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경 KDI 원장의 순환출자 비판 보고서를 보니

2016-01-11     강휘호 기자

S사·L사·H사 거론…국내 굴지의 그룹사 향한 경고되나

[일요서울|강휘호 기자] 현재 기업집단의 출자구조를 규율하는 상호출자금지와 순환출자금지, 지주회사제도로는 기업집단의 지배구조를 악화시키는 출자행태를 막을 수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러한 연구 내용은 국책연구원인 한국개발연구원(이하 KDI)에서 내놓은 ‘기업집단 출자규율제도의 재검토 및 추가규율의 필요성’이라는 정책포럼 보고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특히 KDI가 여기서 몇 군데 대기업을 구체적인 예시로 들기도 해 이들을 향한 경고가 아니냐는 분석도 파다하다.

기업집단 출자규율 제도화 통한 규제 불가피 지적
자율적 판단 한계 드러난 셈…정부 정책 변화 주목

우선 KDI의 주장을 종합해보면 현재 대규모 기업집단의 출자구조를 규율하는 제도는 상호출자금지와 순환출자금지, 지주회사제도만이 남아 있는데, 기업집단의 지배구조를 악화시키는 출자행태가 상호출자나 순환출자 이외에도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으므로 추가적인 규율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상호출자와 순환출자를 규제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실제 자본의 투입 없이 자본금 규모를 증가시켜 자본 충실성의 원칙을 훼손하기 때문이다.

실제 이들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금의 제도 아래에서는 여러 형태로 규율을 회피할 수 있는 허점이 다수 존재한다. 일례로 우회출자나 계열사 지분과 자사주의 교환 등을 이용하여 가공의 의결권을 형성할 수 있다.

아울러 순환출자 고리에 비계열 우호 기업이나 위장계열사 등을 끼워 넣는 방식으로 현행 규율을 회피할 수도 있으나, 현재 제도에서는 전혀 규율되고 있지 않은 상황도 문제다. 모든 종류의 기업 간 출자는 소유와 지배 괴리를 악화시키거나 가공자본을 형성한다. 출자구조 규율에 있어서는 특정 출자의 선택이 건전한 경영상의 판단 결과인지, 소유와 지배를 괴리시키려는 악의적인 목적인지를 판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의의 목적이더라도 경제적 부작용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를 신중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것도 지적 대상이다.

다만 출자총액 제한제도처럼 규격화된 규제양식은 기업집단의 출자에 대한 가장 강력한 규율수단으로 작동할 수 있으나 기업의 건전한 경영상의 판단도 제약해 오히려 비효율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새로운 규율방안을 도입할 때는 기업의 판단을 존중하되 그 실질적 의도를 겨냥할 수 있는 규율이 되도록 신중하게 제도를 고안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KDI는 비계열 우호 기업을 이용한 순환출자 고리 형성과 관련한 대표적 예시를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로 해 경고를 날렸다. 순환출자 고리를 형성하지 않아 현행 제도로는 규율되지 않지만 실제로는 지나치게 소유 및 지배 괴리를 악화시키거나 가공자본을 형성하여 정책의 궁극적 목적에 위배되는 경우들이다.

우회출자를 통한 가공의 의결권 확보를 한 기업으로 KDI는 L사와 S사를 들었다. KDI는 “2014년 12월 19일 L그룹 계열사 A1이 계열사 A2의 자사주 약 94만 주를 확보하면서 292억 원을 A2에 출자한 후, 2015년 6월 23일에는 A2가 100% 자회사로 계열사 A3를 설립하면서 33억 원을 납입했다”고 밝혔다. 

이를 KDI는 33억 원의 자금이 A1으로부터 A2를 우회하여 A3로 출자된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또 그 이후 2015년 1월 1일부로 A2의 내부 사업부문을 계열사 A4로 분리하였는데, A4는 A3와 유사한 성격의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A1을 대주주로 하는 반면, 자매회사 격인 A3는 A2를 통해 A1의 출자를 받는 다소 부자연스러운 출자구조가 형성됐다고 봤다.

2013년 12월 27일 S그룹의 두 계열사 B1과 B1’가 2014년 중 각각 3010억 원씩 계열사 B2에 유상증자 형태로 출자하기로 결정했고 같은 날 B2는 유상증자 형태로 계열사 B3에 2980억 원의 출자를 진행하기로 결정한 사례 역시 거론됐다.

기업들은 좌불안석

계열사 지분과 자사주 교환을 이용한 가공의 의결권 확보는 H자동차그룹에서 보였다. 2001년 3월 6일, H자동차그룹 계열사 A1은 계열사 A2에 3790억 원을 투입하여 A2가 보유하던 계열사 A3의 주식 4973만 주를 획득하였으나, 당일 A2는 1857억 원을 A1에 환급하고 A1이 보유하던 자사주 1066만 주를 넘겨받은 바 있다.

이 거래는 “1857억 원에 해당하는 A1의 자사주와 A2의 A3 지분을 맞교환한 것으로, 지배주주의 입장에서는 A3에 대한 의결권을 그대로 유지한 상태에서 실제 자금투자 없이 A1에 대한 추가적인 의결권만 확보한 것”이라고 해석됐다.

비계열 우호 기업을 이용한 순환출자 고리의 형성 예로서도 2015년 3분기 말 기준, H자동차그룹과 H백화점그룹의 이름이 나왔다. 자체적으로도 순환출자 고리를 가지고 있는 데다, B1 이외에 B4를 통해서도 연결되어 있어 실제 출자양상은 훨씬 더 복잡하다는 설명이다.

이를 두고 양용현 KDI 연구위원은 “기업집단 출자규율은 원칙적으로 시장의 자율적 규율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나, 그러한 여건이 충분히 조성되기 전까지는 제도를 통한 공적 규율이 불가피하다”고 전했다. 

아울러 “금지하고 있는 출자 양태 외에도 앞에서 살펴본 예시와 같이 불건전한 의도를 가지고 있거나 건전한 의도라 할지라도 부작용의 정도가 지나치게 높은 출자양태들은 사후적으로 조사·심의하여 제재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만약 자본시장(증권·대출시장 등)과 경영권시장((M&A시장 등)의 지배구조 견제능력이 견실하고 소액주주 집단소송 등을 통해 소액주주의 이익이 충분히 보호되고 있다면, 건전한 출자와 불건전한 출자 사이의 구분과 불건전한 출자에 대한 규율이 시장을 통해 자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의견이다.

한편 해당 보고서의 출처가 KDI라는 점에서 정부가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다. KDI가 대기업의 순환출자 고리를 끊어버리기 위해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공언했고, 정부의 정책방침이 맥을 같이 한다면 대기업에 대한 순환출자 규제가 강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KDI는 현 정부 들어 우리나라 경제정책을 결정하는 실세들의 교집합이기 때문에 이러한 해석에 충분히 힘이 실린다. 박근혜 대통령은 KDI 출신들을 임기 초기부터 활용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현오석 경제부총리와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다. 또 KDI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설립했다는 점도 주목된다.

hwihol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