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호적인 건축사·공무원 표적…‘고발왕’ 건축사 결국 실형… 4001명 ‘묻지마’ 고발
2016-01-04 송승환 기자
검찰, 경찰, 지자체 건축 관련 부서 ‘업무마비’
[일요서울 | 송승환 기자] ‘공익 신고’란 명분을 내세워 동료 건축사와 건축 관련 공무원 4001명을 마구잡이로 고발한 건축사에게 결국 실형이 선고됐다. 광주지방법원 형사9단독 노호성 판사는 지난해 12월 28일 허위 고발을 한 혐의(무고)로 구속기소된 건축사 임모(55)씨에 대해 징역 2년 6월을 선고했다.
임씨는 2012년 5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을 비롯한 전국 10개 검찰청이나 지청에 건축사나 관련 공무원 4001명(1953건)을 건축법 위반이나 직무유기(職務遺棄) 등으로 고발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 조사 결과 임씨는 현장 조사 조서(調書)를 허위 작성한 혐의로 기소돼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은 데 불만을 품고 고발을 일삼았다. “건축 설계·감리 업무 대부분을 일부 건축사들이 독식한다”는 생각에 하루 99건을 고발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분쟁 중인 아파트 등 관련 민·형사 업무를 맡아 형사합의금의 10∼50%를 받기로 약속하고 분쟁 상대방을 고소·고발하기로 한 것으로 조사됐다. 다가구 주택의 불법증축·용도변경 등 흔히 있을 법한 위법사실을 고발한 경우도 많았다.
또 자신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건축사 등을 표적 삼아 사건을 쪼개어 지속·반복적으로 고발하거나 피고발인이나 구체적 위법 사실을 밝히지 않은 ‘묻지마 고발’도 상당 부분을 차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임씨는 고발 과정에서 피고발인들이 실제 건축법을 위반했는지조차 확인하지 않았다. 광주지방검찰청에 접수된 임씨의 고발 1543건 가운데 각하(却下) 또는 ‘혐의없음’으로 처분된 사건이 절반이 넘고, 타 검찰청에 고발한 사건도 대부분 불기소 처분됐다.
임씨는 건축사들에게 고발 내용과 향후 계획 등을 알리는 e메일을 보내거나 건축사 3명을 고발할 것처럼 겁을 주고는 1300여만 원을 뜯어내기도 했다.
임씨의 인지도가 악명으로 바뀔 즈음 지난해 3월 임씨로부터 공갈(恐喝) 피해를 봤다는 피해자도 나타났다. 한 피해자는 사문서 위조로 모두 80건을 임씨로부터 고발당해 경찰 조사만 100차례를 받고 사실상 건축사무소를 폐업한 상태에서 3천만 원을 요구받고 1천100만 원을 줬다고 검찰을 밝혔다. 임씨의 이같은 무더기 고발 행태가 알려지면서 진의(眞意)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다. 만연한 불법 건축실태와 건축업계 관행에 경종을 울리려는 의도일 것이라는 추측과 함께 ‘고발왕·괴짜 건축사’라는 평가도 나왔다. 검찰, 경찰, 지방자치단체 건축 관련 부서에서는 임씨의 고발 사건을 처리하느라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라는 하소연까지 나왔다.
임씨가 고발한 사건을 전수조사해 경위·목적·경과 등을 분석한 결과 건전한 고발정신으로 범죄에 적극적으로 대처한다는 제도의 취지를 벗어난 고발권 남용에 해당하는 것으로 봤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검찰 관계자는 “한정된 수사자원이 이번 사례처럼 크게 낭비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가게 돼 권리남용 금지 원칙은 고발권 행사에도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노호성 판사는 판결문에서 “다수의 피해자들을 형사 처벌 위험에 빠뜨리고 수사자원을 투입하게 해 피해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돌아간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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