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및 기획사 횡포에 신음하는 보조출연자들

성폭행ㆍ저임금, 최악의 ‘인권유린’…“사는 게 사는 게 아냐”

2016-01-04     장휘경 기자

[일요서울장휘경 기자] 텔레비전 방송 프로그램 제작에 엑스트라로 동원되는 보조출연자들이 방송사와 기획사의 횡포에 대해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은 촬영 도중 각종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반면 이에 대한 예방책이 없고 출연에 대한 보수도 적절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얼마 전 종영한 사극에서 보조출연자 역할을 맡았었다는 이철완(53가명)씨는 마지막 촬영 때까지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마지막 촬영날에는 비가 왔는데 들판에서 전투 장면을 촬영하던 중에 옆의 보조출연자가 넘어지면서 다쳤다. 그는 허리를 다쳐 몸을 가누지 못했는데도 제작진은 병원으로 옮기지 않고 1km나 떨어진 세트장으로 이동시키라고만 지시했다. 다친 사람을 차에 태워주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사극 프로그램의 보조출연을 두 달 정도 하다가 그만두었다는 문희벽(48가명)씨는 촬영을 하다 보면 질서 유지를 위해 통제가 필요하겠지만, 새파랗게 젊은 진행요원이 50대 보조출연자에게 반말과 욕설을 퍼붓기 일쑤다. 심하다 싶어 따지면 몇 지부에서 나왔어?’라면서 면전에 대고 망신을 준다고 말했다.
 
지부란 보조 출연자가 속한 인력 소개업체가 구분해놓은 팀 단위를 말한다. 회사마다 1~10개 지부로 나뉘는데 1개 지부에는 보조출연자가 2백여 명 소속된다.
 
임금 착복당한 적 많아
 
산이나 들에서 진행되는 야외 촬영에 나가본 보조출연자들은 용변 볼 장소가 마땅치 않아 가장 힘들다. 세트장은 큰 돈을 들여 지으면서 보조출연자들이 사용할 간이화장실조차 준비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보조출연자들은 기본 시급이 4,000원인데 촬영 전과 후에 모여서 차로 이동하는 5~10시간은 제외된다고 말했다.
 
보조출연자들은 식대는 일당과 별도로 6,000원으로 책정되어 있다. 하지만 반장이 정해주는 식당에서 식사를 해야만 하기 때문에 맛이 없어도 먹어야 하거나 주먹밥 또는 김밥으로 때우는 경우가 흔해 우리들로서는 불만스러울 때가 많다고 불평했다.
 
지방 촬영을 갈 때는 보통 촬영 전날 밤 1130분께 모여서 관광버스로 현장까지 이동한 후 새벽부터 촬영에 들어간다. 주역들의 스케줄에 의해 촬영계획이 바뀌는 경우가 많아 하루 중 유일한 한 끼 식사를 4~5시가 되어서야 하게 되는 일도 잦다.
 
전국보조출연자노동조합 이규석 사무국장은 “1시간 최저 임금이 5,580원이다. 그런데 TV 방송의 보조출연자들이 받는 금액은 1시간당 평균 4,000원으로 최저임금에도 못 미친다라고 지적했다. 보조출연자들은 소개업체인 기획사들이 방송국으로부터 돈을 받아 보조출연자들에게 지급하는 과정에서 과다한 수수료를 챙기고 있다고 불만스러워하고 있다.
 
보조출연자들은 최종 지급되는 일당에서 다시 몇천 원을 떼어내는 업체마저 있다. 횡포가 너무 심하다고 하소연했다.
 
보조출연자들의 또 다른 불만은 소개업체들이 출연료를 바로 지급하지 않고 지급날짜를 미룬다는 점이다. 보통 보조출연자의 출연료는 두 달 뒤에나 정산을 해준다. 월초에 출연한 사람은 두 달 후에나 받게 되는 것이다. 생계형 보조출연자가 힘겨운 이유다.
 
업체반장들, 집단 성폭행
 
20098월에는 한 여성 보조출연자가 보조출연자 공급업체 반장들에게 집단 성폭행 당해 후유증으로 자살한 후 여동생까지 잇따라 목숨을 끊은 이른바 자매 자살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이 있은 후 보조출연자 문제가 많이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인권유린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음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인원 통솔을 원활히 하기 위해 임명한 반장과 부반장의 행태를 보면 가관도 아니다. 자신들의 말을 잘 듣지 않는 보조출연자들을 향해서 이런 식이면 당장 내일부터 못 나오게 하겠다는 위협성 발언은 물론이고, 갖은 심한 욕설과 함께 폭행까지도 일삼고 있다고 한다. 보조출연자들은 이런 가당찮은 행태를 보면서도 생계를 잇기 위해 비굴함을 감수하면서 속으로 피눈물을 삼키고 있는 것이다.
 
물론, 정치권에서 이런 보조출연자들의 인권을 개선하기 위한 활동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자매 성폭행 사건이 터진 후 당시 민주통합당 소속의 최민희 의원이 보조출연자 자매 자살 사건의 재수사를 촉구한 일이 있었고 모 방송사에서 이 사건을 집중 취재해 보도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 사건은 그때만 잠시 반짝했을 뿐 도가니 사건처럼 사회적 이슈로 크게 떠오르지 못하고 또다시 잠잠해졌다.
 
한편 모 신문 기자는 보조출연자로 위장취업해서 이들의 실상을 낱낱이 밝히기도 했다. 이 기자에 따르면 보조출연자의 현실은 하나같이 살인적으로 가혹했다.
 
어떤 기획사는 보조출연자에게 숙박을 제공하지 않으려고 15시간 동안 촬영한 후 고의로 서울로 갔다가 다시 촬영장으로 왔다.
 
특이한 점은 보조출연 기획사의 지부장은 거의 신이다. 연기력으로 출연여부가 결정되는 게 아니라 지부장이나 반장에게 뒷작업(술 사주기, 상납 등)을 많이 해야 일을 잘 딴다.
 
해당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가 보조출연자들을 위해서 순수하게 밥을 사주면 기획사는 식대를 착복한다. 일례로 주연배우가 생일 때 보조출연자 전원에게 햄버거를 사줬더니 기획사 측에서 보조출연자들에게 식대를 지급하지 않았다.
 
지부장에게 불만을 얘기하면 당장 그만두라는 고성이 돌아오고 출연료를 물어보면 욕설문자로 답변이 온다.
 
일부 악질 반장들은 미모가 좀 되는 여자 보조출연자에게는 성추행을 일삼고 자매자살사건과 같은 성폭행을 하는 등 가혹행위를 서슴지 않는 예도 많다.
 
하지만 최근 보조출연자들의 처우에 대한 사회단체의 비난이 거세지자 기획사들이 정상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방송사의 갑질은 여전해 또 다른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
 
전국보조출연자노동조합 이규석 사무국장은 기획사들이 방송사의 지나친 갑질로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등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면서 웬만한 기획사는 모두 무너지고 태양기획과 한강예술, 두 곳만 남았다고 안타까워했다.
 
hwikj@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