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향 사태’ 정명훈 감독 vs 박현정 전 대표 진실공방

박현정 “인격살인 당했다…13개월 동안 고통” VS 서울시향 “박현정이 가해자”

2016-01-04     장휘경 기자

[일요서울장휘경 기자] 지난달 30일 예술의 전당에서 서울시립교향악단(서울시향) 예술감독으로서의 마지막 공연을 마친 정명훈(63) 감독이 10년간 몸담았던 서울시향을 스스로 떠났다. 정 감독의 이 같은 결정은 부인 구순열(67) 씨의 경찰 입건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사건의 발단은 2014년 12월 서울시향 사무국 직원 17명이 호소문을 통해 박현정(53) 전 대표가 직원들에게 일상적인 폭언과 욕설, 성희롱 등으로 인권을 유린했다며 공개퇴진을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박 전 대표는 결국 대표직에서 물러났지만, “억울하다며 혐의는 강하게 부인했다.

 
경찰 조사가 시작되고 지난해 8증거불충분으로 박 전 대표의 혐의 등에 대해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되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박 전 대표를 고소한 서울시향 직원들과 정 감독의 부인 구 씨 등은 박 전 대표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다.
 
정 감독은 사건에 대해 침묵을 지켜오다가 서울시향 이사회가 재계약을 1월 중순경까지 보류하기로 결정하자 지난달 29일 단원들에게 편지를 통해 사의를 밝혔다.
 
정 감독은 편지에서 서울시향이 지난 10년 동안 이룩한 업적이 이 한 사람의 거짓말에 의해 무색하게 되어 가슴이 아프다고 전하며 애석해했다.
 
아울러 정 감독은 올해 예정된 9차례의 정기공연 지휘 또한 하지 않겠다고 선언함으로써 지난달 30일 열린 ‘2015 정명훈의 합창, 또 하나의 환희공연이 그의 서울시향 마지막 무대가 됐다.
 
그러나 이날 서울시립교향악단(서울시향) 단원들은 정 감독의 사퇴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며 정 감독이 아닌 박현정 전 대표가 가해자임을 알리는 호소문을 공연 시작 전인 오후 730분부터 관객에게 배포했다.
 
단원들은 호소문에서 정명훈 예술감독과 함께하는 서울시향의 마지막 연주를 앞두고, 단원 일동은 박현정 전 서울시향 대표의 서울시향 사무국 직원들에 대한 인권유린 등의 사태에 대해 호소한다사태의 본질은 박 전 대표의 사무국 직원들에 대한 인권유린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박 전 대표는 개혁이라는 명목 하에 사무국 직원들에 대해 언어폭력 및 인권유린을 자행해 취임 이후 약 2년 남짓한 기간 동안 사무국 직원 27명 중 13명이 퇴사했다박 전 대표의 퇴임 이후에도 직원들은 불안,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내부고발을 한 피해자가 가해자로 뒤바뀌어 이번 사태의 본질이 흐려지고 있다이번 사태의 유발자이자 가해자는 명백히 박 전 대표임에도, 그 행위를 고발하고 세상에 알리려 한 사람들이 도리어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피의자 신분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서울시향 단원은 음악에 전념해 시민들께 좋은 음악을 선사하기 위해 존재한다사태의 진실과 다른 내용이 시민들께 알려지고 서울시향 본연의 임무를 방해하는 일은 즉시 중단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 감독과 10여 년 동안 함께해왔다는 서울시향의 한 단원은 정 감독은 오랜 동료이자 스승이었는데, 다들 참담하고 안타까운 심정을 느껴 어제 저녁에 (단원들이) 함께 이 호소문을 제작했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직원들 인간 이하의 고통 받아
 
앞서 지난달 29일 서울시향 직원들에게 이번 사태에 대한 진실규명을 위해 인터뷰를 요청하자 한결같이 우리들의 억울한 사연을 들어달라고 반색을 하면서도 경찰의 과한 조사에 질린 듯 익명으로 처리해 기사를 써달라는 부탁을 잊지 않았다.
 
서울시향 직원들에 따르면 이번 사태는 집요하고 지속적으로 자행된 박 전 대표의 직원들에 대한 인권유린에서 시작됐다.
 
직원 A씨는 “2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겪어온 일들은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2013년 박 전 대표의 취임 이후 직원들은 심각한 언어폭력에 노출되기 시작했고 똑똑하고 현명한 여성 CEO에 대한 기대감은 곧 절망감으로 바뀌었다고 밝혔다.
 
A씨는 너무나 충격적인 상황에 오래 노출돼온 직원들은 인간 이하의 고통을 받아왔고 벌레만도 못한 취급을 받았었다면서 시향을 누구보다 사랑하던 동료들이 견디다 못해 하나 둘씩 눈물을 흘리며 회사를 떠날 때 이젠 정말 누구 하나 죽어나가겠구나라는 생각까지 들었었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박 전 대표 방에서 화장실도 못간 채 5시간을 앉아 화풀이를 들어야 했던 적도 있었다. 본업은 챙길 수 없을 정도였다고 주장했다.
 
다른 직원 B씨는 지옥이 따로 없을 정도로 괴로운 나날이었지만 애정이 있는 직장을 버리고 싶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서울시향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었고 유럽과 북미투어를 거치며 한없는 긍지를 느끼게 해줬다고 전했다.
 
그는 박 전 대표는 직원간의 이간질을 하는가 하면 저능아’, ‘무뇌아등의 욕설을 서슴지 않았다그냥 참고 견디다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상황이 왔고, 우리 모두는 결국 정 감독님께 도움을 요청했다. 그리고 감독님은 우리의 탄원서를 박원순 서울시장님께 전달해주셨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원 C씨도 우리는 사회적 약자이자 피해자이며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문제의 본질은 인권이며, 우리는 결코 거대한 권력과 배후의 도구로 이용당한 것이 아니다면서 의도적으로 남을 모함하거나 거짓말을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제기한 진실에 대해 의심을 받고 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박현정 사회적 생매장 당해
 
한편 박 전 대표는 정 감독을 겨냥해 저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다시 한 번 인격살인한 것이라며 “201412월 인격살인 당하고 사회적으로 생매장 당해 13개월 동안 무덤 속에서 허우적거리다가 간신히 빠져나오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는 사람을 다시 한 번 한 사람의 거짓말이라면서 무덤 속으로 밀어넣었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감독님이 이렇게 떠나고 사모님(정 감독 부인인 구순열 씨)도 귀국하지 않으면 진실규명은 요원해진다. 수사를 통해 진상이 밝혀질 수 있도록 적극 나서주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구 씨는 현재 프랑스에 머물고 있는 상태다.
 
박 전 대표는 정 감독의 보좌역을 맡았던 백 씨와 구 씨가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입장이다. 그는 이들이 4개월간 주고받은 문자메시지가 80쪽이나 되고 직원 10명이 카톡방에서 투서 작성 시에 주고받은 대화는 저를 음해하는 내용으로 얼룩져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 감독의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지평은 정명훈 지휘자의 부인은 직원들의 인권침해 피해의 구제를 도왔을 뿐, 허위사실 유포를 지시한 사실이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직원들이 박 전 대표를 상대로 성추행과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한 사건이 경찰에서 무혐의 송치됐다는 이유로 무혐의로 결론 났다고 했으나, 이는 말 그대로 경찰의 의견일 뿐 검찰의 종국 판단은 아직 없었으므로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도 말했다.
 
지평은 구 씨가 입건됐다는 사실은 호소문 배포에 관련돼 있다는 것을 나타낼 뿐이지 결코 호소문 배포 의사가 없는 직원들을 사주했다거나 그 호소문 내용이 허위였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지평은 구 씨의 피의사실을 공표하고 박 전 대표가 명예훼손한 것에 대해 고소를 고려하고 있다.
 
hwikj@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