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어떻게 매년 사람이 토막나나”
불안에 떠는 안산 시화 주민들
방조제 인근 상·하반신 시신 발견…“무시당해 죽였다”
“잇따른 시신 유기 동네 이미지 추락…대책 마련 시급”
[일요서울 | 신현호 기자] 시화호에서 또다시 토막난 시신이 발견됐다. 지난해 ‘김하일 사건’ 이후 1년 만이다. 이번에는 허리를 절단해 상·하반신으로 2등분해 각각 다른 곳에 유기하는 잔혹성과 치밀함을 보였다. 보통 관절 위주로 잘라내던 그간의 방식과는 차이가 있어 이례적이라는 반응이다. 시화호 인근 주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범행 방식은 둘째 치고, 해마다 토막난 시체가 이 호수 부근에서 발견되고 있어서다. 시화호가 흉악범죄에 이용되는 탓에 동네 이미지가 나빠지는 건 물론, 외출하기도 겁이나 시화 주민들은 애가 탈 노릇이다.
지난 3일 오후 3시 전국에 강한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덕분에 안산 대부도의 토막 시신 발견 현장은 잔뜩 음산했다. 하반신 시신이 발견된 장소는 대부도 불도방조제 입구 인근 배수로다. 지난 1일 시신이 얇은 솜이불에 둘둘 말려 마대 자루에 담긴 채 버려져 있는 것을 방문객이 발견했다.
선감동에 거주하는 이모(50대·여)씨는 “버스를 타고 여기를 지나다닐 때마다 (눈에) 보이니까 무섭다”면서 “시골길인데다 인적도 드물어 볼 때마다 얼마나 섬뜩하겠느냐. 낮에는 그나마 괜찮은데 밤에는 버스도 못 탈 거 같다”고 말했다.
이 배수로는 301번 지방도로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301번 지방도는 화성시 우정읍 화산리에서 시흥시 정왕동을 잇는 지방도(총 연장 63.9km)로, 화옹·탄도·불도·시화 등 방조제 4곳을 지난다. 기자도 차량으로 이 곳을 지나다가 도로 옆에 설치된 폴리스라인 덕분에 현장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시흥에서 대부도를 드나드는 길은 이 도로가 유일하다. 연간 수백만 명이 대부도를 방문하는 만큼 이번 사건이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수밖에 없다는 게 이곳 주민의 하소연이다.
이 씨는 “여기 사는 우리도 무섭지만 동네 이미지가 얼마나 나빠지겠느냐. 어떻게 매년 사람이 토막날 수가 있느냐”면서 “하필 (훼손된) 시신을 여기(시화호)에다 갖다 버리니 사람들이 ‘시화호’하면 살인사건 이미지를 떠올린다”고 말했다.
시화호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박모(62)씨는 “이번 사건 때문에 손님이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그렇지만 주민들은 아무래도 불안하지 않겠느냐. 사람들이 이 동네에서 살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상반신은 이날 오후 2시쯤 발견됐다. 하반신이 발견된 장소에서 약 13㎞ 떨어진 대부도 북단 방아머리선착장 인근 시화호 쪽 물가에서다. 발견된 시신의 얼굴과 상체는 복합골절됐고, 신체 여러 곳이 날카로운 흉기로 손상됐다. 특히 머리와 팔, 둔부 등은 여러 차례 찔렸다.
상반신 발견 이후 수사는 급물살을 탔다. 경찰은 곧바로 피해자의 신원을 밝히고 피의자 조모(30)씨를 지난 5일 긴급 체포했다.
경찰에 따르면 피의자 조모(30)씨는 같은 집에 거주하던 열 살 위 최모(40)씨가 자신을 무시한다는 이유로 말다툼 끝에 최 씨를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월 인천지역 여관 카운터 일을 하다가 알게 된 사이로,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지난 4월 초부터 원룸에서 동거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 씨는 숨진 최 씨와 함께 거주하면서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무시당해 오던 중 시비가 붙어 최 씨를 살해했다.
조 씨는 “(범행 당일) 사소한 말다툼을 하다 홧김에 흉기로 찔렀다”며 “최 씨가 평소에도 자신을 무시해왔다”고 진술했다.
조 씨는 살해 후 집안 화장실에서 흉기를 이용해 10여 일에 걸쳐 시신을 훼손했다. 이어 조 씨는 지난달 26일 오후 11시 35분쯤 렌터카를 이용해 최 씨의 시신 하반신과 상반신을 순차적으로 유기했다.
그러나 조 씨는 정확한 범행 날짜 등에 대해서는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날 최 씨의 주변인 탐문조사 과정에서 현 주거지를 특정해 찾아갔다가 집 안에 있던 조 씨를 검거했다. 조 씨는 별다른 저항 없이 검거에 순순히 응한 것으로 전해졌다.
1차 사인은 외력에 의한 머리손상으로 추정됐다. 경찰은 면식범의 소행일 것으로 보고 용의자를 추적해왔다.
해마다 토막 시체 발견
이번 사건으로 시화호가 또다시 범죄 시신 처리 용도로 악용되면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된다. 시화호는 경기 안산·시흥·화성시에 걸쳐 있는 인공호수로 1994년 1월 완공됐다. 방조제 길이만 12.6㎞에 달한다. 면적이 넓고 인적이 매우 드물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 같은 지리적 특성 때문에 시화호 부근에서는 과거부터 시신 유기 사건이 빈발했다.
1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김하일 사건’ 역시 살인범인 김 씨가 아내를 토막 살인한 후 시신을 시화호에 유기했다. 조선족인 김하일(48)씨는 지난해 4월 경기 시흥시 정왕동 자신의 집에서 도박 사실을 추궁하는 조선족 아내 한모(당시 42세)씨를 목 졸라 살해하고, 시신을 14군데로 토막내 시화방조제 인근 등 4곳에 버렸다.
2014년 3월에는 시화호의 한 인공 섬에서 머리 없는 40대 남성의 시신이 발견된 바 있다. 현재 증거 부족 등으로 미제 사건으로 남아 있다.
또 2011년 7월 안산시 상록구 사동 시화호 갈대 습지 공원에서 가출 신고 됐던 50대 여성으로 추정되는 시신이 백골 상태로 발견됐으며, 2008년에는 안양 초등생 살인사건 당시 범인이 시신 일부를 시화호 인근 군자천에 유기하기도 했다.
강화 모녀 살인사건 용의자들이 2006년 납치해 살해한 것으로 추정되는 10대 여성(용의자 하모씨 이복동생으로 확인)의 사체가 2008년 시화호 인근 하천변에서 발견됐고, 2005년에는 현역 군인이 아내를 살해한 후 시신을 여행용 가방에 담아 시화호에 사체를 유기했다.
시화 주민들은 잇따르는 시신 유기에 애가 탈 노릇이다. 정모(50)씨는 “살인을 저지른 범인들이 시신을 시화호에 버리는 일이 잦은데, (이런 사실을) 이곳 주민뿐 아니라 전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면서 “가뜩이나 이주민이 많은 동네여서 함부로 밖에 나가기가 겁난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자식 둔 입장에서 걱정스럽다”고 토로했다.
오이도 선착장 인근에서 조개구이집을 운영하는 최모(60)씨는 “시화방조제에서 낚시하는 사람들이 ‘여기는 혼자 낚시하기 위험한 곳’이라는 말을 가끔 한다”며 “혹시나 시신을 발견하게 될까봐 걱정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시화호가 흉악범들의 시신 유기 장소로 쓰이는 이유는 다양하게 분석된다. 특히 인적이 드물고 CC(폐쇄회로)TV가 설치된 구역이 많지 않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또 주변에 각종 갈대와 잡초, 수풀이 우거져 있어 언제든 몸을 숨길 수 있고 갈대밭 사이에 시신을 유기하기에도 적합하다.
한 경찰학과 교수는 “살인범들이 시신을 토막내는 이유는 이동하기 편하고 여러 곳에 유기할 경우 수습이 어렵기 때문”이라면서 “또 신원확인을 어렵게 해 수사를 지연시키려는 의도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시신의 무게가 있기 때문에 대부분 차량을 이용해 이동하는데 도로에 CCTV가 설치돼 있지 않고 인적이 드문 방조제가 시신을 유기하기에는 최적의 장소”라면서 “그 중 수도권 지역에서 가까운 시화방조제에서 유기가 잦기 때문에 CCTV를 곳곳에 배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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