪고 있는 청년들에게 그나마 대기업과 공공기관 일자리도 인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턴으로서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을 감수하는 상황은 국회라고 예외가 아니다.
여야가 앞다투어 청년 일자리와 인턴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겠다고 하지만 정작 등잔 밑이 어두운 형국이다. 국회 인턴제는 의정활동 지원과 청년실업 해소·의정활동 체험 기회 제공 등을 위해 1999년 도입·시행된 제도다. 청년들은 정책과 관련된 연구를 찾아볼 수 있고 정책에 도움이 되는 일들을 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안고 국회 인턴에 지원을 한다. 국회 인턴은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국가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눈으로 보면서 배울 수 있고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확인하는 자리다. 세상을 직접 바꿀 수 있는 통로인 셈이다. 하지만 실상은 녹록지 않다.
한 국회 인턴은 “국회 인턴이라면 정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소속된 의원실에선 어떤 법을 발의할 건지 그 내용도 알고 그러는 것이 인턴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상은 인턴의 직무 자체도 정확하지 않다. 가장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근무시간과 급여다. 우선 계약서에는 월급이 기본금 120만 원이고 시간 외 근로 수당이 13만7760원 정도, 합해서 월 133만7760원이다. 하지만 실제 근무시간은 대개 7시에 출근을 하고 퇴근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저녁 7시 반에서 8시 정도이고, 국정감사 기간엔 새벽 1시, 2시가 다 돼서 퇴근한다. 남자 인턴 경우에는 아예 캐리어에 짐을 가져와서 한 달 넘게 숙식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심지어 일요일도 경우에 따라 나와서 근무해야 한다”고 말했다.
열악한 환경에 반기를 든 국회 인턴들이 노조를 결성하기도 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국회 운영위원회는 기본급 10만 원 인상을 결정했지만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없던 일이 됐다. 다른 공공기관 인턴과의 형평성이 맞지 않다는 이유였다.
국회 인턴 노조인 ‘국회 인턴유니온’ 정의당 미래정치센터가 실시한 인턴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회 인턴의 주당 평균 노동 시간은 58.8시간이고 주당 70시간 이상 일한다고 답한 응답자가 13%였다. 인턴 기본급 120만 원은 최저임금(116만6220원)보다 높지만 근무 환경을 감안하면 실제 임금이 최저 임금보다 낮았다. 국회이기 때문에 일반 기업과는 다르리라 기대하고 들어온 청년들은 실망이 더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더욱이 이들은 ‘열정페이’를 받고 일하면서도 고용 환경조차 불안한 상황이다. ‘장수 인턴’의 경우 퇴직금 지급 기준(1년 이상 고용)을 피해 11개월짜리 계약을 맺은 뒤, 의원이 자신의 세비로 한 달 월급을 지급하고 다시 11개월을 계약하는 형태로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으로 밝혀졌다.
심지어 국회인턴 중에는 입법보조원이라는 이름으로 ‘무급’ 인턴도 존재한다. ‘유노동, 유임금 원칙’에도 불구하고 법을 만들고 민의를 대표하는 국회에서 ‘유노동, 무임금’이 버젓이 적용 되고 있는 것이다. 국회의원들은 매일같이 ‘열정페이 근절’, ‘인턴 처우 개선’을 외치지만 정작 본인들은 공짜 인턴을 채용하고 있는 실상이다.
이 같은 악조건 속에서도 그만둘 수 없는 이유로 국회 인턴들은 ‘스펙’을 꼽았다. 국회 홈페이지 내 ‘의원실 채용’을 보면, ‘입법보조원 모집’이라는 글이 심심치 않게 게시된다. 채용 공고가 올라오기 무섭게 수십 명의 청년들이 지원, 공고 며칠 만에 마감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이들은 비록 무급일지라도 스펙과 경험을 쌓기 위해 지원하는 것이다. 국회 보좌관을 지망하는 한 대학생은 “정치와 정당에 관심이 있어 정치에 입문하고자 하는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곳이 바로 국회다. 하지만 유급 인턴 자리는 녹록지 않다. 비록 무급이라도 감지덕지”라고 전했다.
실제 무급으로 입법보조원을 뽑는 의원실은 대개 경력증명서와 취업 추천서 등을 통해 스펙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한 의원실은 입법보조원 채용 공고에 ‘그동안 저희 방 입법보조원 생활을 하신 분들의 경우, 다 취업해 잘 돼서 나가셨습니다’라며 입법보조원 경력을 다른 취업의 스펙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입법보조원으로 일하고 있는 K씨는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평소 정치에 관심이 있어서 입법관련 실무를 배우고자 국회 인턴에 지원했다. 하지만 실상은 커피 타기, 사무 정리, SNS홍보물 작성 등이 전부다” 며 “근무하는 동안 내가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있나하는 생각이 수도 없이 들었다”고 말했다.
한편 국회 인턴 자리는 자신의 ‘인맥쌓기’, ‘줄타기’ 하는 곳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지난해 ‘친박 실세’인 최경환 의원(당시 경제부총리, 경북 경산시·청도군)을 둘러싸고 ‘특혜 채용’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최 의원실에서 인턴으로 군무했던 황모씨가 지난 2013년 중소기업진흥공단 신입사원 채용 시험에 지원해 4500명 가운데 2299등을 했는데 최 의원이 중진공에 영향력을 행사해 최종 합격시켰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인턴이라는 제도는 이미 수십 년 동안 단기 계약직으로 실시돼왔다. 기간, 인턴의 업무, 처우 수준 등에 대한 사회적인 기준을 정확하게 하고 노동법도 그에 맞게 변화되지 않는 한 국회 인턴뿐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 인턴 문제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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