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길 계열 당권 장악 시도 전말
야권에 나도는 ‘안철수 왕따 ’ 작전
박지원이 박영선에게 “남매끼리 다시 만나자” 문자
총선 직전 대통합 과정에서 안철수 낙마 가능성
[일요서울 | 류제성 언론인] “설사 국민의당이 성공을 한다 해도 안철수가 거기서 대선후보가 되기는 어려울 겁니다. 자신이 열심히 이용해먹은 그 지역주의의 다음 타깃이 바로 자기거든요. 그 당의 정치인과 지지자들은 ‘호남대통령’을 원합니다.”
문화평론가인 진중권 동양대 교수가 국민의당이 창당식을 가진 2월 2일 트위터에 올린 장문의 글 가운데 일부다. 요약하면 국민의당 창당을 주도했던 안철수 상임공동대표가 결국은 노련한 기성 정치인들에게 이용만 당하다가 4·13 총선, 멀리는 2017년 대선 국면에서 ‘왕따’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예측이다.
실제로 과거에도 국민들의 신망은 높지만 정치적으론 아마추어에 불과한 인사들이 제도 정치권에 들어갔다가 ‘토사구팽’(兎死狗烹·사냥하러 가서 토끼를 잡으면, 사냥하던 개는 쓸모가 없게 되어 삶아 먹는다는 뜻)을 당한 사례가 적지 않다.
안 대표도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야권후보 단일화 협상을 벌이면서 정치력의 한계를 보인 바 있다. 또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새정치연합’(가칭) 창당을 추진하다가 인물영입이 지지부진하자 김한길 대표가 이끌던 민주당과 통합, 새정치민주연합을 만들었으나 최근 문재인 대표와의 주도권 다툼에서 밀려 탈당했다.
지난 연말 안 대표는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의 친노패권주의에 반발해 후속 탈당한 현역 의원들과 함께 신당 창당을 추진하면서 초반에 높은 지지율을 보였다. 그 때만 해도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불었던 ‘안철수 바람’이 재연될 조짐까지 보였다. 하지만 이후 인물영입에 차질을 빚은 데다 한상진 창당준비위원장의 ‘이승만 국부론’이 논란을 일으키는 바람에 지지율이 추락했다.
설상가상으로 야심차게 추진했던 원내교섭단체(현역 국회의원 20명)도 구성하지 못한 채 신당이 개문발차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당 지도부는 일단 ‘3두(頭) 공동체제’로 꾸려졌다. 안철수 상임공동대표·천정배 공동대표와 김한길 상임공동선대위원장이 당을 이끌게 됐다. 그러나 서로 색깔이 다른 3명의 사공이 함께 노를 젓게 되면서 분란의 씨앗을 잉태했다.
국민의당 ‘3두 공동체제’
당 대표로서의 법적 권한은 안·천 대표가 공동으로 갖게 됐다. 공동선대위원장 체제는 복잡하다. 당 대표에 들어가지 않은 김한길 의원이 상임위원장을 맡았고, 안·천 공동대표가 공동위원장이 됐다. 선대위 회의에선 김 상임위원장이 두 공동대표보다 지위가 높은 셈이다.
당 최고위원은 철저하게 지분 나눠먹기를 했다. 김한길 대표와 가까운 주승용 원내대표, 안철수 대표의 2012년 대선 캠프에서 활동했던 김성식 전 의원, 천정배 대표 측 박주현 변호사, 그리고 박주선 의원 등 4명이 선임됐다.
안 대표는 당초 본인이 단독 대표와 단독 선대위원장을 맡아 4·13 총선을 총괄 지휘할 구상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이 경우 사당화(私黨化) 논란이 일어날 것이란 지적과 함께 신당에 합류한 중진 의원들의 반
발로 어정쩡한 집단 지도체제가 출범했다.
진중권 교수는 이 대목에 주목했다. 그는 “선대위의 장이 3인 공동으로 된 것 역시 내부 권력투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또 “안철수는 국민의당의 얼굴마담, 천정배는 호남정치의 상징, 김한길은 탈당한 의원들을 지휘하는 실질적 지도자. 국민의당이 굴러가려면 이중 어느 하나도 빠져서는 안 된다. 이걸 봉합하다 보니 3인 공동체제라는 이상한 그림이 만들어졌다”고 지적했다.
결국 이런 상태에선 총선 공천권을 둘러싸고 극단적인 갈등이 불가피하다. 3두(頭)가 공천지분 나눠먹기를 하겠지만 사이좋게 나눌 가능성은 낮은 까닭이다. 특히 안철수 신당의 모태인 호남지역에서 공천전쟁이 벌어질 수 있다.
이 경우 정치경험이 일천한 안 대표가 밀리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국민의당 관계자는 “지도부 구성 결과를 보면 김한길과 천정배가 안철수를 포위한 형국”이라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김 위원장과 천 대표가 앞으로 안 대표를 ‘왕따’ 시키는 작업에 들어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독자 창당을 시도하던 천 대표를 신당에 끌어들인 인물이 김 위원장이다. 안철수 신당과 천정배 신당이 통합하는 공동 기자회견을 연다는 예고도 안철수 의원실에서 기자단에게 먼저 알렸다. 수도권 출신인 김 위원장으로선 호남에서 인기가 높은 안 대표를 견제하기 위한 인물이 필요했다. 천 대표는 ‘뉴 DJ 키즈 플랜’ ‘호남정치 복원’을 외치며 호남 맹주 자리를 노리고 있다.
‘안철수 신당’에서 ‘안철수’가 배제되는 상황은 4·13 총선 직전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현재 야권에선 총선이 ‘1여 다야’ 구도로 치러지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공멸할 것이란 위기감에 휩싸여 있다.
이 경우 수도권 선거를 책임져야 하는 김 위원장은 더민주, 나아가 정의당과 선거연대, 즉 야권후보단일화를 추진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김 위원장과 가까운 더민주의 박영선 의원, 더민주를 탈당해 제3지대에 머물고 있는 박지원 의원이 매개가 될 수 있다. 박영선 의원과 박지원 의원은 국회 법사위 활동을 함께 하면서 ‘박 남매’라고 불릴 정도로 친숙한 사이다. 최근 두 사람이 주고받은 문자 메시지는 총선 야권연대와 관련해서 의미하는 바가 크다.
“‘박 남매’가 헤어지면 안된다고 말씀들을 하시는데요”(박영선) “남매가 헤어진다고 해서 헤어지는 게 아니지 않느냐, 좋은 생각만 하자, 그리고 다음에 다시 만나자”(박지원)
총선 야권연대를 염두에 둔 내용들이다. 하지만 안 대표는 야권연대를 할 명분도 실리도 없다. 친노 패권주의를 반대한다며 더민주를 탈당한 마당에 문재인 전 대표가 2선 후퇴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슬그머니 다시 합친다면 여론의 질타를 받을 게 뻔하다. 이 경우 최대 목표인 대권과도 멀어진다.
안철수 “선거연대는 없다”
가뜩이나 중요한 고비마다 ‘철수’를 한다는 지적을 받는 마당에 또 ‘철수’를 한다면 안철수의 새정치는 사실상 끝이 난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고 당선이 최고의 가치인 수도권 출마자들이 그런 안 대표의 입장을 헤아릴 리 만무하다. 결국 안 대표가 “선거연대는 없다”고 끝까지 버티면 김 위원장을 비롯한 당 지도부가 안 대표를 버리고 더민주와 협상에 나설 수 있다.
호남 사정도 안 대표에게 녹록치 않다. 호남 선거를 책임질 천 대표는 더민주에서 넘어온 현역 의원들을 대거 물갈이할 생각이다. 하지만 안 대표는 자신을 믿고 탈당한 뒤 신당에 합류한 호남지역구 의원(11명)들을 보호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도 안 대표가 천 대표로부터 왕따를 당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안 대표 앞에는 험로가 첩첩산중으로 놓여 있는 셈이다. 윤여준 전 창준위원장의 말대로 달리 인물도 보이지 않고 체제도 채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가장 첨예한 공천 문제가 안 대표의 앞을 가로 막을 공산이 크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도 이런 분석에 동의했다. 다음은 황 평론가의 ‘안철수 왕따’ 작전 예상평이다.
“안철수에게 더 큰 난관은 공천이 이뤄지고 난 이후에 발생할 수 있다. 각 당의 공천이 마무리되고 본격적인 총선 레이스에 접어들면 자연스럽게 야권연대의 압력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호남은 어차피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양 측의 각축이라고 하더라도 수도권의 경우는 야권이 분열된 상태에서는 여당인 새누리당이 어부지리(漁父之利)를 취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럴 경우 수도권 출마자들을 중심으로 야권연대 즉 후보단일화의 요구가 거세질 것이다. 새정치를 기치로 내걸고 있는 안 대표 입장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게다가 김한길 위원장부터 서울에 지역구를 두고 있고, 특히 수도권 출마자들의 이익을 지켜줘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자칫 안 대표와 충돌할 가능성도 있다.“
장외에 머물고 있는 박지원 의원과 권노갑 고문 등 동교동계의 입장도 변수다. 이들은 시종일관 야권통합을 목청 높여 외치고 있다. 이들이 본격적인 간섭에 들어갔을 때 과연 안 대표가 이들의 요구와 간섭을 어느 정도까지 막아낼 수 있을까.
더구나 지금의 추세대로라면 국민의당에 대한 전국적 지지율은 물론이고 호남지역에서의 지지율도 계속 하락할 텐데, 과연 덩치가 크게 위축된 국민의당이 더민주의 구심력을 버텨낼 수 있을지조차 의심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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