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전쟁과 평화’ 프레임으로 재미
야권, ‘천안함의 추억’ 떠올리나
[일요서울 | 류제성 언론인]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정부가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한 조치로 개성공단 가동을 전면 중단하자 “정말 전쟁이라도 하자는 것인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이 발언을 두고 보수층에선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쏘는 북한을 향해 해야 할 말 아니냐”고 거세게 비판하고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야당 지도자가 ‘전쟁을 하자는 것이냐’ 이렇게 말한 건 국민 협박이다. 전쟁을 억제하자는 정부 대책을 어떻게 전쟁하자는 논리로 둔갑시키는지…”라며 혀를 찼다.
이런 반발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문 전 대표는 왜 ‘전쟁’을 입에 담았을까. 이에 대해선 야권에서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천안함 폭침 사태가 났을 때 ‘전쟁과 평화’ 프레임을 내걸어 승리를 거둔 ‘추억’ 때문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당시 선거 결과는 ‘북풍’이 보수정당에 무조건 유리하다는 인식을 바꿔놓았다.
1987년 대선 직전인 11월 29일 일어난 KAL기 테러사건이 선거에 영향을 미친 ‘북풍’의 원조격이다. 대선 하루 전날 폭파범 김현희가 특별기로 국내에 압송되면서 ‘안보 위기론’이 확산되는 바람에 민정당 노태우 후보 당선에 큰 힘이 됐다. 1992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안기부가 학원·노동계의 주사파를 적발했다고 발표한 ‘남한 조선노동당 사건’, 1996년 4월 총선 직전에 북한군의 판문점 무력시위도 보수정당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그러나 냉전체제가 완전히 붕괴된 2000년대 이후에는 사정이 달라졌다. 북풍의 역풍이 불기 시작했다. 2002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6월에 우리 해군 장병 6명이 전사한 제2연평해전이 터졌다. 또 그해 10월엔 2차 북핵 위기가 고조됐다. 그러나 대선에선 진보성향의 노무현 후보가 당선됐다.
이때까지는 북풍이 보수정당이든 진보정당이든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2010년 6·2 지방선거에선 북풍이 오히려 진보정당 쪽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그해 3월 천안함 폭침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자 당시 야당인 민주당이 오히려 북풍을 역으로 이용했다. 당시 민주당은 ‘1번은 전쟁, 2번은 평화’란 구호를 내걸었다. 기호 1번인 여당을 찍으면 남북의 극한 대치로 전쟁이 일어나고, 기호 2번인 야당을 찍으면 북한과의 대화를 통해 평화가 온다는 자극적인 호소였다. 당시 자식들을 군대에 보낸 부모들을 중심으로 “잘못 하면 우리 아이들이 전쟁터에 나간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결국 지방선거에서 야당이 압승하는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이 때문에 문 전 대표는 이번에도 ‘전쟁과 평화’ 프레임을 총선에 활용할 태세다. 반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북한 사태를 선거에 이용해선 안된다”고 출마자들에게 당부하고 있다. 과거에 비해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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