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철 사건 영화화 논란 구명철 감독 인터뷰
2005-05-24 정소현
최근 ‘잔혹한 살인’이 네티즌 사이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내심 불편한 기색이었다. 구 감독은 이 같은 사회적 논란에 대해 “영화는 작가와 감독이 만드는 것”이라고 다소 강경한 입장을 피력하며 “유가족들 때문에 각색을 하긴 했지만, 이것은 단순히 영화라는 창작품일 뿐 다른 것과 결부시켜 생각한다는 자체가 말이 안 된다. 표현의 자유를 놓고 네티즌들이 뭐라고 하는 몇 마디에 언론이 들떠 논란을 부추기는 것은 옳지 않은 행태”라고 꼬집었다. 그는 유영철 사건을 영화화하게 된 계기에 대해 “요즘 영화들은 너무 가볍다”고 운을 뗀 뒤 “흥미위주이거나 비현실적인 내용을 다룬 영화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진실성이 담긴, 다큐형식의 영화가 하나쯤은 태어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상상을 초월하는 잔혹하고 엽기적인 사건들이 줄을 잇는 세상에 경각심을 일깨워 줄 만한 영화로 유영철 사건이 적합하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많은 네티즌들이 모방범죄의 가능성과 사회적 충격, 유가족들의 상처 등을 들어 영화 제작에 반대하고 있고, 또 사회적으로도 논란이 거세지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제작이 순탄치만은 않을 터. 구 감독은 이에 약간의 한숨 섞인 목소리로 “쉽지 않은 작업인 것은 사실”이라면서 “유영철 사건이 발생했던 장소에 답사를 다녔는데 주변 사람들의 원성이 거셌다. 악몽에서 벗어나려고 하는데 왜 다시 상처를 건드리느냐며 항의를 하더라. 결국 평택 쪽에 사건 발생 지역과 분위기가 흡사한 곳으로 물색은 해놨지만 아마 제작이 진행될수록 난관에 봉착하는 일이 많을지도 모르겠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특히 구 감독은 인육을 먹었다는 유영철의 진술부분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에 대한 부분이 가장 고민스럽다고 말했다. 영화가 유영철의 진술 내용을 바탕으로 하는 만큼 유가족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사실적으로 표현해내는 작업이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유영철 역을 맡을 남자배우 캐스팅도 난관이다. 이미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유명 남자배우에게 러브콜을 보낸 상태지만 정작 본인이 사회적 분위기를 염려해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인 것(구 감독은 캐스팅 불발을 염려해 배우 이름 공개를 철저히 거부했다). 만약 논란이 더욱 거세진다면 배우가 고사할 위험도 있어 신인 배우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한다. 여자배우는 각종 CF와 드라마 ‘장희빈’ ‘결혼이야기’ 등을 통해 얼굴을 알린 배우 김유진(29)이 이미 낙점된 상태다. 구 감독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영화에 관한 논란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하지만 영화 제작을 포기할 마음은 전혀 없다는 게 구 감독의 생각. 구 감독은 현재 유영철과의 만남을 지속적으로 시도하고 있다고 했다. 지금은 면회가 쉽지 않아서 주변 사람들과 측근들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있지만, 7월 중순쯤 유영철 연쇄살인 사건의 최종판결이 나오는 대로 만나 그의 심경을 자세히 전해들은 뒤 곧바로 촬영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영화 ‘잔혹한 살인’은 국내가 아닌 이태리에서 먼저 개봉될 전망이다. 구 감독은 몇몇 배급사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는 국내 영화 배급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해외로 수출, 국제영화제 등에서 작품성을 인정받고 싶다는 계획도 내비쳤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절대 유가족들을 힘들게 할 생각은 없다”면서 “단지 뉴스를 통해 볼 수 없었고 느낄 수 없었던 많은 부분들을 흥미위주가 아닌 사실성 위주로 표현하고 싶었을 뿐이다. 부디 다시는 그런 희대의 살인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내 작품이 하나의 ‘영상물’로 인정되길 간절히 바란다”고 덧붙였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영화 ‘살인의 추억’은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당시에도 화성주민들의 반발이 거셌지만 결국 영화는 만들어졌고, 상업적 측면에서 ‘대박’을 터트렸다. 과연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을 다룬 영화 ‘잔혹한 살인’은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그 결과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