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낙선자의 ‘금밥통’ 싸움열전
“공공기관은 몸살 중”…사장·감사 곳곳 비어 낙하산 우려
[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20대 총선이 끝났다. 그런데 공공기관이 눈치작전에 돌입했다는 푸념이 나돈다. 이유를 알아보니 더 황당했다. 총선이 끝나면서 공공기관장 자리에 여당인 새누리당의 낙선자나 공천탈락자를 달래기 위한 ‘낙하산’ 인사가 쏟아질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우려다.
이번 선거에서 여소야대로 야권에 힘이 실린 상황에서 여당인사는 부담이라는 속내도 보인다. 또한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에 또다시 전문성 없는 ‘정피아(정치인+마피아)’들이 내려오는것은 아닌지 불편한 심기를 보이기도 한다.
‘경선 탈락’최형두 전 홍보비서관, 아리랑 TV 면접
전문성 없는 정피아 반대 움직임…계속되는 악순환
과거 총선 사례에서 보듯 ‘험지’에 출마해 낙선한 국회의원 후보자나 공천을 받지 못한 여당 출신 인사들을 위해 ‘제 식구 챙기기’와 ‘보은 인사’가 성행할 것이라는 주장이 나와 귀추가 주목된다.
더욱이 ‘관피아’ 방지법으로 공직자들의 낙하산 투하가 차단되면서 비어 있는 공공기관장 자리를 노리는 ‘정피아’들의 공세는 더욱 거세지는 분위기다.
최근 공석인 공공기관장의 자리를 살펴보아도 이같은 현상은 뚜렷하다.
이미 호화출장 논란으로 사임한 방석호 전 아리랑TV 사장 후임으로 이번 총선에서 낙천한 ‘진박’ 인사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달 29일부터 진행 중인 아리랑TV 사장 공모에는 최형두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응모해 최종면접까지 올랐다.
최 전 비서관은 2012년 국무총리실 공보실장을 거쳐 대통령비서실 홍보기획비서관을 지냈고, 국회 대변인을 역임한 뒤 지난 총선에서 새누리당 공천을 신청했으나 낙천됐다. 예비후보 출마 때는 ‘대통령의 참모’, ‘대통령과 청와대 수석 및 비서관들, 장차관들과의 굳건한 신뢰’를 강조하는 등 소위 ‘진박’으로 분류됐다.
최 전 비서관은 공직 입문 전 문화일보에서 기자와 논설위원을 지내 방송 관련 경력은 전무하다.
보은인사 서막
아리랑TV를 포함해 현재 기관장이 공석인 기관은 모두 8곳이다. 이 중 아리랑TV와 한국석유관리원을 제외한 6곳은 전임 기관장들이 모두 총선에 참여했다.
대구광역시 중남구에서 출마해 당선된 곽상도 전 대한법률공단 이사장은 지난해 11월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5개월째 이사장 자리가 비어 있는 상태다.
장석일 한국건강증진개발원 전 원장도 경기성남분당갑 예비후보로 등록했지만 공천을 받지 못했다. 그의 자리도 현재 공석이다.
올해 12월까지가 임기였던 김성회 전 지역난방공사 사장도 총선 출마를 이유로 사임했고, 자리는 비어 있다. 김 전 사장은 경기 화성병 지역에서 예비후보로 등록했지만 공천을 받지 못했다. 난방공사는 지난 2월 신임 사장 공모 절차를 진행했으나 적합한 인물이 없어 재공모를 하고 있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와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뒤늦게 공모절차를 진행하고 있으나, 새 수장이 언제 취임할지는 미지수다. 최연혜 전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사장은 새누리당 비례대표에 신청하기 위해 지난달 사임했으며, 신용현 전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도 국민의당 비례대표에 신청하며 자리에서 물러났다.
대한법률구조공단도 적임자가 없어 이사장 공모 기간을 늘리기로 했다.
오는 7월까지 기관장 임기가 만료되는 공공기관도 한국국제교류재단, 에너지공단, 환경공단 등 21곳이나 된다.
문제는 이들 자리에 낙선자나 공천 탈락자들이 대거 ‘낙하산’으로 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도 우려를 표시한다. 공공기관 업무공백도 우려된다
해당 분야를 잘 알고 있고 일을 잘한다면 관피아든 정피아든 상관 없다. ‘낙하산 인사’란 비판을 극복하고, 성과를 내면 된다. 그러나 기재부 자료를 보면 2014년 공공기관 평가에서 최하위 D·E급을 받은 28곳 기관장 가운데 17명이 정치권과 관료 출신이었다.
공공기관들의 정서적 거부감도 적지 않다. 자신들에겐 평생직장인 곳을 정치인들은 다음 선거를 위한 창구 등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불신 팽배
이렇다 보니 기관 내부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외부로 퍼져나온다. 한 공기업 고위관계자는 “정치권 출신 인사들이 공기업 경영은 제쳐둔 채 인맥 관리에만 돌아가다 선거판으로 돌아가는 회전문식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외치는 공공기관 개혁 구호는 공허한 메아리일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경영능력이 부족한 정피아들이 공공기관장에 내려앉은 뒤 선거 때만 되면 나가고 또 다른 사람을 찾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공공기관은 멍이 든다. 세계 최고를 자랑했던 인천공항공사가 잦은 수장 교체로 보안에 구멍이 뻥 뚫리고 서비스 질까지 나빠져 명성에 먹칠을 했던 사실로도 방증된다. 공공기관에 정피아 낙하산이 판을 치면 공기업 개혁이니 금융 개혁이니 하는 것들이 제대로 진행될 리 없다.
시민단체들도 문제를 제기하는 논평을 내놓지만 ‘소 귀의 경읽기’로 치부된다. 그렇다면 공공기관 자리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임기 중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수준의 대형 사고를 치지 않는 한 3년 임기를 보장한다. 대통령보다 많은 연봉을 받는 기관장들도 적지 않다. 계속되는 여론의 비난에도 낙하산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정부가 발간한 ‘2015 공공기관 현황 편람’을 보면 최근 3년간(2012~2014년) 기관장 연봉이 가장 높았던 상위 10개 공공기관의 장(長)은 평균 연봉 3억6547만 원을 받았다. 대통령 연봉(올해 기준 2억1202만 원)보다 1억5000만 원 이상 많은 금액이다.
기관별로 중소기업은행장 연봉이 평균 4억7051만 원으로 1위다. 한국수출입은행장(4억5964만 원), 한국산업은행(4억4661만 원), 한국투자공사(4억2864만 원), 한국과학기술원(KAIST·3억8297만 원)이 뒤를 잇는다.
공공기관장 연봉은 대통령·국무총리·장관·차관 등 정무직 공무원보다 높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고정급을 받는 정무직과 달리, 기본연봉에 성과급을 추가로 받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