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학교법인의 ‘마이웨이’
동국대 내홍 끝나나 했더니… 다시 재연되나?
2016-03-07 권녕찬 기자
종단의 과도한 개입 논란… 대학 정상화 목소리 커져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이사회를 구성하라’
동국대학교 서울캠퍼스에서 한 학생이 들고 있는 피켓에 적혀 있는 문구다. 2014년 말부터 조계종 학교법인 동국대학교와 학내 구성원은 극심한 내홍을 겪어왔다. 일단락되는 모양새였지만 여전히 진행중이다. 새 학기를 맞아 또 다른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지난달 23일 조계종 학교법인 동국대학교(총장 보광 스님) 이사회가 그동안 총장과 이사장 선임을 반대하며 단식투쟁을 벌였던 한만수 교수(57·교수협의회 회장)를 직위해제하면서 학내 갈등이 재현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1월 초 교원징계위원회에 회부될 당시에도 교수와 학생이 강하게 반발해 이번 징계조치로 인해 동국대와 학내 구성원 간의 갈등이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학교법인 동국대 정관(제48조)은 징계의결이 요구된 자, 형사사건으로 기소된 자 등에 대해 직위해체를 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징계대상자인 한만수 교수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과거 대법원 판결문을 보여주며 이번 징계는 부당하다고 밝혔다. 사립학교법 제58조의2에 의한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과 직위해제제도의 목적에 비추어 볼 때 형사사건으로 기소되거나 징계의결의 요구를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직위해제 처분을 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한 교수는 “징계 사유가 된 교수 폭행 혐의에 대해 약식기소가 됐지만 무죄임을 확신하기 때문에 약식명령을 거부하고 정식재판을 요청한 상황”이라며 “아직 재판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조치는 보복성 징계가 아닌지 매우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1월에 열린 공판에서 자신의 무죄를 입증해 줄 물적 증거(사진)를 제출했고 재판부는 증인들의 진술서와 함께 이를 증거로 채택한 상태다. 그는 “학교 당국이 통보하는 과정에서 어떤 사전 설명이나 소명 기회를 주지 않았다”며 “학내 행정망을 통해 달랑 서류 한 장만을 보냈다”고 말했다. 이어 “강의권도 박탈돼 새 학기가 시작됐지만 수업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학교 측은 개강을 앞두고 교수 측에 대체강사 구인을 통보했다. 그러나 아직 강사를 구하지 못해 최근 수업이 휴강됐다. 새 학기를 맞은 학생들이 학습권을 침해당하는 등 고스란히 그 피해를 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동국대 홍보실 관계자는 “학교 차원에서 교원·직원징계위원회가 진행 중이어서 그 외 달리 드릴 말씀이 없다”고 밝혔다.
동국대는 2014년 말부터 종단의 학교운영 개입 논란을 일으키며 교수·학생·교직원과 첨예하게 대립해왔다. 12월 4일 총장 선출을 위한 총장후보추천위원회의 투표에서 김희옥 당시 총장이 1위, 한태식(보광스님)이 2위, 조의연 교수가 3위로 선정됐다. 그러나 일주일 뒤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과 일면스님(현 이사) 등 고위 간부스님들과 점심 회동 직후 김희옥 후보가 돌연 사퇴하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이어 조의연 교수도 사퇴함에 따라 총장 선거는 극심한 파행으로 치달았다.
지난해 1월 5일 교수협의회는 전체 비상총회를 열고 스님이사 수 축소, 총장후보추천위원회 규정의 민주화, 현 사태에 대한 종단 및 이사회의 사과, 화쟁위를 통한 사태 해결 등 5개항을 만장일치로 결의안 채택했다. 이후 이사회는 개·폐회를 거듭하며 총장 선임문제를 차기 회의로 넘겼다.
당시 보광스님에 대한 논문 표절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었고 탱화(불교 신앙을 담은 그림) 유출 의혹을 받고 있던 일면스님은 2월 말 이사장에 선출돼 적합성 논란이 가열됐다.
4월 21일 최장훈 대학원 학생회장이 조명탑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29일에는 수도권 12개 대학 교수협의회와 7개 시민단체가 동국대에 모여 기자회견을 하며 합리적 해결을 촉구했다. 그러나 이사회는 5월 2일 보광스님을 제18대 총장으로 선출했고 이에 범동국인 비상대책위(총학생회, 일반대학원 총학생회, 교수협의회, 총동창회)는 “인정할 수 없다”며 성명서를 내고 즉각 반발했다. 학생들은 광화문에서 피켓시위를 하고 교수와 동문은 천막 릴레이 단식을 이어갔다.
6월 30일 열린 이사회는 보광스님의 논문 표절 의혹에 대한 징계요구안을 기각했다. 지난 2월 초 동국대 학교연구윤리진실성 위원회가 ‘보광스님의 논문 다수가 표절한 것으로 보인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과 다른 결정을 내린 것이다. 탱화 유출 의혹을 받고 있던 일면스님에 대해서는 조계종 총무원 호법부가 지난 2005년 사건 발생 후 시간이 오래 지난 점, 탱화가 회수됐다는 점을 감안해 징계 회부 유예로 결정했으며 유출·도난 여부는 판단을 내리지 않고 사건을 종결한 바 있다.
교수와 학생들의 투쟁은 2학기가 돼서도 계속됐다. 9월 17일 총학생회는 학생총회를 열어 동국대 이사장·총장 사퇴안을 전체 표결인원 1,800명 중 찬성 1,799명으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통과시켰다. 10월 15일 김건중 부총학생회장이 단식투쟁을 시작했고 11월 10일에는 한만수 교수협의회 회장과 김준 교수회 비대위원이 동참했다.
11월 16일과 25일에 각각 총장 보광스님과 이사장 일면스님이 김 부회장의 농성장에 방문해 짧은 만남이 이뤄졌지만 학생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건중 부총학생회장이 단식 50일째 되던 2015년 12월 초 병원으로 긴급 이송되자 학교는 이사회를 긴급 소집해 단식 농성 중단을 조건으로 이사 전원사퇴를 결정했다. 이어 일면스님은 이사장 연임 포기 선언과 함께 “전 임원 자진사퇴 약속을 한 분도 빠짐없이 이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한국 문과대학 학생은 “김 부총학생회장이 목숨을 걸고 단식을 하는데도 학교 당국이 변하지 않는 것을 보고 ‘사람 목숨이 별거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학생과 소통이 되지 않는 학교가 과연 학교 미래를 잘 이끌어갈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이사회는 결원 이사 4명을 새로 선임했고 이후 나머지 사퇴 절차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결원 이사 4명 모두 스님이사로 메워져 종단의 과도한 운영 개입 논란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한 모습이다. 현재 이사 정원 13명 중 9명이 스님이사다. 특히 전원사퇴를 선언했던 당시 이사장 일면스님은 현재 이사로 등록돼 있어 ‘꼼수 사퇴’가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안드레 총학생회장은 “현재의 이사회 구조는 폐쇄적이고 학생을 배제하고 있다”며 “대학 본연의 교육기관으로서의 가치를 잃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지금의 사태를 기회로 삼아 대학의 자주성과 민주성 회복의 계기로 만들겠다”며 “캠페인과 성토대회를 통해 신입생과 재학생에게 적극적으로 알려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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