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터뷰] 구파발 총기 사고 피해자 가족…“그게 마지막일 줄은 몰랐다”

2016-02-04     오유진 기자

[일요서울 | 오유진 기자] 지난해 825일 서울 은평구 구파발 군경 합동 검문소에서 자신을 빼고 간식을 먹는다는 이유로 함께 근무하는 의경을 권총으로 쏴 숨지게 한 경찰관에게 법원이 1심 재판에서 살인죄가 아닌 중과실 치사를 선고한 것에 대해 피해자 가족 측은 억울함을 전해왔다.

구파발 총기 사고 피해자 가족은 지난 2[일요서울]과의 인터뷰를 통해 판결이 이런 식으로 나오니깐 너무 억울하다라며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다.
 
앞서 경찰은 살인 고의가 없었다고 보고 박모 경위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검찰에 넘겼지만 검찰은 안전장치까지 풀고 총기를 격발한 사실을 근거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혐의를 적용해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하지만 서울서부지법 형사 11(부장 심우용)는 지난 127일 총기 사고를 일으켜 의무경찰을 숨지게 한 경찰관 박모 경위에게 중과실 치사로 징역 6년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이 사건 검문소에서는 감독관들이 모두 하나의 권총을 인수인계해 사용하면서 그 원형 탄창 내 총탄 배열 확인 절차도 후임 감독관에게 전적으로 맡겨 두어 그에 대한 확인이 사실상 제대로 행하여질 가능성이 적었고 이러한 경우 원형 탄창 내부 탄창 배열을 정확히 확인해 실탄이 발사되지 아니하도록 하는 등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주의의무를 게을리한 채 격발한 중대한 과실로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 피고인은 위험한 물건을 휴대해 피해자를 협박하고 중대한 과실로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판시했다.
 
판결 후 가족들의 심경
 
이번 판결에 대해 피해자 가족 측은 자신의 아들의 죽음으로 몰고 간 경찰관이 살인죄가 아닌 중과실치사로 선고받자 판결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박 수경의 동생은 솔직히 법을 믿었기 때문에 1심 판결이 나기 전까지 조용히 했다. 1심 판결이 나고서 법에 배신을 당한 느낌이다. 있는 사람을 위한 법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라고 심경을 전했다.
 
박 수경의 모친은 장례를 치른 후 열흘 동안 기억이 없다. 열흘 동안 지낸 과정에서 아빠가 사건 브리핑 받았던 것 등 인터넷을 통해 참작을 하고 있는 상황에 저렇게 억울하게 죽은 애가 있다고 하면 법원에서 증명을 해줄 거라고 생각했다라며 재판 결과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박 수경의 부친 역시 판결이 이런 식으로 나오니깐 너무 억울하다재판 결과가 이해가 안 된다. 정말 이해가 안 된다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박 수경의 모친은 죽 쒀서 개 준다고 대한민국에다가 나라 지키라고 보낸 점이 억울하다. 나라를 당연히 가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굴 믿고 잠을 자겠나. 하지만 이제는 탈영을 왜 하는지 이해가 된다라며 분노했다.
 
재판 당시 전·후 상황 설명
 
박 수경의 부친은 “(박모 경위가) 처음에는 변호사를 사설 변호사가 아니고 국선 변호사를 선임이 했는데 그러는 와중에 그쪽 측에서 절대 변호사 선임을 안 한다고 했다. 자기는 절대로 선임을 안 하겠다. ‘차라리 변호사 선임할 돈이 있으면 세원이 천도재를 지내주고 싶다라고 말했다. 나중에 알아보니 재판이 다가오자 변호사를 선임했다”고 전했다. 
 
그는 (박모 경위와 첫 대면했을 당시) 깨끗하게 죽였다고 인정을 하면 우리 가족이 선처해준다고 얘기를 했다. 재판에서 모든 것을 인정하고 죽인 것을 인정하면 선처를 해줄 의향이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변호사를 선임하고 맘이 바뀐 것 같다”면서 본인 잘못을 인정을 하면 그렇게 안 하겠죠. 덜 살겠다고 변호사 선임하는 거라고 밖에 안 보인다고 설명했다.
 
재판 과정에서 박모 경위는 안전장치를 푼 실수는 했지만 우발적인 사고였다라는 주장을 계속 펼쳐왔다. 재판부 역시 여러 정황과 불충분한 증거를 근거로 박모 경위의 주장처럼 우발적인 격발이 맞다고 판단했다.
 
이에 박 수경의 부친은 사격도 1등인데 총기 공탄 확인도 안 하고 공탄의 위치가 당연히 거기 있을 거라고 돌아져 들어간 것을 몰랐다라고 말하는 그런 사람이다. (경찰) 경력 27년 세월에 그걸 몰랐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라며 박모 경위가 주장하는 우발적 사고를 믿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박 수경의 모친은 1심 판결에 대해 우리나라 법원이 이 정도밖에 안되냐”고 오열하며 극도의 분노감을 표출함과 동시에 당시 재판장에게 면담 신청했지만 안 받아들여졌다면서 살인죄로 판결해주시길 애원하는 편지를 월요일(지난 25)까지 자필로 써서 재판장에게 보냈다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앞으로의 대응
 
피해자 가족 측은 1심 재판이 이루어지기 전 시위나 언론과의 인터뷰를 일체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박 수경의 부친은 데모를 한다는 것도 막았다지난 130일 시위 예정이었지만 경찰청까지 나가겠다는 걸 난리를 치며 막았다. 시위한다는 것을 학교에서만 하라고 말렸다”면서 “오히려 시위를 했으면 이런 판결이 안 나왔을 거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그는 검사님 만나서 항소한다는 뜻을 밝혔고 검찰 측에서도 보안을 하겠다고 얘기했다. 거리로 나갈 예정이다 시위를 할 거다라며 여태까지는 믿었다. 명백한 사건이었고 이제는 언론이든, 길이든, 서명운동도 계속할 예정이다라고 전했다.
 
가족 측은 2심 공판이 오는 3월 중순으로 예정돼있다며 검찰 측이 학계에 계신 분들과 다시 함께 머리를 맞대 항소한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가족들 머릿속에 남아있는 마지막 모습
 
박 수경의 부친은 중복 날인가 말복에 (박 수경 어머니가) 교통사고가 나서 입원을 했는데 세원이가 할머니를 모시고 오라고 해서 지난해 812일 검문소에서 면회 신청을 해 할머니와 삼계탕을 같이 사서 먹고 들여보냈다. 그게 마지막으로 본 모습이었다라고 당시 상황을 회상하며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박 수경의 모친은 교통사고로 병원에 있을 때 아들이 일요일 외출에 나와서 배가 고프다라고 했지만 밥을 해줄 수가 없었다. ‘엄마 나 배고파 어디야그게 귓전에 맴돌아서 가슴이 아프다라고 전했다.
 
그는 세월호 사건 당시에 아들을 입대시켰는데 그때는 정말 안 울었다. 세월호 어머니들에 비해서 못 돌아오는 바다를 지켜보는 부모들의 심정도 있는데 아들은 의경을 마치고 돌아올 수 있기 때문에 더더욱 걱정을 안 해서 안 울었다. ‘세원아 걱정 말고 하고 와라고 아들을 위로했고 이에 아들은 마지막 절을 했는데 그게 마지막일 줄 몰랐다. 군대는 당연히 남자라면 가는 곳이고 내 아이가 못 돌아오게 된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거기서 감독관이 그렇게 해서 죽일 거라는 생각을 못 했다. 이런 판결을 위해 4개월이나 시간을 끌면서 해야 했던 건지의문이라고 말했다.
 
박 수경의 모친은 입대 당시 웃으면 V자를 그린 아들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밝은데라며 인터뷰 내내 오열했다.
 
가족들에게 어떤 아들이었는지
 
박 수경의 모친은 제 아들이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번에 느낀 거는 주위에 사람도 많고 주위에 싫은 소리 한번 하지 않았다라고 전했다.
 
박 수경의 동생은 정이 많았다 오빠가···”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박 수경의 모친은 시간이 지날수록 선배 친구 후배를 통해 좋은 내용도 들려오고 내 아들이지만 아깝구나 특별나고 잘나고 배려를 많이 했구나라며 아들을 회상했다.
 
박 수경의 부친은 대학을 들어갔는데 선배가 말 한마디도 안 하고 과 밖에 있는데 애가 문자를 해서 같이 놀아요라고 문자를 했다. 그 선배가 2년 전 문자를 가지고 있다가 보여주며 대화를 하고 그랬다. 주위에 얘기를 들어보면 5~6년 선배한테 안부전화도 하고 친구 선배 후배 모두 잘 챙기는 성격이며 대학을 다닐 때 과대표를 하고 있었다. (남에게) 미움을 주거나 하는 그런 게 하나도 없었다라며 박 수경이 착한 심성을 가졌다고 칭찬했다.
 
또 그는 학창 시절 누구랑 한번 싸운 적도 없고 친구들은 다 다양했다. 술과 담배 오토바이를 타지도 않았고 친구 관계가 다양했다. 학교에서 싸웠다고 불려 간 적도 없다. 진짜 집에서 나쁜 놈, 나쁜 놈 했지만 나가서는...이렇게 행동한 게 너무 아쉽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박 수경의 모친은 매일매일 할머니에게 전화를 잘하던 아이였다. 할머니 대소변을 받아 줄 정도였다. 집에 외출해서 오는 것도 엄마 아빠를 보러 오는 게 아니고 할머니를 잠깐이라도 뵐려고 그래서 온 거다라며 “92세 된 할머니가 이렇게 된지 잘 모른다. 할머니에게는 군대에서 생활을 잘해 미국에서 유학을 보내줬다고 말했다라며 가슴속에 품고 있는 옷을 안았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세상에 전하고 싶은 점
 
박 수경 동생은 미국과 다르게 대한민국은 총기 소지 불가인 나라인데 나라를 지키러 간 군인이 상사가 쏜 총을 쏘고서 나라를 지키러 간 군인이 돌아오지를 못하는데 나라 망신이 아닙니까라며 판결이 이렇게 나온 걸 보고 다른 나라에서 보면 이걸 얼마나 비웃겠는가라고 전했다.
 
또 그는 막말로 판결이 대법원에서 6년도 안되게 나온다면 우리나라 이렇게 해서 이 정도 밖에 안되니깐 이렇게 죽여버려야겠내 앙심을 품을 수 있는 건데 그때 가서는 어떻게 할지라며 판결에 불만을 표했다.
 
박 수경의 부친은 없었던 일이 생겼기 때문에 심사숙고해서 재발방지 차원에서도 엄한 벌을 받게끔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 정의롭게 다뤄졌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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