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으로까지 이어진 스토킹…갈수록 심각
스토커와 싸우는 사람들
[일요서울 | 김현지 기자] 최근 자신을 쫓아다니며 괴롭힌 남성을 살해한 스토킹 피해자 A씨(여·23)가 논란이 됐다. A씨는 지난 15일 오후 7시께 40대 남성을 경남 김해시에 있는 자신의 집 안 창틀에 묶어놓은 뒤, 흉기로 찔렀다. 이후 A씨는 경찰에 자수했고, 18일 경남 김해중부경찰서는 이 같은 혐의로 A씨를 구속했다.
협박은 물론 동영상·사진 유포까지…다양한 수법
단순한 ‘구애행위’로 인식…처벌은 고작 몇 만 원
A씨가 자신을 스토킹 한 남성을 죽인 이유는 그의 ‘병적인 스토킹’ 때문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A씨는 경찰 조사과정에서 ‘상대방에게 자신을 쫓아다니지 말라고 했으나 이를 거부해 흉기로 찔렀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살해된 남성은 전화나 문자를 보내는 등 전형적인 스토킹 수법으로 A씨를 6개월 간 괴롭힌 것으로 드러났다.
사건이 알려진 뒤, ‘스토킹 가해자여도 살인까지 저지른 건 너무했다’는 의견과 ‘끊이지 않고 사건이 발생하는 스토킹도 문제’ 등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공통점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스토킹 문제의 심각성이 또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는 점이다.
중범죄로도…
스토킹 피해사례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14년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관련 자료에 따르면, 전체 성폭력 상담에서 스토킹 관련 상담은 약 5%를 차지한다. 비율로만 따졌을 때 스토킹 문제의 심각성이 미미해보이지만, ▲ 스토킹 사건이 근절되지 않는 점 ▲ 가해자가 통상 장기적으로 스토킹을 한다는 점 ▲ 상해·성폭력 등 다른 범죄와 중복으로 일어날 수 있다는 점 등 때문에 스토킹 문제를 가볍게 봐선 안된다는 지적이 여성단체들을 중심으로 과거부터 끊이지 않았다. 특히 수면 위로 드러난 피해사례 및 신고 등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상담동향 자료 역시 이런 위험성을 뒷받침한다. 2014년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민우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스토킹 피해 상담통계 분석 토론회’ 내용에 따르면, 당시 총 240건의 스토킹 피해 상담사례 중 직접적인 상해·살인미수·감금·납치 등 강력범죄에 해당되는 피해는 51건(21%)에 달했다. 스토킹이 단순히 상대방을 쫓아다니는 등 괴롭히는 것을 넘어 강력 범죄로까지 이어지거나, 그럴 가능성이 농후한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김해시 사건 이후 스토킹 문제가 살인에 이를 수 있는 심각한 문제라는 데 공감대가 형성되는 양상이다.
실제로 지난해 7월 27일 대구에서 자신을 스토킹해온 남성에게 살해된 여성이 논란이 되면서, 스토킹 문제의 심각성이 공론화됐다. 사건이 발생한 오전 6시50분쯤 대구시 서구 평리동에서 출근 중이던 주부(49)를 용의자가 흉기로 살해하고 도주했다. 사건발생 이후 그간 이 여성이 용의자로 지목된 남성에게 스토킹을 당했고, 이 때문에 경찰에 수차례 신변보호 요청을 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스토킹이 살인으로까지 이어진’ 전형적인 사건인 셈이다.
이 외에 스토킹 가해의 구체적 유형 역시 치밀해지고 있다. 그간 스토킹은 전화, 문자 등 지나치게 잦은 연락의 형태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으나, 점차 ▲ 협박 ▲ 주변사람 괴롭히기 ▲ 카메라 이용 촬영 및 유포 ▲ SNS 괴롭힘 ▲ 납치, 감금, 미행 등도 전체 유형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실제로 헤어진 뒤 과거 남자친구에게 몇 개월간 스토킹을 당했다는 A(여·27)씨의 피해 사례도 이와 유사하다. A씨는 “전 남자친구가 지속적으로 나에게 찾아와 물건을 던지는 등 폭력을 행사했다”며 “죽이겠다는 협박까지 하는 등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고 말했다. 심지어 A씨의 주변 지인들까지 협박을 하는 등 괴롭힘의 정도가 심각했다.
전 여자친구와의 성관계 영상 및 나체를 인터넷에 올린 경우도 있다. 몇 년 전 약 5년간 만난 남자친구와 헤어진 B씨. 남자친구에게 지속적으로 ‘다시 만나자’며 연락이 왔고, 끊임없이 B씨를 괴롭혔다. 하지만 B씨는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외국 음란사이트에 자신의 모습이 게재된 사실을 전해 들었고, 실제로 확인한 사실이다.
B씨는 이후 “경찰에 신고해 전 남자친구를 붙잡아 재판까지 갔지만, 증거 부족으로 풀려났다”며 억울해했다. 이어 “상대방은 아니라고 했다”며 “하지만 그간 내게 연락했던 것, 또한 그 사진을 찍을 사람이 전 남자친구밖에 없었다는 점 때문에 난 아직도 그 사람이 유죄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스토킹이 극단적으로 ‘카메라 이용 촬영 및 음란물 유포’까지 이어진 경우인 셈이다. 현재 이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14조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는 중범죄다.
불과 몇 만원?
스토킹의 심각성이 여러 사건으로 문제시 됐음에도, 이를 ‘단순한 구애행위’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인식이 피해자의 신고를 어렵게 한다. 혹은 실제로 신고를 했어도 경찰의 안일한 인식 때문에 제대로 된 수사로 이어지지 않은 경우도 더러 있다. 2014년 기준으로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접수된 스토킹 피해 상담 50건 중 경찰에 신고하는 등 도움을 요청했지만 반려된 경우는 총 6건(10%)이었다.
A씨는 과거 남자친구의 끈질긴 스토킹 때문에 경찰에 신고까지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상대방의 부모님과 잘 이야기를 해봐라’였다. A씨는 “신고도 여러 번 했지만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다”며 “결국 상대방의 부모님에게도 연락을 취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스토킹 가해자는 ‘경범죄 처벌법’상의 경범죄로 처리돼 약 1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의 형에 처해지고 있다. 이런 문제에 대해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민우회 등 여성단체들은 한결같은 목소리로 ‘스토킹 법 제정’이 절실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스토킹 가해자 처벌을 강화하고 피해자 보호 등의 내용을 담은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안’은 현재 국회 계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