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구파발 총기 사고 피의자 박 경위, 살인이 아닌 중과실치사
2016-01-28 오유진 기자
[일요서울 | 오유진 기자] 법원이 서울 구파발 군·경 합동 검문소에서 총기 사고를 일으켜 의무경찰을 숨지게 한 경찰관 박 모 경위에게 검찰이 적용한 살인 혐의가 인정되지 않은 채 중과실 치사로 징역 6년을 선고해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11부(부장 심우용)는 지난 27일 박 모 수경을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박 모 경위에게 중과실치사죄와 특수협박죄를 인정해 징역 6년을 선고했다.
앞서 경찰은 살인 고의가 없었다고 보고 박 경위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검찰에 넘겼지만 검찰은 안전장치까지 풀고 총기를 격발한 사실을 근거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혐의를 적용해 징역 12년을 구형한 바 있다.
당시 검찰은 권총을 발사하는 순간에 왼손을 총에 받친 채 반동을 억제하고 정확히 발사한 것도 총탄을 발사하겠다는 의지가 구체화된 것으로 결론 내렸고 경찰관이더라도 총기로 장난을 치는 과정에서 사고를 냈다면 이를 업무와 연관 짓기는 어렵다고 판단해 중과실치사로 적용 법 조항을 바꿨다.
검찰에 따르면 피의자 박 모 경위는 총기 사고 당시 생활실 문을 열고 들어와 “××놈들, 니네 나 빼먹고 먹냐? 일렬로 서” “다 없애버리겠다”고 소리치며 의경들을 향해 총을 겨눴고 피하지 못한 피해자에게 다가가 고무파킹을 제거하고 총을 겨눠 총을 든 오른손이 흔들리지 않도록 왼손을 총 아래에 받친 채 피해자의 심장 70㎝ 앞에서 방아쇠를 당겼다고 수사내용을 전했다.
검찰은 이번 사건을 법원이 살인죄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후순위로 처벌을 요구하는 ‘예비적 공소사실’에 중과실치사를 적용했다.
중과실치사는 업무와 상관없이 중대한 과실을 저질러 사람을 숨지게 한 혐의에 적용하는 죄명으로 형량은 업무상 과실치사와 같다.
하지만 재판부는 “피고인이 첫 발에 실탄이 발사되도록 총기를 조작했거나 실탄이 발사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다”며 살인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또 재판부는 박 모 경위가 재판 과정에서 “안전장치를 푼 실수는 했지만 우발적인 사고였다”는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검찰이 주장한 살해 동기에 대해서도 다르게 해석했다. 검찰은 사고 당시 박 모 경위가 자신을 따돌리고 빵을 먹은 의경들에게 화가 나 범행을 저질렀다고 결론 내린 반면 재판부는 “피고인이 평소 친밀한 관계에 있었던 피해자를 살해할 만한 동기를 찾아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총기 관리를 소홀히 하면서 위험한 행위를 거듭해 오다가 무고한 피해자를 사망케 함으로써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혔다”며 검찰이 제시한 후순위 처벌인 중과실치사죄와 특수협박죄를 적용했다.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혹들
사건 발생 이후 경찰 조사 결과 검문소 내 총기 관리와 근태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정황이 속속 드러났다.
박 모 경위는 17년 전 바뀐 총기 규정을 숙지하지 못했으며 잘못 알고 있는 규정마저 제대로 따르지 않았다.
하지만 관리 감독 책임이 있는 관할 경찰서에서는 “평소 검문소 근태를 점검했다”는 말만 반복할 뿐 구체적인 관리감독 현황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이에 유족들은 여전히 경찰에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또 박 모 경위는 지난 1989년 경찰 제복을 입었고 과거 근무지 이탈과 품위손상으로 감봉 3개월 징계를 2차례 받았다. 또 지난 2008년부터 최근까지 불안신경증 증세로 신경안정제를 복용했다. 지난 2009년과 2010년에는 3개월 간 우울증 약을 처방받기도 해 각별한 관리가 필요한 경찰을 총기 휴대가 필수인 검문소에 배치한 것 자체가 문제였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정확한 입장 표명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은폐·축소 수사 논란
서울 은평 경찰서는 지난해 8월 30일 박 모 수경 사망 사건의 현장검증을 진행했지만 유가족에 미리 현장검증 일정을 알리지 않아 유가족들이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은평 경찰서 관계자는 “현장검증은 수사 과정의 일부기 때문에 유가족에 공개할 의무는 없다”며 “유가족이 참관을 요청했더라도 돌발 상황 가능성 등이 존재해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라 말했다.
그는 은폐·축소 수사 논란에 대해선 “유족들에 현장검증 동영상을 보러 오라고 했지만 유족 측에서 ‘이미 설명을 들었다’며 거부했다”면서 “현장검증은 수사 과정 중 계획대로 진행했을 뿐”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편 방청석에서 재판을 지켜보던 박 모 수경의 유족들은 선고가 내려지자 거칠게 항의했고 박 모 수경의 어머니는 “우리나라 법원이 이 정도밖에 안되냐”고 외치며 오열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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