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추적] 북한식당 종업원 집단 탈북 미스터리

“선거용 기획 탈북?” vs “강력한 대북 제재 덕분”

2016-04-18     권녕찬 기자

탈북 사실 이례적 신속 발표설마 총선용?
정부, 강력한 대북 제제 결과일 뿐기획 탈북아냐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북한에서 집단 탈북한 식당 종업원 13명이 지난 7일 입국한 가운데 이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통상 탈북 사실은 비공개가 원칙이지만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공개한 데다 탈북 경로 및 절차 등이 기존의 탈북 사례와 상이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들의 귀순이 선거를 앞두고 정부 당국에 의해 기획된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강력한 대북제재에 따른 자발적 귀순이라고 발표했지만 이를 둘러싼 의혹은 계속되고 있다.
 
중국 저장(浙江)성 닝보(寧波)에 있는 류경식당에서 일하고 있는 북한 종업원 총 20명 중 지배인 1명과 여종업원 12명이 지난 7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복수의 매체에 따르면 이들은 5일 밤 식당을 몰래 빠져 나온 뒤 차량으로 상하이로 이동, 6일 새벽 말레이시아를 거쳐 한국으로 들어왔다. 북한과 말레이시아는 무비자 협정을 맺고 있어 북한 여권만 소지하면 출국에 문제가 없다. 탈출 경로는 중국 닝보상하이말레이시아한국 순으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묵인·방조
 
이들은 중국 상하이를 거쳐 말레이시아로 출국했다. 상하이는 중국의 경제 중심지이자 관문으로 꼽히는 대도시다. 전문가들은 탈북 과정에서 상하이를 경유할 수 있었다는 것은 중국 정부나 공안 당국의 묵인, 방조 없이는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한 전문가는 “12일 동안의 이들의 여정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이는 제3(말레이시아)의 물밑 지원 외에도 중국 당국의 협조 내지 묵인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밝혔다. 앞서 중국 정부도 북한 국적인 13명이 6일 새벽 유효한 여권을 갖고 정상적으로 출국했다고 확인했다.
 
이에 북한 적십자회 중앙위원회는 우리 인원들을 남조선에 끌고 간 범죄자들과 그 배후조정자들을 모조리 색출해 우리의 신성한 법정에 넘겨야 한다어떻게 해당 나라의 묵인 하에 동남아시아를 거쳐 남조선까지 끌고 갔는가를 구체적으로 장악하고 있다"고 밝히며 중국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의도된 기획 탈북?
 
이번 집단 탈북은 20119명이 국내 입국한 이후 5년 만이며, 2004년 베트남에서 탈북자 468명을 모아 한꺼번에 입국한 이후 최대 규모다. 그러나 이들의 탈북 과정을 보면 이전과 다른 점이 많아 총선을 앞두고 북풍을 노린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 8일 집단 귀순 사실을 입국 하루 만에 공개했는데 김대중 정부의 이른바 햇볕정책 시행 이후 특별한 인물이 아니면, 탈북 사실을 잘 공개하지 않던 관례에 비하면 매우 이례적인 조치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탈북 사실은 비공개가 원칙인 데다 한국 온 다음날 바로 발표하는 것은 매우 특이하며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많다.
 
또 통상적인 탈북자들의 입국 기간은 상당한 시일이 걸리는 경우가 많지만 이번 탈북은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보통 북한이탈주민들의 정상적 입국·정착 과정은 보호 요청 및 국내 이송합동신문(간첩 유무 확인)보호결정정착지원시설(하나원) 정착 준비로 이뤄진다. 중국이 탈북자의 한국 입국에 대해 꺼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해 국내 입국까지 수개월이 걸리기도 한다. 통상적인 흐름과 다르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국내외 탈북 관련 민간단체들도 이번 사실에 대해선 정부 발표 이후에야 알았다는 전언들이 나온다. 대개는 탈북 과정을 민간단체들이 주도해 탈북자들을 돕고 정보당국이나 정부기관은 조력자 역할을 해왔다. 한 남북관계 전문가는 북한인권단체들이 전혀 모르는 가운데 집단 탈북이 공개됐다정부에서 이번 탈북을 기획·주도하지 않고서야 그럴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이번 집단 탈북자들의 국내 입국 사실을 신속하게 공개함에 따라 그에 따른 역효과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북한에 있는 이들의 가족이 고초를 겪거나 신변의 위협이 있을 수 있고, 북한의 통제 강화 등으로 국내 입국을 원하는 제3국 거주 탈북민들에게 부정적 영향이 미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북한인권단체 관계자는 이번 일로 인해 앞으로 발생할 일은 정부가 책임져야 할 것이라며 이는 북한에 있는 탈북민 가족은 물론 아직 넘어오지 않은 분들의 안전과 관련된 문제라고 꼬집었다.
 
대북 제재 효과 덕분글쎄
 
정부는 이번 사건이 강력한 대북제재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통일부는 이번 집단 탈북자들이 입국 전후 우리 당국에 진술한 내용을 일부 공개했는데 한국에서는 노력만 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평화를 사랑하며 자유를 만끽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최근 대북제재가 심화되면서 북한 체제에 더는 희망이 없는 것 같다는 말을 했다고 통일부는 전했다.
 
통일부 고위관계자는 10일 비공개 기자간담회에서 집단 탈북은 우리 정부의 단독 대북제재(38일 발표)의 파급효과라고 밝혔다. 그는 또 출신 성분이 좋고 중산층 이상의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이번에 탈북했다는 점에서 북한 내부에 미치는 영향도 클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어 이번 북한 해외 식당 종업원의 집단 귀순은 순전히 그들의 자유의사에 따른 것"이라며 대북 제재에 따른 자발적 집단 탈북임을 거듭 강조했다.
 
한편 북한 류경식당에 남아 있었던 다른 종업원들은 최근 북한으로 송환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집단 탈북이 발생하자마자 식당이 있는 중국 닝보로 공작조를 급파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북 소식통은 류경식당에 남은 종업원들이 이미 북한으로 돌아갔다고 밝혔다. 북한 당국이 자세한 탈출 경위 파악과 추가 탈출 방지를 위해 조치를 취한 것으로 풀이되며 강도 높은 사상 검증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는 현재 우리 쪽으로 넘어온 탈북자들의 상태에 대해 건강이 대부분 양호한 상태지만, 집단 이탈과 장거리 이동에 따른 긴장감과 피로를 호소하고 있어 충분한 휴식을 줄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북한 종업원 집단 탈북 사건에서 정부의 기획이냐 정부 정책에 따른 자연스런 결과냐를 두고 한동안 진실공방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이번 탈북 사건에 대해 정부가 물밑에서 작업했든 공교롭게 발생한 일이든 적어도 결과적으로 보면 이번 선거에서는 북풍 효과가 없었음이 분명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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