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리그가 젊은 빅리거들의 공식 신분세탁소?

외국인 선수 몸값 폭등 연봉 20억 원대 속출…올해 283억 돌파

2016-01-25     김종현 기자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프로야구 10개 구단이 한 해 농사를 가늠할 수 있는 마지막 퍼즐인 외국인 선수 영입이 마무리돼 가면서 부쩍 높아진 외국인 선수들의 연봉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올 시즌을 앞두고 속속 20억 원대의 연봉 계약자들이 속출하며 기대와 함께 우려도 제기 되고 있다. 더욱이 부쩍 젊어진 미국 무대 출신 빅리거들이 KBO 구단과의 계약을 서두르고 있어 자유계약선수(FA)신분을 위한 공식신분세탁소라는 오명을 뒤집어쓸 수 있는 부작용도 근심거리로 떠올랐다.

외국인 선수 몸값 폭등 연봉 20억 원대 속출…올해 283억 돌파
빅리거 영입 기대와 함께 우려 급증…육성형 대안 등 해결책 고심

올 시즌을 앞두고 전력 구상 중인 구단들은 지금까지 외국인 선수 28명(한화 1명, LG·두산 1명 미정)과 계약하면서 총 2469만 달러(약 296억 원)를 쏟아 부었다. 이에 계약금을 포함한 평균 연봉은 10억 원을 훌쩍 넘어선다. 또 한화 이글스는 투수 에스밀 로저스와 약 23억 원에 계약에 체결하는 등 연 평균 20억 원 안팎의 계약도 이뤄지면서 FA에 이어 외국인 선수들의 몸값도 부쩍 올랐다.

우선 외국선수들의 몸값을 살펴보면 프로야구에 외국인 선수제도가 도입된 1998년 몸값 상한선은 12만 달러(당시 1억 원)였다. 반면 올해는 20억 원 이상을 받는 선수들이 등장하면서 18년 만에 20배가 뛰게 됐다.

지난달 2일 한화는 지난해 깜짝 활약을 선보인 로저스와 계약금과 연봉을 더해 190만 달러(23억 원)에 재계약했고 KIA 타이거즈도 메이저리그(MLB) 시카고 화이트삭스 출신 투수 헥터 노에시와 170만 달러(21억 원)에 계약한 바 있다. 더욱이 2014년 1월 외국인 선수의 몸값 상한선인 30만 달러가 폐지되면서 외국인 선수 영입 비용이 우후죽순처럼 치솟고 있다.

물론 치솟는 몸값만큼 외국인 선수들의 기량 역시 출중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시즌 중반 70만 달러(약 8억 원·구단발표액)를 받고 한화에 입단한 로저스는 시속 160km에 이르는 강속구를 앞세워 10경기에서 6승 2패 평균자책점 2.97을 기록해 연봉이 아깝지 않은 실력을 선보였다. 지난 시즌 로저스는 선발 등판할 때마다 8000만 원을 받는 셈이었다.

여기에 한화는 로저스와 함께 지난해까지 콜로라도 로키스에서 뛰었던 포수 월린 로사리오와 총액 130만 달러(계약금 30만 달러, 연봉 100만 달러)에 계약했다. 로사리오는 2011년 콜로라도에서 데뷔, 지난해까지 447경기 타율 0.273, 71홈런, 421타점을 기록했다. 

국내 FA 시장에서 지갑을 닫았던 KIA는 외국인 선수 3명에게 330만 달러(약 40억 원)를 쏟아부으며 외국인 선수에 대한 큰 기대를 나타냈다. 올 시즌까지 외국인 선수 4명을 쓸 수 있는 kt 위즈(275만 달러)보다 65만 달러(약 8억 원)를 더 썼다.

폐지된 상한선에
일본리그도 추월

이처럼 각 구단들이 외국인 선수 영입에 열을 올리면서 KBO 외국인 선수 시장은 일본 프로야구(NPB)의 외국인 선수 평균 연봉을 추월했다.

두산이 추진 중인 닉 에반스는 2014년 일본 프로야구 리쿠텐 골든이글스 소속으로 뛰었다.

에반스는 한때 뉴욕 메츠의 차세대 1루수로 주목받았으나 2014년 7월 20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서 방출됐고 이후 일본무대로 옮겼다. 당시 에반스의 연봉은 1년치 기준 3500만 엔(약 29만 달러)였다. 하지만 두산은 올해 에반스를 데려오면서 이적료 포함 60만 달러를 예상하고 있어 큰 폭으로 뛰는 셈이다.

KIA가 70만 달러를 주고 데려오는 지크 스프루일은 메이저리그 통산 13경기에 출전 기록을 갖고 있는 가운데 비슷한 수준의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뛰는 마일스 미콜라스는 68만 달러 수준이었다. 더욱이 미콜라스는 지난해 팀내 최다인 13승에 평균자책점 1.92를 기록했고 MLB도 통산 37경기에 등판한 바 있어 스프루일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일본 프로야구에서는 14개국 출신 외국인 선수 91명이 뛴 상황에서 최고 연봉은 한신 타이거스의 매트 머튼(4억5600만엔)이었고, 그 뒤로는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이대호(4억 엔)였다. 전체 선수 평균은 9524만 엔(79만 달러), 중앙값은 6000만 엔(50만 달러)였다.

반년 올해 KBO리그 계약이 확정된 외국인 선수는 28명으로 평균 연봉은 87만 달러, 중앙값은 75만 달러를 기록해 평균과 중앙값에서 이미 KBO리그 외국선수 연봉이 일본프로야구를 넘어섰다. 여기에도 함정은 있다. 구단들의 발표액 기준이라는 것.

실제 지급되는 액수는 발표액을 상회한다는 게 야구계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최근 FA시장에서 A급 선수 몸값은 연평균 200만 달러에 육박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에 국내 구단들은 외국인 선수에게 1~3선발급 에이스, 혹은 중심 타자를 기대하면서 FA보다는 외국인 선수 몸값이 저렴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실제 한 구단 관계자는 “외국인 선수에게 조금 더 지출액을 늘리더라도 FA보다 나은 투자라는 인식이 팽배하다”고 말했다.

한화의 로저스와 로사리오의 경우 옵션 포함 200만 달러 안팎의 몸값으로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여기에는 한화가 지난해 야구단의 선전으로 기업 이미지가 크게 향상됐고 올해는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우승에 도전하기 때문에 투자에 이유가 있다고 보고 있다.

롯데 자이언츠의 경우도 지난해 경영권 다툼 이후 그룹 이미지 개선 차원에서 구단주가 투자를 약속한 바 있다. 여기에 몸값이 비싸고 경력이 훌륭한 선수는 팬을 즐겁게 하는 측면도 작용하고 있어 실제 지급하는 금액이 늘어남에도 구단들이 감수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KBO 기회의 땅
니퍼트 본보기

몸값 급등뿐만 아니라 여러 요인들이 젊은 빅리거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일각에서는 KBO리그의 높아진 인기만큼이나 한층 성숙된 리그분위기를 꼽는다. 특히 최근 KBO리그에 입성한 외국인 선수들 등 헥터 노예시(KIA), 헥터 고메즈(SK 와이번스), 앨린 웹스터(삼성 라이온스) 등 메이저리그 출신인데다가 선수생활도 한참 남은 20대 선수들이 등장하며 과거처럼 한물 간 선수들이 선수 생활 막판에 들어오는 것과는 다른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또 외국인 선수 연봉 상한선 폐지가 직접적인 영입 분위기 전환을 주도했다. 여기에 국내 프로 스포츠 증 KBO리그가 가장 많은 인기를 받고 있다는 점도 주로 대기업을 모기업으로 두고 있는 구단의 지갑을 두둑하게 만들었다.

이와 함께 류현진과 강정호, 추신수 등 메이저리거의 활약과 올 시즌 한국선수들의 메이저리그 진출도 KBO리그 평가를 바꾸는 데 한몫하면서 외국인 선수들의 인식변화에도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같은 긍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 이면에는 불편한 진실도 남아있다.

우선 최근 젊은 빅 리거들이 한국행을 선택하는 이유로 경제적인 부분을 우선순위로 꼽는다.

실제 이들은 마이너리그와 메이저리그를 오가거나 마이너리그 ‘죽돌이’ 생활을 하는 것보다 한국에 오는 것이 경제적으로 큰 보탬이 된다. 이전까지는 만 30세를 코앞에 두거나 30세 이상의 선수들이 메이저리그 풀타임 보장이 없는 마이너리그 생활에 지쳐 임금체불도 없고 대우도 후한 한국행을 선택했던 것과 달리 점점 연령대가 낮아지는 이유기도 하다.

대니얼 김 MLB 해설위원은 “한국이나 일본에서 3~4년 활약하면 500만 달러 이상을 쉽게 벌 수 있다. 그 정도면 미국에서도 좋은 대우다. 마이너리그에 머물기 아까운 선수들에게 한국은 기회의 땅”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KBO 구단들이 외국인 선수들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하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더스틴 니퍼트(두산 베어스)의 경우 만 29세 때 소속팀인 텍사스에서 방출되자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 대신 두산을 선택했다. 이후 니퍼트는 가장 성공한 외국인 선수 중 한 명이 됐고 한국생활에 만족도 높아 다른 외국인 선수들의 본보기가 됐다.

물론 적응을 못하는 경우도 있다. 2013년 NC 다이노스의 첫 외국인 선수였던 왼손 투수 아담 월크의 경우 기대를 한몸에 받았지만 적응에 실패하고 이후 아예 한국을 떠났다.

여기에는 ‘1년만 외국 리그에 다녀와도 자동으로 FA 신분이 된다’는 달콤함 제안이 숨어있다. 한 관계자는 “최근 들어 에이전트들이 메이저리그 FA나 연봉 조정 신청 자격 충족이 어려운 선수들에게 한국, 일본행을 권유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KBO리그나 일본 프로야구는 메이저리그와 선수 협정을 맺었으나 이는 선수 보유권 계약 양도와 관련한 사항일 뿐 다른 리그에 다녀올 경우 이 선수는 메이저리그 FA자격을 자동으로 얻을 수 있게 돼 20대 중·후반 외국인 선수가 메이저리그 규약의 손아귀를 피한 뒤 신분을 세탁할 수 있는 통로로 급부상한 것도 작용하고 있다.

더욱이 KBO리그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낼 경우 다시 메이저리그로 돌아가거나 몸값을 대폭 올려 일본리그에 진출하는 계기가 되면서 젊은 선수들로부터 주목받고 있다. 

몸값 폭등
투명공개 필요성 제기

이 같은 선수의 요구와 당장의 성적을 바라보는 구단의 이해관계가 맞아들어가면서 외국인 선수 영입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과도해져가는 몸값과 KBO리그의 체질개선이 맞물려 여러 부작용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과도한 투자에 대해 일각에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계약 규모가 커지는 데는 에이전트들의 무리한 몸값 요구와 여러 구단과 흥정을 붙이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며 몸값을 부추기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태일 NC 대표는 “외국인 선수 몸값이 오르는 데는 국내 구단 간 경쟁, 에이전트의 농간 등 다른 이유도 있다. 우리 프로야구 구단들이 이런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고는 보지 않는다”며 외국인 선수에 대한 지급액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등 여러 방법으로 모색해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KBO의 세계화와 치솟는 외국인 선수 영입 비용 문제를 해소하는 방법으로 육성형 외국인 선수 영입이 떠올랐다. 육성형 외국인 선수는 기존의 완성된 선수가 아닌 키워서 쓰는 선수를 말한다.

이럴 경우 기존 외국인 선수에 비해 저렴한 몸값으로 영입할 수 있고 실패 확률은 다소 높지만 잠재력을 이끌어낸다면 대박을 노릴 수 있다는 것. 특히 가까운 중국이나 동남아 등 야구 후진국 유망주들에 대해 문호를 개방할 경우 KBO리그가 세계적 리그로 성장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미 미국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도미니카공화국, 베네수엘라 등 중남미 국가에서 아카데미를 직접 운영하며 수많은 슈퍼스타들을 키워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 프로야구 선수협회의 반대가 큰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선수협 측은 국내 선수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차원에서 외국인선수가 늘어나는 것이 달갑지 않다는 입장이다.

이에 이만수 KBO 육성위원은 “내가 가르치는 라오스팀의 주장은 한국에 무척 가고 싶어한다. 아직 1군에서 뛸 수 있는 기량은 아니지만 시합과 훈련을 거듭하다 보면 좋은 선수로 성장할 수 있다. 이런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은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좀 더 넓게 볼 필요가 있다”고 충고했다. 

todida@ilyoseoul.co.kr

<사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