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텍시스템스 대출사기 파장

제2 모뉴엘 사태 우려…금융권 긴장

2016-03-28     박시은 기자

전 코스닥 상장사 디지텍시스템스가 1000억 원 가량을 사기로 대출 받은 의혹이 제기됐다. 해당 의혹은 디지텍시스템스가 전문 브로커들을 통해 금품 로비와 수수료를 지급해 대출을 받아냈다는 내용이다. 특히 KDB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이 연루돼 논란이 되고 있다. 모뉴엘 사태가 떠오르는 상황과 수법이 반복해서 벌어졌기 때문이다. 또 디지텍시스템스의 재무상황과 대출 수법으로 볼 때 대출 규모가 더 늘어날 가능성도 제기된다.

재무구조 열악 불구 1000억 원 대출
브로커 존재…대출규모 더 커질수도

[일요서울|박시은 기자] 검찰의 디지텍시스템스 사기 대출 수사가 금융권으로 번지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한국수출입은행과 KDB산업은행, KB국민은행, NH농협은행 등 국책은행과 시중은행들이 해당 사건에 연루돼 검찰 수사 대상에 올랐다.

이들 은행은 2012~2013년 디지텍시스템스에 1000억 원에 이르는 돈을 대출해줬다. 은행별로는 한국수출입은행 300억 원, KDB산업은행 250억 원, 국민은행 263억 원, 농협은행 50억 원 등이다. 한국무역보험공사는 50억 원 규모의 지급보증을 해줬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부장검사 박길배)에 따르면 디지텍시스템스의 사기 대출 과정에 전문 브로커와 KDB산업은행 직원 등이 개입돼 있다.

KDB산업은행 본점 팀장 이모씨는 디지텍시스템스에 250억 원 규모 대출을 돕고, 20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또 브로커 최모 씨 등 3명도 구속됐다. 투자자문사 대표 최 씨 등은 디지텍시스템스 재무이사 남모씨로부터 은행권 대출 알선 대가로 10억여 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 조사결과 최 씨는 한국수출입은행과 KB국민은행에 대출을 알선해주면서 4억5000여만 원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브로커 곽모씨는 한국무역보험공사의 지급보증서 발급 알선을 대가로 3억여 원을 받았고, 이모씨는 농협 대출을 대가로 2억7000만 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디지텍시스템스는 2012년 국내에서 스마트폰 용 터치스크린패널 생산 1위를 기록한 기업이다. 하지만 같은해 기업사냥꾼에 의해 무자본 인수된 뒤 재무구조가 급격히 나빠졌다.

이 때문에 제2 모뉴엘 사태로 확장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디지텍시스템스의 재무 상황과 대출 과정에 금융브로커가 존재했다는 점으로 볼 때 사기 대출 규모가 늘어날 가능성이 큰 것이다.

“개인 비리다” 일축

검찰 역시 이번 사건이 모뉴엘 사기 대출과 유사한 방식으로 이뤄졌다고 보고 있다. 디지텍시스템스의 금품로비를 통해 은행 대출과 보증서 발급이 성공했고, 브로커들이 받은 자금이 은행 대출 담당자들에게 흘러갔을 개연성이 크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뉴엘 사태처럼 페이퍼 컴퍼니를 통한 대출이 있을 경우 사기 대출 규모는 최대 수천억 원대로 늘어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디지텍시스템스 사기 대출 의혹으로 국책은행의 입장도 난처해졌다. 대출비리 문제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건전성 악화가 우려되는 것이다.

실제로 산업은행의 부실채권 규모는 지난해 말 전년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수출입은행은 3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와 관련해 산업은행 측은 “이모 팀장의 개인적 비리로 본다”며 “대출 절차상 문제는 아닌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다른 은행들 역시 “자체 조사 결과 대출 절차에는 문제가 없다”고 전했다. 

seun89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