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속 녹취록 흑역사…“녹음될 줄 몰랐다”

‘녹취주의보’ 발령… 막말과 욕설 등 공개돼

2016-03-14     장휘경 기자

[일요서울장휘경 기자] 윤상현 의원의 막말과 욕설 녹취록이 공개돼 파문이 일면서 정치권에 녹취주의보가 발령됐다. 지난달 말 공천 살생부파문이 일자 새누리당 친박계 핵심인사인 윤상현 의원이 김무성 대표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며 김 대표의 공천 배제를 촉구하는 격한 발언을 한 것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지면서 파장이 일파만파 퍼진 것이다. 지난날 녹취록으로 인해 곤혹을 겪은 정치인들에 대한 사건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어서 정계에 초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윤상현 의원이 지난달 27일 한 지인과의 전화통화에서 김무성이 죽여버리게. 죽여버려 이 XX. 다 죽여라고 말했다는 녹취록이 지난 8일 한 언론 보도를 통해 공개됐다.
 
녹취록에 따르면 윤 의원은 내가 당에서 가장 먼저 그런 XX부터 솎아내라고. 솎아내서 공천에서 떨어트려 버리려 한 거야라는 등 격한 표현을 했다.
 
윤상현 의원을 둘러싼 새누리당 내 갈등의 골은 갈수록 깊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사건과 맞물려 녹음이 용이한 스마트폰이 폭로전의 도구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더불어 폭로와 진실의 경계에서 국민의 정치에 대한 불신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과거에도 녹취록으로 인해 곤혹을 겪었던 정치인들이 여럿 있었다.
 
먼저, 새누리당 류화선 예비후보는 자신도 모르게 나온 말이 녹취가 돼서 곤란을 겪고 있다.
 
경기 파주을 선거구에 출사표를 던진 새누리당 류화선 예비후보는 지난달 26일 오후 6시께 안심번호로 한 여성당원에게 전화를 걸어 지지를 호소했다.
 
당시 통화에서 류화선 예비후보는 “345일께 여론조사를 하는데 지지를 해달라현역의원이 뭐 하나 해놓은 것이 없다는 게 여론이니까 저를 밀어달라며 정상적인 통화를 했다.
 
그러나 약 2분가량의 전화 이후 류화선 예비후보는 별 거지 같은 X한테 걸렸네” “거지같은 X한테 걸리니까 김 새 가지고 또 에이” “이 더러운 걸 내가 왜 하려고 그러는지 아휴등 독백 형태의 발언을 했다.
 
이 전화 통화 내역은 최근 파주의 한 지역언론에 공개됐다.
 
류화선 예비후보는 전화가 끊어진 것으로 알고 혼잣말을 한 것인데 그걸 녹취한 것 같다“79초간 통화한 것으로 기록돼 있는데 실제 당원과 통화한 것은 2분도 채 안 되고 나머지는 혼자서 한 말이라고 밝혔다.
 
이어 상대가 전화를 끊었으면 자신도 끊는 것이 정상인데, 녹취해서 언론에 제보까지 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법정에 서게도 해
 
지난해 2월 이완구 전 국무총리는 총리후보자 신분으로 국회 인사청문회를 치르던 당시, 주요일간지 기자들과의 식사자리에서 언론사 외압을 암시하는 발언의 녹취록이 공개돼 큰 곤욕을 치렀다.
 
해당 녹취록은 식사자리에 동석한 한 기자가 이 전 총리의 음성을 사전에 동의 없이 녹음해 야당 의원에게 전달했고, 해당 의원이 그 녹취록을 KBS에 제보하면서 보도됐다.
 
이 전 총리는 기자들과의 식사에서 언론인들, 내가 대학 총장도 만들어주고, 교수도 만들어주고” “김영란법에 기자들 초비상이거든? 내가 막아줬는데 이제 안 막아줘. 지들 검경에 불려다니면 막 소리 지를 거야라고 발언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때 국회 임명동의안 표결을 가까스로 통과했지만, 두 달 후 또 다른 녹취록에 발목이 잡혔다. 고 성완종 경남기업 전 회장이 이 전 총리에게 선거자금 3000만원을 지원했다고 폭로하는 통화 녹취록이 공개됐기 때문이다.
 
이에 이 전 총리는 지난해 4월 단 63일 만에 총리직에서 낙마했고 결국 법정에 서게 됐다.
 
녹취록 파문의 핵심은 사적 대화의 녹취에 있다. 올해 초 벌어진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의 이희호 여사 비공개 면담 녹취록 공개 파문도 마찬가지다. 당시 안 대표 측은 이 여사가 비공개 면담에서 정권교체의 주축이 돼라고 말했다고 설명했지만 진위여부 논란이 일자, 안 대표 측 실무진이 녹취록을 공개하면서 도덕성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녹취록에 따르면 안 대표가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꼭 정권교체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꼭 정권교체가 되도록 밀알이 되겠다는 마음입니다라고 하자 이 여사가 꼭 그렇게 하세요라고 답한 것으로 나온다. 동교동 방문 직후 안 대표가 “(이 여사가) 앞으로 만드는 정당이 정권교체를 하는 데 꼭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기대를 갖고 있다는 말씀을 해주셨다고 밝힌 것과는 뉘앙스 차이가 있다.
 
때문에 비록 녹취록은 안 대표 측의 주장을 뒷받침했지만, 반응은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갔다. ‘좋은 의미로 만난 자리에서 어떻게 녹음을 할 수 있느냐는 여론도 들끓었다.
 
결국 최원식 국민의당 대변인은 지난 127“(안 대표가) 수행했던 실무진이 녹음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희호 여사께 큰 결례를 범했고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고 밝혔다. 탈당 초기 욱일승천하던 안 대표의 기세는 이 녹취록 때문에 주춤했다.
 
불법 도청 부각
 
90년대에도 녹취록은 정치권의 주된 화두 중 하나였다.
 
이른바 초원복집사건으로 유명한 녹취록의 주인공은 초기 박근혜 정부 실세였던 김기춘 전 비서실장.
지난 1992년 당시 법무부 장관이던 김 전 실장은 14대 대통령선거를 일주일 앞두고, 부산의 초원복집에서 지역 기관장들과 모여 김영삼 민주자유당 후보 지원을 모의했다.
 
그들은 이 자리에서 그 유명한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과 함께 민간에서 지역감정을 부추겨야 돼라고 발언하는 등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대화를 주고받았다.
 
단순 지인들과의 모임으로 묻힐 뻔한 이 사건은 대선 3일을 앞두고 그들의 대화가 담긴 카세트테이프와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알려졌다.
 
이에 김 전 비서실장은 당시 모임은 순수하고 사사로운 우정의 자리였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하지만 여당의 능수능란한 대처에, 녹취록 당사자인 김 전 실장의 상황은 불리하게 돌아가지 않았다.
 
여당은 경쟁 정당인 통일국민당의 불법 도청을 부각시키는 방식으로 맞받아쳤고, 이로 인해 목적대로 영남 지지층 결집에 성공했고 결국 YS는 대통령에 당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