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이태원·한남동의 두 얼굴 유명세

2016-05-09     강휘호 기자

가장 비싼 재벌가 집 vs 1인 시위자들의 성지

[일요서울|강휘호 기자] 그동안 이태원과 한남동 등은 재벌가 총수들의 자택으로 유명했다. 특히 공시지가 발표가 있을 때면, 어느 총수의 집이 가장 높은 값일까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몰린다. 그런데 이와 같은 소위 ‘재벌들의 땅’은 때때로 1인 시위 현장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1인 시위의 경우 신고가 필요 없는데다 직접 총수에게 말을 건넬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에 시위자들이 몰리는 것이다. [일요서울]은 그동안 이태원과 한남동 등지에서 어떤 일이 벌어져 왔는지를 들여다봤다.

 이건희·정몽구 등 총수 자택지로 유명 
“회장님 나와라” 시위·몸싸움 장소로 돌변하기도

이태원동과 한남동은 재벌가들의 ‘가장 비싼 집’이 몰려 있는 동네다. 올해 역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이태원동 자택이 177억 원을 기록하면서 12년 연속 ‘가장 비싼 집’ 자리를 지켰다.

실제 국토교통부가 지난달 28일 발표한 ‘2015년 개별 단독주택 공시가격’에 따르면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동에 있는 이건희 회장 소유의 연면적 3422㎡ 주택이 177억 원으로 가장 높았다. 2005년부터 공시가격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해당 주택은 지난해(156억 원)보다 21억 원(13%)이나 상승했다.

이건희 회장 자택 말고도 전국에 공시가격 100억 원이 넘는 단독주택은 모두 6채인데 이 중 5채가 삼성가(家) 소유로 나타났고, 위치도 이태원동과 한남동을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다.

2위는 이태원동 소재 연면적 3190㎡ 주택(136억 원)이고, 3위는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2225㎡ 주택(123억원), 4위는 중구 장충동 1가의 1004㎡ 주택(112억 원)이 차지했다.

공시가격 기준 5위는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의 용산구 한남동 집이다. 서경배 회장 집은 연면적 573㎡에 103억 원이다. 6위는 삼성그룹 호암재단이 소유한 이태원동 481㎡ 주택으로 공시지가로 따져 101억 원이다.

7위는 임창욱 대상그룹 회장이 소유한 94억7000만 원짜리 용산구 한남동 494㎡ 주택, 8위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경기도 성남 분당구 2981㎡ 주택(93억 원)이 이름을 올렸다.

집값 비싼데 시끄런 동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자택지들 중 유난히 이태원동과 한남동 자택 앞에서 1인 시위가 자주 벌어진다는 점이다. 보통 부자들 동네는 조용하고 살기가 좋을 것이라는 인식이 있는데, 두 동네는 시위가 끊이지 않는다.

총수들의 출근시간에 목소리를 내려다 이를 저지하는 임직원들과 충돌을 빚는 소란도 부지기수다. 그리고 피켓을 든 대다수의 사람들은 해당 기업의 부당함을 알리기 바쁘다.

이태원동과 한남동에서 그동안 벌어진 시위들을 살펴보면 가장 비싼 집으로 알려진 이건희 회장 집도 예외는 아니다. 태안 기름유출 사고 당시 피해를 입은 지역 인근 주민들이은 이건희 회장 자택의 정문과 후문에서 시위를 벌였다.

구본무 LG그룹 회장 자택 앞에서는 화물연대 경남지부 창원동부지회 LG분회 소속 노조원 등이, KEC 곽정소 회장 자택 앞에서 KEC 강윤호 금속노조 부장이 1인 시위를 벌인 바 있다. 또 이들 중에는 몸싸움까지 있어 문제가 된 사연도 적지 않다.

실제로 기아차 노조는 정몽구 회장 자택이 있는 한남동 유엔빌리지 입구로 진입하다가 충돌을 빚은 일도 있다. 자택에 진입하려는 노조원과 이를 막는 경비 요원 간에 몸싸움이 벌어졌다.

당시 한남동 유엔 빌리지 입구에 흰 티셔츠를 입은 건장한 체격의 남성 10여명이 차 한 대를 막아서면서 실랑이가 일어났다. 노동조합 조끼를 입은 조합원 4명이 차에서 내려 길을 비켜 달라고 요구하면서 옥신각신했던 것이다.

아울러 비슷한 곳에 위치한 윤석금 웅진 회장,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 집 등에도 수시로 1인 시위가 있어 왔다. 이태원동과 한남동에 살고 있다는 재벌 총수들은 웬만하면 전부 1인 시위를 경험해본 모양새다.

도대체 왜 거기일까?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태원과 한남동이 1인 시위자들의 집결지가 된 것일까. 취재 중 만난 시위 참가자 대부분은 “해당 기업 회장에게 최소한의 관심을 가져달라는 마지막 호소로 총수의 집 앞을 찾아온 것”이라면서 “또 여러 재벌총수 및 대기업 임원 그리고 외국 대사관들에게도 억울함을 알릴 수 있는 장소다”고 설명한다.

아울러 “대규모 집회가 아닌 1인 시위이기 때문에 특별한 신고가 없어도 되니 기동성도 좋고 간편하다”거나 “이렇게 해야만 거들떠보지도 않던 회사가 우리를 찾아온다” 등의 이유다.

한편 재벌 총수 자택 앞의 1인 시위는 해당 기업으로서도 상당한 부담이다.

시위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회사 이미지 타격이 불가피하고, 자칫 총수와 마찰까지 일어날 경우 걷잡을 수 없다는 판단이다. 모 기업의 경우 1인 시위가 벌어지면 총수의 집 인근에서 직원들이 보초를 선다는 후문도 있을 정도다.

1인 시위를 막기 위해 이태원으로 출동했던 한 홍보실의 관계자는 “솔직히 우리 회장님이 시위자와 마찰을 빚거나 하면 회사나 직원으로서는 너무 힘이 든다”면서 “감당이 안 될 정도의 파장이 있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선 우리라도 나서야 한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hwihol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