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권’ 뺏긴 김무성-문재인…총선 후 대권판도 바뀐다

여야 차기 주자 빨간불

2016-03-13     류제성 언론인

이한구에 밀리고 김종인 칼춤만 바라보고…
2017년 대선 양자대결 구도 허물어질 수도

[일요서울 | 류제성 언론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각각 여야의 차기 대권주자 여론조사에서 선두에 서기 시작한 지 1년 남짓 됐다. 김 대표는 2014년 7·14 전당대회를 통해 당권을 잡은 뒤 곧바로 치러진 7·30 재보선에서의 압승을 이끌며 여권의 독보적인 차기 주자가 됐다. 문 전 대표는 2015년 2·8 전당대회 승리가 대권 재수(再修)의 발판이었다.

지난 1년 동안 두 사람은 엎치락뒤치락 하며 차기 주자 여론조사 종합 1위 자리를 주고받았다. 잠재적 대권주자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제외 했을 경우다. 4·13 총선을 눈앞에 둔 지금은 문 전 대표가 조금 앞서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의 3월 둘째 주 여론조사에 따르면 차기 대선후보 지지율 1위는 21.1%를 얻은 문재인, 2위는 16.8%에 머문 김무성이었다.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그러나 지금은 김 대표와 문 전 대표 모두 백척간두에 서 있다. 총선 공천 국면에서 두 사람 모두 뒷전으로 밀려나면서 최대 위기를 맞은 까닭이다. 김 대표는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개정된 당헌·당규를 바탕으로 상향식 공천(경선) 원칙을 정했지만 친박계인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들어와 무력화시켜 버렸다.

문 전 대표는 ‘김상곤 혁신안’을 적용해 ‘시스템 공천’ 제도를 만들었지만 김종인 비대위 대표가 휴지통에 쳐 박았다.

여야 新주류로부터 고립

이 과정에서 두 사람은 각각 여야의 신(新)주류로부터 철저히 고립되면서 존재감을 상실해 가고 있다. 김 대표는 이한구 공관위원장 앞에서 공천 면접심사를 받았다.

이 위원장으로부터 “현직 당대표도 공천에서 탈락한 사례가 있다” “김 대표의 공천 결정은 가장 뒤로 미루겠다”는 말도 들었다. ‘살생부’ 파동이 났을 때는 사과를 하고 “공관위의 공정성을 저해하는 행위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야 했다.

김대표는 청와대 정무특보 출신 윤상현 의원이 제3자와의 통화에서 욕설을 퍼붓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문 전 대표는 자신이 영입한 김종인 대표가 점령군처럼 공천칼날을 휘둘러도 반발조차 하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

본격적인 총선 정국을 맞아 경남 양산 칩거를 끝내고 지원유세를 다니며 기지개를 켜려 했지만 이 역시 김 대표가 막았다. 김 대표는 기자들과 식사를 하면서 “(문 전 대표가) 움직이는 건 본인 자유지만 공식적으로 움직이는 건 안 했으면 좋겠다. 크게 되려면 참고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하는데, 그걸 못하면 안철수처럼 된다”고 훈계 했다.

이 때문에 총선이 끝나면 선거 결과에 상관없이 김무성-문재인의 차기 대권경쟁 양자구도가 허물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많다.

김 대표의 경우 새누리당이 선거에서 지면 ‘지도부 책임론’에 휘말리게 된다. 오는 7월로 예정된 차기 전당대회 이전에 대표직을 내려놓는 상황도 가상할 수 있다. 이 위원장은 선거에 지더라도 이미 총선 불출마로 정계를 은퇴한 상태이니 당을 떠나면 그만이다.

현 상태라면 새누리당이 선거에서 이겨도 김 대표에게 남는 건 별로 없다.

이 위원장을 내세워 김 대표의 상향식 공천 주장을 무력화 시키고 사실상의 전략공천(우선추천지역·단수추천제)을 통해 새 인물을 대거 투입한 친박계에게 공이 돌아간다. 친박계는 그 여세를 몰아 최경환 의원을 간판으로 당권을 장악한 뒤 대항마를 투입해 ‘김무성 고사(枯死)’ 작전에 착수할 태세다.

총선이 끝나면 새로운 대권주자들이 나타나게 된다. 만일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나 안대희 전 대법관 등이 경쟁을 뚫고 국회에 입성하면 유력한 차기 주자로 부상한다. 그들이 아니더라도 ‘반기문 카드’가 있다. 최근 반 총장의 최측근인 윤여철 전 외교부 의전장이 박근혜 대통령의 외부 일정을 담당하는 청와대 의전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긴 배경에 주목하는 시선이 많다.

문 전 대표의 경우 김 대표와 상황은 다르지만 처지가 비슷하다. 더민주가 선거에서 패배하면 직전 1년 동안 당을 이끌었던 입장에서 책임론에 휘말려 든다.

특히 수도권에서 끝내 국민의당과 선거연대를 하지 못해 야권분열로 여당에 지면 더욱 그렇다.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공동대표와 김한길 상임선대위원장 등이 문 전 대표가 사퇴를 하지 않은 걸 이유로 당을 떠나 신당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더민주가 선거에서 이기면 그 공은 고스란히 ‘김종인체제’의 몫이 된다. 김 대표가 문재인체제 때 만든 시스템 공천 룰을 깨고 ‘김종인 표공천’을 한 게 승리의 발판이 됐다는 인식이 확산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선거 막판에 야권연대가 이뤄져 이길 경우 “문재인이 분열시켰던 야권을 김종인이 통합해 선거승리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따라서 선거 결과가 어떻게 되더라도 문 전 대표 입장에선 당의 주인으로 복귀할 길이 마땅찮다. 다시 전당대회에서의 당권경쟁에 도전할 수도 없고, 총선에 출마하지 않으니 원외인사가 된다. 특히 공천 과정에서 문 전 대표의 버팀목인 친노계가 속속 배제되는 데 이어 본선에서도 대거 탈락하는 상황이 오면 ‘군사 없는 장수’가 되어 대권전쟁에 참전조차 어려울 수 있다.

더민주의 ‘김종인 대망론’

여권의 김무성 대표와 마찬가지로 야권에도 ‘문재인 대체재’는 수두룩하다.

당장 더민주가 선거에서 이기면 ‘김종인 대망론’이 뜰 수 있다. 김종인 대표는 좌우를 넘나든 경륜과 조부(가인 김병로) 등 가문의 우월성, 이번 공천 과정에서 보여준 과단성 등이 장점이다. 특히 김 대표는 비례대표 출마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부쩍 정치적 욕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선거에서 지면 문 전 대표는 가라앉고 그 자리를 야권 내 대권주자 지지율 2위인 박원순 서울시장이 빠르게 접수하게 된다.

김 대표나 문 전 대표 모두 이런 위기 상황을 모를 리 없다. 따라서 당연히 돌파구를 찾고 있다. 먼저 김무성 대표의 무기는 두 가지다. 하나는 비박계 현역 의원들에 대한 컷오프(공천 원천배제)가 현실화 되는 시점에 ‘당 대표 긴급 성명’ 등의 형태로 이한구체제 공관위의 전횡을 문제 삼아 공천결정 불복종 운동을 이끌어 가는 길이다. 이 경우 용퇴론이 제기된 영남의 중진 의원들이 버팀목이 될 수 있다.

원래 친박계 출신이지만 사무총장을 맡은 뒤 김 대표와 가까워진 황진하 공관위원과 비박계인 홍문표 공관위원(제1사무부총장)이 10일 저녁 “이한구 위원장의 독단적 회의운영을 지켜보기 어렵다”며 공관위 회의 보이콧을 선언한 건 ‘김무성 세력 반란’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 

물론 김 대표의 그런 강공책은 총선이 임박한 시점에서 큰 위험부담이 된다. 자칫 당을 공멸로 몰아간다는 비판을 한 몸에 받게 된다.

만일 이 방식이 부담스럽다면 ‘옥새’(당 대표 직인)를 꽉 붙잡고 있는 길도 있다. 중앙선관위에 제출하는 후보등록 신청서에는 정당 공천후보의 경우 반드시 당 대표 직인이 찍혀야 한다. 실제로 그런 막장 드라마까지 가기는 어렵겠지만 대표의 지분을 확보하기 위한 비장의 무기로 사용할 수 있다.

문 전 대표는 현재로선 마땅한 돌파구가 없다. 친노계 현역 의원들마저 실질적인 공천권을 쥐고 있는 김 대표의 눈치를 살피느라 동료 의원들이 내처지는데도 몸을 사린다.

하지만 막바지 공천 시점엔 탈락 위기에 몰린 친노계가 본색을 드러낼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양산의 문 전 대표가 깃발을 들 수 있다. 지금은 문 전 대표가 ‘거사’ 시점을 탐색 중이란 해석도 나온다. 서울 대표(김종인)와 양산 대표(문재인)의 불안한 동거체제가 3월 중순에 위기를 맞게 될 것이란 소문이 나도는 이유다.     

이 역시 시간이 촉박하다. 따라서 김 대표가 자기 뜻대로 공천을 완료한 3월 하순에 살아남은 친노계를 규합해 김종인 체제를 무력화 시킨 뒤 본선을 문재인의 개인기로 치르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방식은 선거에 악영향을 미치겠지만 문 전 대표 입장에선 김 대표를 밀어내고 자신이 다시 당의 중심에 설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물론 김 대표나 문 전 대표가 각자 공멸을 막기 위해 이번 총선 국면에선 완전히 뒤로 빠지고 선거 결과에 따라 대권 플랜을 다시 짤 수도 있다. 다만 그런 느슨한 전략을 구사하기엔 두 사람의 힘이 너무 빠져 있다는 데 공통의 고민이 있다.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