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 여중생 미라 상태 시신 발견 ‘충격’
목사 아버지가 딸 사망 전 5시간 폭행
2016-02-15 박찬호 기자
신학대 교수·목사인 아버지가 집안에 시신 방치…엽기적인 사건
[일요서울 | 박찬호 기자] 또 한 아이의 허망한 죽음이 드러났다. 시신이 훼손된 채 발견된 부천 최 군 사건 이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같은 지역의 여중생이 미라 상태 시신으로 발견됐다. 이 양 역시 11개월가량 학교에 나가지 않은 장기 결석생이었지만 지난해 6월 ‘정원외’로 분류된 후 7개월 동안 공적 감시망 안에 포착되지 못했다.
초등생 아들을 폭행해 죽이고 시신을 훼손해 냉동고에 보관한 사건이 마무리되기도 전에 서울 신학대 교수이자 한마음교회 목사인 아버지가 여중생(14) 딸을 폭행해 숨지게 한 뒤 11개월 가까이 집안에 방치해온 엽기적인 사건이 또다시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부천 소사경찰서는 2월3일 가출했다 귀가한 여중생 딸을 때려 숨지게 한 후 시신을 자신의 집 방에 방치해온 이모 목사(47)와 계모 백모(40)씨를 아동학대 치사혐의로 긴급체포했으며, 피해자의 새 이모(39)도 폭행 혐의로 긴급체포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 목사와 계모 백 씨는 2015년 3월 17일 오전 7시부터 12시까지 중학생 딸(14)에게 가출이유 등을 추궁하면서 빗자루와 빨랫대를 사용해 폭행한 뒤 잠을 재웠으며, 오후 7시쯤 딸 방에 가보니 숨져 있어 이불을 덮어둔 채 지금까지 11개월 가까이 방치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여중생의 시신은 2월3일 오전 9시쯤 이모 목사 집에 대한 경찰의 압수수색 과정에서 이불에 덮인 채 오랜 시간 방치된 탓에 밀랍형 미라 상태로 발견됐다. 집안에는 시신이 부패하는 냄새를 막기 위해 방향제를 뿌리고 향초 등을 피웠으며, 습기제거제를 군데군데 놓아둔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시신을 집에 놓아둔 것에 대해 기도를 하면 다시 살아날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라고 경찰에서 진술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여중생의 시신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하는 한편 이들 부부를 상대로 사건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딸 사망 후인 지난해 3월 31일 아버지 이 목사가 가출신고를 한 데 대해 경찰이 주변인물을 대상으로 소재파악을 하던 중 이 양의 친구로부터 “잠을 같이 잔 적이 있는데 친구 몸에 멍자국이 있었다”는 진술을 확보, 부모의 학대 여부 등을 끈질기게 수사한 경찰에 의해 드러났다.
경찰은 “지난해 이 양의 가출 신고를 접수한 후 이 씨를 3차례 정도 만나고 수시로 전화 통화를 했지만 ‘집에 가서 이야기하자’고 하면 계속 ‘내 직장인 학교로 오라’고 해 집에 들어가보진 못했다”고 말했다.
숨진 여중생의 아버지 이 목사는 67년 전남 화순의 유복하지 않은 가장환경에서 태어났다. 이 목사의 삶속에서 가난은 늘 이 목사의 인생에 걸림돌이 되었다. 그는 공부욕심이 많았다. 하루 8시간씩 도서관에서 공부했고 유학을 꿈꿨다. 주변 사람들은 유복하지 않은 가정환경에서 자란 이 목사가 뭔가를 이뤄내기 위해 악착같이 공부한다고 생각했다.
국내의 경기도 부천의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후 2007년 독일 부퍼탈의 베델신학대학에서 신약학을 전공,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귀국 후에는 모교인 서울신대 겸임교수로 임용돼 고대 그리스 언어인 기초헬라어를 가르쳐 왔으며, 현재 부천 송내의 한 교회에서 담임목사를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목사는 2007년 독일에서 유방암으로 숨진 전처와의 사이에 1남 2녀를 뒀으며 숨진 이 양은 막내딸이다.
그는 전처가 사망한 뒤 2009년 12월, 자신이 겸임교수로 있는 서울신학대교의 평생교육원에 다니던 백 씨를 만나 결혼했다. 백 씨는 초혼이었다.
그러나 자녀와 갈등을 빚으면서 2012년 아들(19)이 가출하자 이 목사는 그해에 큰딸(18)은 독일로 유학을 보내고, 막내딸인 이 양은 백 씨의 여동생 집으로 보냈다. “백 씨의 여동생에게 이 양과 비슷한 또래의 딸이 있어 잘 지낼 것 같아서”라는 것이 이 목사의 해명이었다.
이후 집에는 이 목사와 백 씨 부부만 살았으며, 자녀들과도 거의 왕래를 하지 않아 이 양의 오빠와 언니는 동생이 사망한 사실도 몰랐다는 것이 경찰의 전언이다.
백 씨의 여동생에게 맡겨 이 양은 그곳에서도 학대를 당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를 견디다 못한 이 양은 자주 가출을 했으며, 중학교에 입학한 지 2주 만인 지난해 3월 15일에도 가출했다. 학교는 3월 12일부터 결석했다.
그러나 사망 당일인 16일 새벽 1시쯤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교사의 손에 이끌려 부모에게 인계되었으며, 이들이 살고 있는 집으로 들어가게 됐다. 그 사이 또 한 번 도망을 쳤지만 곧 다시 붙잡혀 5시간 동안 무자비한 폭행을 당했고 결국 사망한 채 발견됐다.
2011년 8월 5일 갱신된 이 목사의 페이스북에는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고 있는 두 딸의 사진이 프로필 사진으로 올라 있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한편 교육 당국이나 경기도 부천시는 이번에도 사고 예방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학교나 교육청은 지난해 3월 12일 이후 10개월여 동안 결석한 이 양이 숨진 채 발견될 때까지 결석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한 상태로 결석학생 관리체계의 문제점을 다시 한 번 드러냈다.
통상 학교에서는 학생 가출 시 3일 내 담임교사가 가정방문을 하게 돼 있고, 그래도 등교를 안 할 시에는 일주일 내 다시 독촉장을 발송해야 한다. 읍면동사무소에도 신고해야 한다. 이후 3개월이 지나면 정원 외 관리로 넘겨진다.
이 양은 초등학교 때까지는 밝은 아이였다고 한다. 부천교육지원청 관계자는 “선생님 말이 초등학교 때는 항상 밝은 아이였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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