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환승객만 700만 명 마음만 먹으면 ‘문’은 열렸다

뻥 뚫린 공항보안

2016-02-04     김현지 기자

[일요서울 | 김현지 기자] 지난 2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아랍어로 쓰인 테러 협박 메시지와 폭발물 의심물체가 발견됐다. 이에 IS의 소행이라는 무성한 추측 뒤 용의자는 서울 구로구에 거주 중인 30대의 한국인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여전히 공항 보안 문제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연이어 터진 공항 보안의 허술함에 설연휴 대목을 앞두고 여행을 준비하는 국민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낮은 유리문, 쉬운 도주…43시간 뒤 알아
불법체류 목적 이탈…“조력자 있었을 것”


법무부가 1월22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출입국자는 6600만 명, 체류외국인 190만 명이었다. 이는 출입국 역사상 최고 기록인 것으로, 인천공항을 통한 출입국자는 67.6%를 차지했다.


메르스(MERS·중동중증호흡기증후군)의 영향으로 지난해 외국인 입국자는 6.3% 감소했지만, 메르스가 주춤해진 뒤 입국한 외국인의 비율이 전년대비 4.0% 증가했다는 점에서 여전히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이 많음을 보여줬다. 또한 한 해 환승객만 약 700만 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 잠시만 머무르는 환승객은 밀입국에 유리하다는 점에서 공항 보안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시각이 있다. 특히 이 가운데 발생한 ‘테러 협박 메시지’ 등은 인천공항을 오가는 국내·외 여행객들의 주 관심사일 수밖에 없었다.


지난달에만 중국인 30대부부, 베트남인이 인천공항을 통해 밀입국한 사건이 발생해 공항보안이 외국인들에게 뚫렸다는 지적이다. 이들은 불법체류를 목적으로 도주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29일 베트남인 A(25)씨는 법무부 인천공항 출입국관리소 직원이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여객터미널 2층 A입국장에서 자동출입국심사대 1·2차 유리문을 열고 밀입국했다. 이 유리문은 성인이 뛰어넘을 수 있을 정도로 낮아, 이전부터 위험성이 제기된 바 있다. 1차 여권 판독기 유리문은 1m도 되지 않는다. 지문과 얼굴인식을 하는 2차 유리문 역시 1m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심지어 일각에선 유리문 끝과 바닥의 차이가 20cm나 되는 것을 지적하며 신체가 작은 여행객은 기어서 빠져나갈 수도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출입국관리소와 인천공항공사는 1·2차 유리문이 있는 이곳을 폐쇄회로(CCTV)를 통해 24시간 감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발생 12시간 만에 알았다는 점 등을 들어 공항보안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여론이 우세한 상황이다.


베트남인이 밀입국하기 불과 8일 전인 지난달 21일에도 중국인 부부가 몰래 공항을 빠져나가는 사건도 발생해 여론은 더욱 악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사건 당시 중국인 부부는 자동심사대 바로 옆에 있는 상주직원 전용통로로 몰래 빠져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 때에도 밀입국 사실을 약 43시간이 넘어서야 출입국관리소가 인지했다는 점이다.


인천공항은 2006년부터 10년 연속 미국 ‘글로벌 트래블러(Global Traveler)’가 주관하는 세계 최고 공항상을 받는 등 세계적 공항으로 알려져 있어, 이번 보안 문제가 국가보안시설 ‘가급’에 해당하는 인천공항의 위상에 타격을 줄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특히 이번 문제를 두고 정부에선 테러방지법의 조속한 통과를 요구하고 있어, 인천공항 사태는 장기간 대중적 관심을 받을 것으로 관측된다. 통상 민족 대명절인 설 연휴에 해외관광을 목적으로 출국 및 입국하는 내·외국인들이 평소보다 증가한다는 점에서, 허술한 보안에 대한 우려가 더해질 전망이다.

과거에는 

여행업계 관계자 B씨는 이번 사건에 대해 “과거에는 인천공항에서 밀입국한 외국인이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며 “이번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뒤 (같은 종사자들이) 다들 처음 듣는 이야기라며 놀랐다”고 말했다. 이어 “인천공항 초기 각종 절차 등이 까다롭게 운영됐는데, 점차 이를 완화해서 (이번 사태가) 발생한 것이 아닐까 싶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외국인들을 상대로 10년 넘게 가이드 생활을 하고 있다. 주로 아시아권 여행객들을 상대한다.


현재는 선상 크루즈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다른 업계 관계자 C씨 역시 “인천공항에서 이런 사건이 발생한 것은 처음 들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해 선상 크루주에서 관광객 약 40명으로 이뤄진 한 팀에서 25명의 중국인들이 몰래 이탈했다고 전했다. 이어 “불법체류를 목적으로 도주했으나, 당시 잡혔다. 이는 한국에 관광을 오게 도와준 브로커의 역할이 컸다”며 “이번 사건 역시 조력자 없이 가능하지 않을 것 같은데, 만일 조력자 없이 (중국인 30대 부부와 베트남인이 도주했다면) 그랬다면 공항 보안 문제는 심각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불법 체류를 목적으로 밀입국하는 경우가 과거에도 많았으나, 선박이나 다른 항공 등에 한한 사건이었다는 것이다.


B씨의 발언은 이를 뒷받침했다. 이 관계자는 “5~6년 전 중국항공을 이용해 한국에 관광 온 중국인들을 가이드하기 위해 공항에서 대기하고 있었지만, 해당 중국인이 몰래 빠져나가려고 했다”며 “당시 공항 직원들은 이를 제대로 몰라 제지하지 않았지만, 신상정보를 미리 알았기 때문에 내가 먼저 그 중국인을 붙잡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이 사건 역시 인천공항이 아닌 다른 공항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언급해 이번 밀입국 사건을 심각하게 인식했다.

한편 베트남 밀입국자는 지난 3일 대구의 지인 집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이날 법무부 관계자는 "밀입국 경위와 공범 존재 여부 등을 조사한 뒤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경영 문제?

이런 문제에 대해 인천공항 내의 낙하산 인사 등 경영방식을 원인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지난 1일까지도 인천공항 공식홈페이지 내 CEO는 공란이었다. 4월 총선 출마를 위해 박완수 전 사장이 지난해 12월 19일 사퇴했기 때문. 약 2개월가량 공석 상태의 인천공항은 이후 연이은 악재에 시달렸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과거에 조용했다가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는 등) 이렇다는 것은, 경영의 문제가 크다”며 “특히 인천공항에 낙하산 인사들이 자주 내려오는 등 내부적으로도 말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보안을 담당하는 직원들 중 상당수가 용역인 것으로 알려져, 이 역시 원인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난 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당 비대위 회의에서 표창원 더민주 비대위원은 "인천공항에는 2000명의 보안요원이 있지만, 모두 파견직·비정규직·일용직 근로자"라며 "저임금, 고용불안으로 사기가 저하돼 있었고 업무 전문성이 떨어지는데, 이런 부분이 다 연결된 것 아닌가"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일각에선 한국에 장시간 머무를 수 있는 환승객, 면세점 이용을 빌미로 몰래 도주하려는 여행객 등에 대해 공항 측에서 제재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yon88@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