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낙하산 人事 새풍속도

회장보다 부회장·전무로 ‘알짜 틈새인사’ 노린다

2016-02-15     이범희 기자

[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고위공직자들의 인사 양상에 새로운 모습이 관측되고 있다. 그동안 낙하산 인사에 대한 지적이 시끄럽자 이번에는 틈새인사로 둥지를 트고 있다. 1인자가 아닌 1.5인자 자리에 안착해 수당을 받고 직위를 이어가고 있다.

이같은 움직임이 심상찮게 벌어지면서 또다시 ‘관피아’ ‘금피아’에게로 시선이 쏠린다. 이들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틈새인사의 전횡을 지켜볼 수 있기 때문이다.

생·손보협회 전무직에도 관료, 둥지 트나 ‘촉각’
비정상적 인사 뿌리 뽑아야 vs 근절 쉽지 않아

호사가들은 공공기관의 낙하산 인사를 근절하지 않고 공공기관을 개혁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라며 낙하산인사 척결이 ‘비정상의 정상화’의 신호탄이 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어 “낙하산인사를 방지하지 못하는 현행 공공기관 인사제도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면서 “공공기관의 진정한 개혁은 비정상적 관피아 낙하산 관행의 뿌리까지 뽑아야만 가능하다”고 덧붙인다.

이런 분위기 탓인지 낙하산 인사가 진행되는 곳에는 여과없이 시민단체와 노조의 반박 움직임이 외부로 표출됐고 이로 말미암아 자리만 차지하던 일부 인사들은 호된 질타를 받았다.
모두가 공감할 정도의 수치는 아니더라도 개선의 움직임을 보이며 조금은 나아지는 방향으로 흐르는 듯 했고 곳곳에서 터져나오던  자성 목소리에 전문성 없는 낙하산 인사는 줄어들었다.

그러나 수면 아래 있던 낙하산 논란이 또다시 불고 있다. 최근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를 들여다보니 또 다른 신풍속이 만들어지고 있다.  회장 자리는 대외적으로 노출 부담이 커서 주로 ‘넘버2’ 자리에 안착을 시도하는 인사들의 명단이 외부로 알려지고 있다.

일부 매체를 통해 알려진 내용을 보면  금융투자협회는 청와대 선임행정관을 지냈던 한창수씨를 지난해 3월 전무로 선임했다. 최근 만들어진 신용정보원은 전 금감원 제재심의국장인 김준현씨를 전무이사로 선임했다.

지난달까지 금감원 금융투자감독국장을 맡았던 조국환씨는 1일 사표를 내고 IBK 신용정보회사 부사장실로 자리를 옮겼다. 은행 쪽을 담당했던 또 다른 국장은 현재 신용협동조합중앙회 임원으로 가기 위해 취업 승인 신청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넘버 2’가 좋아

금융감독원 출신 이기연 전 부원장보는 여신금융협회 부회장, 정이영 전 조사연구실장은 저축은행중앙회 전무로 옷을 갈아입었다. 

박영준 전 부원장은 캠코 부사장, 권인원 전 부원장보는 주택금융공사 상임이사, 박임출 전 자본시장조사국장은 예탁결제원 상무 등 공기업과 관련 조직에도 대거 자리를 잡았다.
조영제 전 부원장은 금융연수원장, 최진영 전 부원장보는 보험연수원장, 허창언 전 부원장보는 금융보안원장, 최종구 전 수석부원장은 지난달 SGI서울보증 사장에 취임했다. 질타의 시선을 피한 낙하산 인사의 전형이다.

또한 손해보험협회와 생명보험협회는 현 정부 들어 ‘부회장’직을 폐지했지만 최근 들어 전무 등의 직제 도입을 추진 중이라 “낙하산 착륙장을 만들려는 것이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생명보험협회는 최근 정관을 변경해 ‘수석 본부장’을 신설했고, 손보협회는 전무직 신설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아직까지 내정자를 선임하지는 못한 상태다.

두 협회는 “내부 사정 때문에 선임을 못하는 것일 뿐”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금융계에선 금융당국 눈치를 보느라 인사를 못하고 있다는 얘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금감원 출신들이 관피아 논란이 수그러들면 다시 협회 고위직으로 가려는 생각에서 협회 내부 출신이 전무로 선임되는 걸 마뜩지 않아 한다는 얘기가 많다”고 전했다.

금융 관련 시민단체는 “모피아(Mofia)들은 인허가 등 금융권의 목줄을 꼭 잡고 ‘슈퍼 갑’ 역할을 하다가, 민간인으로 신분이 바뀌었어도 자기들끼리 ‘자리’를 챙겨주고 있다”며 “당연히 민간단체이고, 민간의 자율 선임방식이 있지만 ‘민간인’들이 아예 탐을 내지 못하고, 금융사들은 ‘슈퍼 갑’의 눈치를 보고, 호불호도 표현하지 못하는 실정이다”고 비난했다.

이어 “경제민주화는 정부가 민간에 대해 ‘갑’의 역할을 하지 않아야, 민간에서의 ‘갑’의 횡포가 사라질 것이다”라며 “이제라도 금융 단체의 장은 ‘모피아’가 아닌 민간에서 ‘전문가’들이 등장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