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사례로 본 재벌가 혼외자 소송
삼성· SK·코오롱·태광 등 다툼 부지기수…‘피보다 진한 돈’
[일요서울|박시은 기자] 故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의 혼외자가 2억 원의 유류분 반환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상속 과정에서 자신이 물려받아야 할 상속분을 다시 따져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재계 혼외자들의 존재가 주목받고 있다. 일명 ‘막장 드라마’에서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숨겨진 자식으로 살아온 재벌 2세에 관한 얘기가 현실에서 펼쳐진 것에 대한 호기심이다. 이에 [일요서울]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비롯해 故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코오롱그룹 창업주인 故 이원만 회장, 故 이임용 태광그룹 창업주 등 혼외자의 존재가 드러난 일화를 살펴봤다.
숨겨진 재산 드러나 다툼 번복되기도
국내 재벌그룹 총수 일가에서 흘러나온 혼외자 관련 스캔들은 이미 재계 안팎에서 숱하게 나돌았다. 루머에 그치는 경우도 많았지만 친자확인이나 상속소송 등을 통해 확인된 경우도 있다.
이런 얘기들은 일명 ‘막장 드라마’에서 회장님의 숨겨 둔 자식, 출생의 비밀을 가진 주인공 등의 인물로 묘사되기도 했다. 가난하게 살던 주인공이 하루아침에 대기업 차기 후계자에 오르거나, 이복형제들과 경쟁하는 일 등은 식상한 설정이 됐을 정도다.
최근 CJ그룹은 이런 드라마같은 상황을 맞았다. 故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의 혼외자로 알려진 이재휘 씨가 서울서부지법에 “2억100만 원을 청구액으로 산정해 상속분을 달라”는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첫 변론준비기일은 오는 4월 1일이다.
이 씨는 故 이맹희 명예회장이 1964년 여배우 박모씨와 동거해 낳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씨는 이 명예회장의 호적에 오르지 못했다. 그러다 2004년 친자확인소송을 냈고, 2006년 대법원으로부터 이 명예회장의 친자로 인정받았다.
이후 그의 친모인 박 씨는 2010년 서울중앙지법에 양육비 상환 소송을 내기도 했다. 당시 재판부는 양육비로 4억8000만 원을 지급할 것을 판결했다.
그의 친부인 故 이맹희 명예회장은 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장남이다. 이 명예회장은 동생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경영권 상속 경쟁에서 밀려나 ‘비운의 황태자’로 불리기도 한다. 그는 부인 손복남 고문과 사이에 이미경 CJ그룹 부회장과 이재현 CJ그룹 회장, 이재환 재산커뮤니케이션즈 대표 등 3남매를 뒀다.
이 씨와 이재현 회장을 비롯한 이복형제들은 교류하거나 경제적 도움을 주고받지는 않으며 지내왔다. 이 씨는 지난해 8월에 이 명예회장이 별세했을 때에도 빈소에 가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혼외자는 원칙적으로는 부모의 재산을 상속받을 권리가 없다. 그러나 법적으로 혼외자가 친자관계를 인정받은 경우에는 혼인기간 중 출생한 자녀들과 동등한 상속권을 갖는다.
즉, 이 명예회장의 혼외자인 이 씨는 법적으로 상속권을 주장할 수 있는 상태인 것이다.
또 이 씨는 故 이맹희 명예회장이 사망한 후 남은 32억여 원 채무와 그의 자산 1억여 원을 그대로 상속받았다. 상속을 포기하면 유류분 반환청구소송을 낼 수 없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이재현 회장 등 유가족들은 지난 1월 한정상속승인을 신청해 이 명예회장이 남긴 채무에 대한 책임을 면제받았다.
이 씨 측은 “이재현 회장 등이 현재 3조 원이 넘는 자산을 보유하게 된 과정에 아버지인 故 이맹희 명예회장의 유산도 상당부분 기여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삼성가 자산이 손복남 고문을 거쳐 이재현 회장 등 자제들에게 넘어간 과정을 근거로 자신이 물려받아야 할 상속분을 다시 따져봐야 한다는 판단이란 관측도 나온다. 때문에 故 이맹희 명예회장의 실질적인 재산규모가 파악될 경우 청구액이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CJ “무의미하다”
이에 대해 CJ그룹은 “故 이맹희 명예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없어 이번 소송이 무의미하다”고 밝혔다.
CJ그룹은 손복남 고문이 보유하고 있던 안국화재 주식과 이건희 회장이 보유하던 제일제당 주식과 맞교환하면서 제일제당을 독립 경영한 것이 모태가 됐기 때문에 故 이맹희 명예회이 남긴 유류분이 없다는 입장이다.
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유산도 이 명예회장이 아닌 며느리인 손복남 고문에게 상속돼 유류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처럼 CJ그룹의 혼외자 유산 상속 소송이 한창인 가운데 다른 재벌가 혼외자에 대한 관심도 재조명되고 있다.
가장 최근인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해 말 혼외자로 딸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자필 편지로 고백해 충격을 줬다. 당시 최 회장은 “마음에 위로가 되는 여인을 만났다”며 “혼외로 6살배기 딸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간의 관심은 최 회장의 부인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선택에 쏠렸다. 양측이 이혼소송을 진행하게 되면 SK그룹 계열사 지분 4조2000억 원을 비롯한 재산 분할 문제가 쟁점에 오르기 때문이다.
현재 노소영 관장은 이혼 불가 입장을 밝힌 상태다.
이 외에도 故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 일본인 여성과 낳은 혼외자 이태휘 씨가 삼성가 상속소송에서 이름이 언급된 일도 있다.
코오롱그룹은 2004년 창업주 故 이원만 회장의 혼외자라 주장하는 이동구 씨가 상속소송을 제기해 법적다툼을 벌인 바 있다.
태광그룹의 경우 故 이임용 창업주의 친자로 확인된 이유진 씨가 부친의 차명재산 중 상속분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내 이복형인 이호진 전 회장과 법적 다툼을 벌였다. 이 씨는 친자확인 소송을 거쳐 이 창업주의 친자로 인정받았다. 이후 상속회복 청구소송을 통해 2005년 135억여 원을 상속했다.
일단락되는 듯했던 소송은 태광그룹 세무조사와 검찰수사로 다시 시작됐다. 故 이임용 창업주의 차명주식 등 상속에서 제외됐던 재산이 드러났고, 제외된 재산에 대한 상속분에 대한 요구 소송이 일어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