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에게 옷 벗어라…여직원에게 한 방 쓰자…갑질 성적 강요 파문
‘도돌이표’ 성범죄, 왜?
[일요서울 | 김현지 기자] 지난해 서울의 한 공립고등학교에서 벌어진 성범죄 사건이 사회적 논란을 만들었다. 일부 교사가 여교사 및 여학생들을 상대로 성희롱 발언 및 성추행을 했는데, 피해자만 수십 명에 달했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교단 내 성범죄 사건에 지난해 8월13일 교육부는 ‘교원 성폭력 근절대책’을 발표했다. 성범죄를 저지른 교사 등 교원을 교단에서 완전히 배제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교단은 물론, 이 외의 집단 내 발생하는 성범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여제자의 어려운 형편 악용…자신의 소유물처럼
교사·상사·이사장 등, 지위를 악용한 성범죄
여성을 상대로 한 성범죄 사건이 연이어 논란인 가운데, 이들 중 상당수가 ‘자신의 지위를 악용한 범죄’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제자에게 성희롱 발언 및 성추행을 한 교사 역시 같은 유형이다.
홀어머니 밑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A(19)양. A양은 안정적인 직장에 취직해 집안 살림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려는 생각으로 군 부사관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2학년 때 담임교사였던 B(38)씨가 A양을 도와주기 시작했다. A양은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강의나 과외를 받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 A양이 활동한 동아리 지도교사였던 B씨는 A양의 어려운 가정형편 등을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문제는 B씨가 공무원 시험에 필수인 국사 과목을 도와주겠다고 A양에게 제안을 하고, A양은 이 같은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불거졌다. B씨가 A양에게 공부를 도와주면서 이상한 제안을 했기 때문이다. 해당 과목의 모의시험을 본 뒤, 틀린 개수만큼 옷을 벗으라고 요구한 것. B씨는 이러한 제안을 제3자에게 알릴 경우 10억 원을 내야 한다는 억지 각서까지 쓰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A양이 이런 내용의 제안을 이상하게 받아들이거나 제3자에게 알릴 것을 우려해, A양의 생활기록부에 부정적인 내용을 적겠다는 협박도 했다. B씨의 협박이 공무원 채용에 불이익을 안길 것을 우려한 A양은 어쩔 수 없이 교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각서의 내용은 시간이 지날수록 A양의 공부와는 관계없는 내용으로 변질됐다. B씨는 A양을 자신의 물건으로 취급했다. B씨의 협박행각은 A양에 대한 강제 추행 및 간음 행위로 이어졌다. 약 2개월간 B씨는 학교 동아리 교실에서 43회에 걸쳐 A양의 옷을 벗기고 강제 추행, 간음을 한 것으로 조사 결과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B씨는 A양의 나체를 카메라로 촬영하기까지 했다.
B씨의 악행은 A양이 담임교사에게 사실을 털어놓으면서 세간에 알려졌다. A양은 결국 신고를 했고, B씨는 구속된 뒤 지난해 말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위계 등 간음)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3일 수원지검에 따르면 검찰은 결심공판에서 B씨에게 징역 10년을 구형하고 전자발찌 부착을 청구한 상태다.
현재 B씨는 “처음에는 개인교습을 해주려는 선의로 시작했는데 제자에게 성적으로 못할 짓을 했다. 할 말이 없다”고 지난 조사에서 진술하며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방값 아끼자?
‘갑질 성범죄’ 논란은 교단을 넘어, 직장에서도 빈번히 일어난다는 지적이다. 최근 울산 울주시설관리공단 이사장이 계약직 여직원을 상대로 한 성희롱 의혹이 제기돼 파장을 만들고 있다.
복수의 지방언론 보도에 따르면, 울주시설관리공단 이사장 C씨는 지난해 1월 해외연수 기간 중 동행한 여직원 D씨를 성희롱했다. 이는 울산여성회 울주군지부에서 처음 주장한 뒤 보도된 것으로, 이사장 C씨는 12일 “공단에 더 이상 누를 끼칠 수 없다”며 사직서를 제출했고 13일엔 “공단에 해가 되는 논란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도의적 책임을 지고 이사장직을 내려놓기로 결정했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울주군은 진상조사가 끝난 뒤 C씨의 사직서를 수리할 방침이다.
울산여성회가 처음 주장한 내용에 따르면 지난해 1월 5박6일 일정으로 진행된 베트남·캄보디아 해외연수 중 함께 간 여직원 D씨를 여러 차례에 걸쳐 성희롱을 했다. C씨는 D씨에게 “숙소가 1인당 1실로 예약돼 있어 1인당 17만 원을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 경비절감 차원에서 트윈으로 된 객실 하나를 함께 쓰는 건 어떠냐”고 말하며 ‘방을 함께 쓰자는’ 의미를 전달했다.
관광가이드가 있는 자리에서 한 발언으로, D씨는 이에 불쾌감을 느꼈다. 객실은 결국 따로 사용했다. 하지만 C씨는 D씨에게 “여행기간 부부처럼 다정하게 지내자”라는 말을 하거나, 밤에 D씨의 객실 문을 두드리는 등 석연찮은 행동을 한 것으로 알려져 파장이 커지고 있다.
귀국 후 D씨는 문제제기를 했고, 이사장 C씨는 직접 D씨에게 사과했다. 하지만 울산여성회 울주군지부에서 다시 문제를 제기한 뒤 논란이 커진 것이다.
이사장 C씨는 사건이 외부로 알려진 후 “당시에는 제 발언이 성희롱에 해당하는 줄 몰랐고 불쾌하게 느껴졌다면 죄송하다”며 “우리를 제외한 다른 연수팀은 모두 부부나 가족 등으로 편성돼 함께 1실을 사용했는데 우리만 각각의 1실을 사용하게 돼 경비 절감차원에서 같이 방을 쓰자고 제안한 것이고 절대 성희롱할 생각은 없었다”고 해명한 바 있다.
결국 조직의 문제
하지만 이러한 해명 및 사과에도 불구하고, ‘상대적 갑’의 위치에 있는 점을 악용한 성범죄 사건을 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피해여성의 어려운 형편, 자신보다 불리한 위치에 있는 점을 악용한 범죄라는 사실 때문이다.
직장 내 성희롱 등의 성범죄 문제를 담당하는 한 법무법인 관계자는 “과거보다 피해 사실을 알리는 등 피해여성들의 적극적인 노력 덕에 이러한 성범죄 문제가 더욱 이슈화한 것 같다”며 “그럼에도 여전히 갑의 위치를 이용한 성범죄 문제가 끊이지 않는 등 이런 세태·비행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결국 이는 상대방보다 자신이 좀 더 나은 위치에 있다고 인식하는 순간, ‘내가 이렇게 해도 말을 못 할거다’는 등의 생각 때문이다”며 “갑과 을이란 프레임이 범죄를 만들기 쉬운 건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여성노동 문제 등을 위해 활동하는 한국여성민우회 관계자는 이런 일련의 사건에 대해 “지위를 이용한 성범죄 문제는 결국 조직의 문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조직문화를 바꿔야 하는데, 이를 바꿀 수 있는 위치의 사람들이 이런 문제를 ‘가해자와 피해자 두 개인들의 문제’로만 치부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