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vs 신세계 ‘사촌전쟁’ 서막?
간편결제 신경전…집안 갈등설 주목
주력 사업 겹친 후 미묘한 관계 변화
페이·상품권 불허…소비자 혼란·항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용진 신세계그룹(이하 신세계) 부회장은 동갑내기 사촌지간이다. 이 부회장의 아버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여동생인 이명희 신세계 회장은 정 부회장의 어머니다. 두 그룹은 2007년 삼성그룹이 삼성플라자와 2011년 홈플러스를 각각 매각한 뒤 겹치는 사업 분야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최근 간편결제 서비스 사업에 주력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간에 벌어진 경쟁이 두 그룹의 갈등을 의심케 하는 모습을 자아내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의 삼성페이는 지난해 8월 한국에서 처음 선보인 후 전 세계권으로 서비스 지역을 확대하고 있다. 삼성페이는 출시 두 달 만에 사용자 100만 명을 확보했으며, 지난 2월에는 500만 명을 돌파했다.
또 미국 모바일 결제 솔루션업체 루프페이 인수를 결정하는 등 모바일 간편결제 사업에 힘을 쏟고 있다.
신세계 역시 지난해 7월 출시한 SSG페이를 중심으로 온라인, 모바일 사업에 전력을 쏟고 있다. SSG페이의 사용처를 은행 계좌 연동 서비스, 교통카드 기능, 아파트 관리비 납부서비스 등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런 가운데 신세계는 자사 유통망에서 삼성페이 사용을 불허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 스타벅스, 조선호텔 등에서는 삼성페이를 사용할 수 없다.
실제로 지난 21일 [일요서울]이 방문한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 등에서는 삼성페이 결제를 요청하자마자 “SSG페이를 말하는 것이냐”는 반문과 함께 “결제가 가능한지 확인해봐야 한다”고 대답했다. 곧이어 “삼성페이는 결제 수단으로 등록돼 있지 않다”며 “죄송하다”는 답변이 잇따랐다.
또 다른 직원은 “삼성페이 결제를 문의하는 분들이 있을 때마다 미안하다고 대답해야 돼서 곤란하다”며 “(우리도) 왜 삼성페이가 안 되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업계는 이 같은 신세계의 결정을 삼성페이 견제로 보고 있다. 자체 간편결제 서비스인 SSG페이 확산을 위해 일명 쇄국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쟁사인 롯데그룹과 현대백화점그룹의 경우, 자체 모바일 간편결제 시스템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삼성페이 사용이 가능해 두 그룹의 갈등을 추측하는 의혹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확대해석 부담”
이 같은 의심은 삼성그룹(이하 삼성) 계열사의 신세계 상품권 사용 중단으로 수면위에 떠올랐다. 최근 삼성 계열사인 호텔신라와 신라스테이, 신라면세점, 에버랜드 등에서는 신세계 상품권 제휴가 종료됐다. 다만, 삼성물산 패션부문 등에서는 아직 사용이 가능하다.
양사가 제휴를 맺은 이래 신세계 상품권 사용이 안 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그렇다 보니 이 사실을 알지 못한 소비자들의 혼란과 항의가 발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범 삼성가인 보광의 휘닉스파크도 신세계 상품권 제휴를 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단순한 간편결제 사업 신경전으로 보기 어렵다는 시선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더욱이 지난해 7월 서울시내 면세점 유치전에서도 대결 구도를 벌인 바 있어 이 같은 의혹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삼성과 신세계는 모두 서울시내 면세점 유치전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각각 경쟁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삼성의 신라면세점은 현대산업개발과의 공조를 선택해 면세점 유치를 확정지었다.
반면 신세계는 고배를 마셨다. 이후 11월 재도전한 끝에 남대문에 면세점을 확보했다. 유치전에서 보여준 양사의 치열한 경쟁은 면세점 시장에서의 경쟁 구도로 이어졌다.
뿐만 아니라 삼성은 2010년부터 신세계백화점의 온라인쇼핑몰인 ‘신세계몰’을 삼성 임직원 전용몰로 사용해왔으나 지난해 9월 계약이 만료되자 임직원몰을 ‘G마켓’으로 옮겼다.
일각에서는 두 그룹의 미묘한 관계 변화가 집안싸움에서 비롯된 감정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故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이 동생인 이건희 삼성 회장과 벌인 유산분쟁 소송 당시 이명희 신세계 회장은 중립을 지켰다. 이는 사실상 이맹희 명예회장의 편에 선 것으로 해석되면서 두 집안의 감정이 상하게 된 배경으로 거론된다.
이와 관련해 삼성과 신세계는 모두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비즈니스적인 경쟁 관계일 뿐 그룹 간에 갈등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신세계백화점의 한 관계자는 “상품권 문제는 삼성 측과 의 수수료 문제 때문”이라며 “10여 년간 상품권 제휴를 맺어오면서 수수료율 조정이 없었고, 이 문제의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다만 삼성페이 결제 불가 이유와 재협의 계획에 대해서는 “백화점이 아닌 그룹 측으로 문의해야 할 사항”이라고 말을 아꼈다. 이에 대해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수수료 문제는 각 개별 관계사에서 판단할 사안이다”며 “페이 문제와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이어 “삼성페이 사용 문제는 양사가 꾸준히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삼성 측 역시 “상품권 제휴 종료를 결정한 각 계열사로 확인해야 할 문제”라고 답했다. 한 관계자는 “거론되고 있는 이야기들이 마치 그룹 차원의 갈등으로 비춰지고 있는데 이는 사실무근이다”며 “주력하고 있는 사업이다 보니 타 서비스에 대한 경계가 높을 수 있고, 이런 일은 비즈니스를 하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경쟁의 문제다. 그런데 이것이 가족 간의 문제 혹은 그룹 차원의 문제로 비춰져 부담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만, 삼성페이가 신세계에서만 사용할 수 없다는 점에 대한 의문점이 있음을 시사했다.
삼성전자 역시 “신세계에서도 삼성페이가 사용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면서도 “신세계에서만 사용이 안 된다는 점이 의아스럽지만 노력하겠다는 말밖에는 할 수 없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