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팔의 여자들’…미스터리 풀 열쇠 쥐고 있나?

은닉자금·비자금 내역 담긴 장부 소지說

2016-01-11     송승환 기자
[일요서울 | 송승환 기자] “조희팔(58)의 밀항(密航)을 돕고 비밀 장부 든 박스를 받은 내연녀를 반드시 찾아야 한다.”

최근 몇 년 동안 행적이 묘연한 조희팔의 내연녀 A씨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A씨는 조희팔 일당의 금융 다단계 사기 행각이 조금씩 드러나고 수사망이 좁혀질 무렵 조 씨의 중국 밀항을 돕는 데 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 뒤 A씨의 몇 년 동안 행적이 전혀 드러나지 않고 있어 다양한 추측이 나오고 있다. 최근까지 A씨의 행방을 쫓아온 대한민국정의구현시민연합(정의연합) 윤광제(42) 상임대표는 A씨가 다른 사람의 여권을 이용해 중국 등을 드나들며 조희팔을 접촉했을 가능성이 제기했다. 또 최근 A씨가 이름을 바꿔 활동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윤 대표는 “A씨의 지인이 조희팔이 중국으로 밀항한 뒤 중국 등을 자주 방문한 사실을 밝혀냈다”며 “A씨가 다른 사람의 여권을 이용했을 개연성(蓋然性)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이어 “조희팔은 A씨를 상당히 신뢰했고, 밀항 전에 ‘목숨보다 소중한 것이니 잘 보관하라’며 각종 장부가 든 박스 2∼3개를 맡겼다”며 “A씨가 조희팔 사건 미스터리를 푸는 핵심 열쇠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름 바꾸고 다른 사람 여권 사용”


‘희대의 사기꾼’ 조희팔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지난해 11월 7일 내연녀를 범죄수익금 은닉 혐의로 검거하면서 ‘조희팔의 여자들’이 새삼 주목을 받았다. 검찰과 경찰은 이들이 조희팔 사망여부, 정·관계 로비 리스트 존재 여부, 은닉자금 규모 등 이른바 ‘조희팔 미스터리’를 풀어줄 핵심 열쇠를 쥔 인물로 보고 수사하고 있다.

조희팔 범죄수익 10억
은닉 내연녀 구속

대구지방검찰청 등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긴급 체포한 김모(55·여)씨는 조 씨가 2008년 12월 중국으로 밀항한 뒤 이듬해 국내에서 조 씨 측근에게서 범죄 수익금 10억여원을 양도성 정기예금증서(CD) 형태로 받아 숨긴 혐의를 받았다.


대구지방법원 정영식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검찰이 영장을 청구한 김 씨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범죄를 저질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도주 및 증거 인멸 우려가 있다”며 영장을 발부했다.


법정에 모습을 드러낸 김 씨는 “혐의를 인정하느냐”, “조희팔이 살아있느냐” 등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김 씨는 조 씨가 2011년 12월 19일 중국 산둥(山東)성 웨이하이(威海) 한 가라오케에서 급성 심근경색으로 숨진 것으로 알려질 당시 현장에 있던 두 명 가운데 한 명이다.


내연녀 김 씨는 조희팔이 중국 밀항 때 지닌 ‘로비 수첩’의 근거 서류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밀항선에 오를 때 조희팔은 로비 대상자 명단을 적은 ‘손바닥만 한 전화번호 수첩’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수첩을 갖고 가면서 김 씨에게 그 내용과 관련된 서류들을 불태우라고 지시했는데, 김 씨가 자신의 ‘안전(安全)’을 위해 이를 태우지 않고 보관 중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피해자 모임 ‘바른 가정경제 실천을 위한 시민연대’(바실련) 김상전 대표는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조희팔의 밀항을 주도한 홍모(55)씨가 김 씨에게 ‘그 서류를 태우지 말라’고 조언했다”고 전했다. 당시 홍 씨 부부와 친하게 지내 홍 씨를 ‘형부’라고 불렀던 김 씨가 조희팔의 지시를 홍 씨에게 전하자 홍 씨는 “이걸 갖고 있어야 네가 산다”고 했다는 것이다.


조 씨의 ‘오른팔’ 강태용(54)이 지난해 중국에서 검거된지 열흘 뒤 자신의 사무실에서 목숨을 끊은 조 씨의 조카 유모(46)씨는 생전에 사망 과정에서 김 씨 등의 행적이 의심스럽다는 말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에 있던 또다른 사람은 조 씨의 지인이다. 유 씨는 이들의 연락을 받고 가보니 외삼촌인 조 씨가 숨져 있었다며 타살 의혹을 제기하고 했다.


이 때문에 김 씨는 은닉자금 뿐만 아니라 조 씨 사망을 둘러싼 세간의 의혹을 풀어줄 핵심 인물로 수사당국은 보고 있다.


이밖에 조 씨가 중국으로 밀항하기 전까지 함께 살던 부인 B(66)씨도 관심 대상이다.


B씨가 조 씨의 장례식에 참석해 그의 죽음을 확인한 인물 가운데 한 명이어서 미스터리를 푸는 데 적지 않은 정보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검찰과 경찰을 추정하고 있다.


B씨와 조희팔 간에는 1남 1녀가 있으며, 이 중 한 명이 조희팔로부터 12억 원을 받아 은닉한 혐의로 검찰에 구속된 아들이다.

‘조희팔 리스트’
존재說은?

최근 ‘조희팔 리스트’ 존재설(說)이 여기저기서 불거져 나오고 있다. 조희팔이 정·관계 등 고위층에 금품·향응을 제공하 내용이 담겨 있다는 명단이다. 바실련은 이 리스트가 존재한다고 보고 있다. 오랜 기간 조희팔 주변을 추적해보니 충분한 개연성이 있다는 것이다. 명단이 어디에 있는지 안다고 주장하는 조희팔 일당 주변 인물도 등장했다.


여러 주장을 종합하면 ①조희팔의 내연녀 김모씨 ②채권단 대표를 자처했던 곽모(48)씨 ③부산 지역 조직폭력배 조모(48)씨 등이 현재 조희팔 리스트를 갖고 있는 인물로 거론되고 있다.


바실련은 ‘조희팔 비호세력’의 실체를 규명하려면 ‘조희팔 리스트’ 확보가 급선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은 로비 리스트에 대해 확인된 게 없다는 입장이다.


결국 ‘조희팔의 행방’과 ‘조희팔 리스트’의 실체를 규명할 열쇠는 내연녀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지난해 검찰은 “조희팔 사건의 뿌리를 뽑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조희팔의 내연녀가 범죄 수익을 은닉한 사실을 4∼6년 뒤에야 비로소 알아차린 검찰 수사를 과연 믿을 수 있겠냐는 볼멘 소리가 지금까지 나오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songwin@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