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20대 총선 ‘선거 프레임’의 종말

2016-04-18     일요서울

- “국민은 위대했고 새로운 시대는 시작되었다
- ‘박근혜 정권의 국정운영에 대한 국민의 심판’

 

 
 
  <이은영 대표>
20대 국회의원 선거만큼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남긴 선거가 또 있을까? 총선 다음날 사람들의 풍경은 삼삼오오 밥을 먹으며 또는 소줏잔을 기울이며 선거 결과에 대한 분석과 전망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선거가 스포츠나 드라마보다 더 재밌을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주권자들에게 느끼게 해준 선거였다는 점이야말로 이번 총선의 최대 의미다.

지역구도 완화, 대권주자 부침, 3당 구도 정립, 종북·안보프레임의 퇴조 등 메인 요리 외에 각 지역 당선자들의 눈물나는 당선 히스토리가 마치 ‘12첩 수랏상’처럼 국민들 앞에 차려졌다.투표가 진행되기 전 선거판을 좌우했던 두 개의 키워드는 ‘국정운영 심판’, ‘거대 양당 심판’이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여야가 보여준 갖가지 행태에 국민들은 실망감을 넘어 절망감을 가슴 속에 쌓고 있었다. “내가 해도 너희들보다 잘 하겠다”는 목소리로 경종을 울려댔지만 이 소리에 반응하는 정치인은 별로 없었다. 모두가 ‘총선 공천’, ‘총선 승리’에만 몰두했다.

더구나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배신의 정치’, ‘국회 심판’ 운운하며 기세등등하게 선거 분위기를 주도하자  사람들은 숨죽이며 상황을 관망하게 되었다. 결국, 선거 시작 초반에 여당 압승 시나리오가 정치권 주변에 돌아다녔던 것은 민심의 목소리를 듣지 않겠다고 대통령이 친 그물에 청와대, 국정원, 여당, 보수언론이 자승자박되어 착시에 빠졌기 때문이다.

귀를 막고 눈을 가렸는데 ‘침묵의 나선’이 회오리 바람으로 돌변하는 것을 어찌 알 수 있었으랴. 더구나 국민의당 창당 등 야권의 분열은 야당의 정체성이 어떠해야 하는지, 야당은 어느 방향을 보고 싸워야 하는지를 상실케 만들었다. 그나마 ‘덩치값 하라’며 거대 양당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 국민의 당이 호소한 ‘선명 야당론’은 38석을 확보하는 선전의 배경이 되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선거 내내 전선의 이쪽 끝과 저쪽 끝을 헤매다 끝났다. ‘경제실정 심판’을 외쳤다가 ‘정권교체’를 외쳤다가 ‘야권분열 책임론’을 외쳤다가. 오죽하면 인터넷 댓글에 “국민의당은 새누리당을 향해 싸우는데 왜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당을 향해 싸우는가”라는 글이 올라왔을까.

수도권 압승에 기뻐하기에 앞서 더불어민주당은 ‘우리가 이번 선거에서 무엇을 외쳤던가’를 차분히 반성해볼 일이다. 이번 총선은 한마디로 ‘박근혜 정권의 국정운영 실패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라고 요약되며 그에 대해 대통령과 집권 여당은 책임있는 반응을 보여야 한다.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우리가 언제 국민의 심판을 받았지’하는 태도는 곤란하다. 아울러 ‘박근혜 정권 심판’이 갖는 의미는 지금까지 대한민국 정치판을 좌우했던 식상한 ‘선거 프레임의 종말’을 의미하기도 한다.

첫째. 더 이상 선거기간에 사용되는 ‘종북·안보 프레임’은 먹히지 않는다. 지난 2010년 지방선거 당시 선거일을 3∼4일 앞두고 이명박 대통령이 전쟁기념관에서 행한 ‘전쟁 불사’ 발언이 젊은 층의 역풍을 불러와 선거 패배의 원인이 된 사례는 대표적이다. 이번 선거에서도 ‘안보 이슈’는 유권자들의 투표 행위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둘째, ‘지역 텃밭’에서의 쉬운 선거 역시 점차 그 운명을 다하고 있다. ‘수도권 여당 벨트’라고 불렸던 송파, 강남, 분당에서 야당 의원들의 당선, 영남권에서의 재수, 삼수생 야당 후보들의 당선과 무소속 후보들의 선전, 호남권에서의 ‘녹색 돌풍’ 등은 새로운 선거 캠페인의 시대로 돌입했음을 뜻한다. 일부 지역 후보들이 사용한 “진심이면 통한다”는 구호야말로 지역 이슈와 지역민에게 밀착하는 후보만이 살아남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대표적인 슬로건이다.

셋째. 국민의 뜻을 왜곡하려는 모든 시도는 대가를 치른다는 점이다. 이번 선거의 특징은 공천업무를 주관했던 양 당의 공천관리위원장, 비대위원장들의 절대적인 공천권 행사를 들 수 있다. 과거보다 더 강화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배경은 국민들의 정치 불신, 혐오가 한 요인일 수 있다. 그래서 공천과 관련해 각 당이 주체적으로 ‘자정(自淨)’하길 바라는 흐름이 있었고 그런 차원에서 공천업무 최종 책임자에게 힘이 실리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공천(公薦)이 ‘내 사람 챙기기’란 사천(私薦)을 벗어나지 못했고 그 과정에서 나타난 ‘옥새 파동’, ‘비례대표 순위 파동’이 결국 국민적 심판의 요인으로 작동한 것이다. 더구나 투표일에 빨간색 자켓을 입고 나타난 박대통령의 조심스럽지 못한 행동 역시 국민들 눈에 곱게 보일 수 없었다. 과거의 ‘관권 선거’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선거에 영향을 끼치려는 정부여당의 의도성이 깃든 행위들은 역풍의 본거지가 된다는 점은 이번 선거가 주는 교훈이다.
 
 선거는 끝났지만 대선을 향한 드라마는 ‘시즌2’로 들어섰다. 한때 대선후보로 점쳐졌지만 낙선한 오세훈, 이인제, 김문수 후보와 ‘총선 패배’의 외상을 입은 김무성 대표, 또 살아 돌아온 유승민, 나경원 의원과 김태호 전 최고위원 등을 포함한 새누리당은 ‘절치부심’의 시간에 들어서게 되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원내 제1당이라는 기대 이상의 성과와 함께 내실있는 수확까지 얻었다. 김부겸, 김두관, 송영길, 김영춘 등을 비롯해 관록있는 인물과 청와대 출신의 젊은 인물군을 수도권과 충남, 영남, 제주 등에서 확보함으로써 기존의 더불어민주당이 갖고 있던 낡은 이미지를 털어내는 기반을 만들었다. ‘세대 교체, 지역 강화’라는 체질 개선의 틀을 확보한 것이다. 따라서 당내의 상승된 기분을 잘 조절할 수 있다면 대선까지 ‘즐거운 시나리오’를 쓸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고 할 수 있다.

국민의당은 선거 기간 내 국민의 귀를 잡을 수 있는 심플한 메시지와 전략으로 선전했고 호남이라는 안정된 지역기반까지 확보했다. 하지만 이는 양날의 칼을 손에 쥔 것과 같다. 왜나면 호남은 ‘정치적 영향력의 확장’을 꿈꾸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각 당은 총선 결과를 반영한 전당대회 구성에 시선이 가 있지만 어찌 되었든, 대한민국 역사의 페이지에 2016년 총선은 기록될 것이다.  <이은영 여민리서치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