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건설사, 외국인 고용…내국인 근로자 생계 위협

외국인 노동자에 밀린 국내 건설 인력시장

2016-05-09     변지영 기자

저가 경쟁 시스템, 수주경쟁 부추겨
10년 째 제자리인 열악한 노동 환경

[일요서울 | 변지영 기자] 정부의 다문화 정책으로 외국인 노동자(이하 외노자)가 빠르게 늘면서 올해 100만 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최근 건설 일용직 노동자는 외국인 노동자와 일감 경쟁을 벌이고 있다. 임금이 싼 데다 불법체류자일 경우 보험에 가입할 필요도 없어 건설인력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계속 가져가다 보니 국내 노동자는 설 곳을 잃고 있다. [일요서울]5일 어린이날 새벽 인력시장에 나온 건설 일용 노동자의 삶을 들여다봤다.
 
지난 5일 어린이날 새벽같이 성남시 수정구 태평로 모란시장 앞에 나온 건설노동자박모(53)씨를 만났다.
 
건설인력 일자리가 줄어들었냐는 질문에 그렇다. 조선족, 베트남, 몽골에서 온 노동자들이 싼 임금으로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답했다.
 
그는 주변 건설현장에는 외국인 노동자가 거의 80% 이상 일감을 가져가고 있는 실정이라 근처에 사는 사람도 일을 구하지 못해 멀리 나간다고 말했다. 인력 사무소를 통해 일자리를 알선받느냐 묻자 외국인 노동자들은 전문 소개업자 1명이 여러 명을 데려와 싼 임금에 일자리를 가져가더라헐값 임금으로 10년째 임금도 거의 오르지 않고 내국인 노동자들이 일감을 계속 뺏기고 있다고 토로했다. 옆에 앉아 있던 50대 남성 노동자는 경력이 있는 숙련공은 스스로 찾아오고 초보는 인력 사무소를 거친다고 귀띔했다.
 
봉고차 1대 절반이 외노자
 
한 인력사무소 사장 류모씨는 처음 건설 일을 하는 사람들은 보통 임금의 10%를 수수료로 받는 조건으로 건설사로부터 임금을 받아주기 때문에 인력사무소를 통하면 일당을 떼일 가능성이 적다고 말했다.
 
어둑한 새벽 4시 반경 봉고차들이 들어왔다. 수십여 명의 무리가 주위로 모이더니 몇 명씩 떼를 지어 차에 탔다. 차가 들어오고 나가길 한 시간 남짓, 절반은 일거리가 없이 시장 앞에 서성이는 듯 보였다. 이들은 이날 일감을 얻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5시가 넘자 하나둘 자리를 떴다. 조심스럽게 한 60대 남성 노동자에게 어디로 가느냐 묻자 벌써 며칠째 일을 공쳤다밥을 무료로 주는 급식소에 가 있을 생각이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50대 남성 노동자도 요즘 들어 일주일에 한두 건도 어렵다. 그저 뽑아주기만 기다리는데 젊고 싼 임금을 받는 외노자들과 아르바이트를 하는 20대 젊은 청년들을 데려간다60대는 일감을 얻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말했다.
 
이날 두 번째 단기 아르바이트를 왔다는 20대 정모씨는 저번 주 급한 돈이 필요해 소개를 받아 일을 했다고 말했다. 하루 일당에 대해 묻자 일당 95천 원에서 9천 원(인력 소개비), 3천 원(자동차 이동비)를 제하고 순이익이 83천 원이었다고 설명했다.
 
청년과 외노자에
밀리는 장년
 
건설근로자공제회에 따르면 국내 노동자의 연령별 비중은 2014년 들어 20~40대가 49.5%, 50대 이상이 50.5%50대가 많았다.
 
외국인 건설근로자는 해마다 늘어 재작년 30만 명을 돌파했다. 전체 건설근로자의 약 8%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의 연령대는 30~40대로, 주로 젊은층이다. ‘일용직 노동자의 경우 하루 일당으로 9~10만 원을 받는다. 주로 50~60대인 내국인 노동자(12~15만 원)와 비교할 때 임금이 3~5만 원 싸다. 불법 소개업자들이 국내 노동자 일자리를 뺏어간다는 주장도 있다. 불법 소개업에서 외국인만 골라 취업시킨 뒤 높은 중개 수수료를 챙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 인력사무소 대표 최모씨는 외국인 인부들만 소개하고 10% 이상의 수수료를 챙기는 불법 중개업자까지 등장하면서 인력시장에 외국인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건설회사도 불법인 줄 알지만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기 때문에 암묵적으로 동의한다고 말했다.
 
값싼 임금에 건설업자들이 외노자를 쓰는 비중이 점점 늘고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지난해 기준 국내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 수를 최소 약 29만 명(합법 약 5만 명, 불법 약 24만 명)으로 추산했다. 전체 건설 일용직이 생업인 이들이 86만 명에 달하는 것에 비하면 이들은 상당한 수효다.
 
외국인 근로자
대체 가속화
 
건설현장이 이렇게 된 이유는 불안정한 고용 구조와 건설사들의 저가 경쟁 시스템에 있다. 이 시스템에 따르면 건설사들은 입찰받기 위해 타건설사가 제시한 가격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을 제시해야 한다. 최저가 낙찰제에 기반을 둔 건설사들이 큰 손실을 볼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원재료나 인건비에서 입찰단가를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공사비용을 낮추는 방법으로는 기술력 향상, 자재 공급가격 인하, 인건비 인하, 공사기간 단축 등이 있다. 이 가운데 기술력 향상은 쉬운 일이 아니기에 건설사들은 주로 자재비에 손을 댄다. 건설현장에 쓰이는 철근에 중국산 수입량이 매년 증가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산 철근 수입량은 989000t으로 전체 철근 수입량(112t)88.3%에 이른다. 건설노동자의 인건비를 낮추는 것도 수월한 방법 중 하나다. 그중에 건설일용직 노동자의 임금이 희생타가 되기 쉽다.
 
한 건설 일용직 노동자는 일부러 임금을 체불하다가 체불액이 많이 쌓일 때 한꺼번에 주기도 하는데 당연히 줘야 할 임금을 주면서도 선심 쓰듯 했다면서 일부 건설사에서는 체불임금을 정산할 때 임금을 흥정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적정임금제를 도입하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말한다. 발주자가 책정한 인건비를 법으로 정해 건설사가 깎지 못 하도록 하는 것이다. 더불어 올해부터 도입된 업체의 공사 수행능력과 사회적 책임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최종 낙찰 업체를 선정하는 종합 심사 낙찰제를 적용하면 건설사가 인건비나 자재비용을 깎아 저가수주를 노리는 관행이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적정임금제가 불러올 긍정적인 파급효과는 생각보다 클 것으로 예상된다. 임금 수준이 정해져 있으면 건설사는 같은 노동자라 해도 상대적으로 생산성이 높은 숙련공을 뽑으려 할 것이다. 때문에 새벽 인력시장에서 구해올 수 없는 숙련공을 정규직으로 고용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경험치를 쌓아야 하는 건설사는 하도급을 할 필요가 없으며 기술력 적은 외국인 노동자를 임금이 저렴하다고 쓸 필요도 없게 된다.
 
체불될 염려가 없는 임금과 안전이 보장되면 젊은 노동자들도 몰려 노령화된 인력 현장에 생기가 돌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영업손실폭이 커진 건설시장에서 여전히 값싼 외노자와 경쟁해야 하는 국내 노동자는 이날 오전 6시 반쯤 인력 시장이 파하자 쓸쓸히 발길을 돌렸다.

bjy-0211@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