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길 먼 통합체육회, 정부주도 통합에 체육계 불만 가득

통합으로 더 빡빡해진 예산 싸움에 단체장 기업인 모시기 눈치싸움

2015-12-28     김종현 기자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우여곡절 끝에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가 3월 통합체육회를 출범키로 한 가운데 사안이 결정될 때마다 불협화음이 일면서 양측 체육회 모두 내홍을 겪고 있다. 특히 정회원단체 자격 논란을 비롯해 예산문제를 놓고 단체들마다 섣불리 통합에 대한 해답을 내놓고 있지 못해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정부주도의 강제통합에 가까운 수순을 밟으면서 향후 통합체육회장 선출에서도 양측의 갈등은 극심해질 것으로 보여 우려를 낳고 있다.

통합으로 더 빡빡해진 예산 싸움에 단체장 기업인 모시기 눈치싸움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지난 21일 통합준비위원회 제 13차 회의를 열고 통합체육회 정관 일부조항(부칙), 회원종목단체규정 일부조항(부칙, 시도체육단체통합관련 공동 임원심의위원회 구성 운동 등에 대해 심의 의결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회의 결과 양 단체는 2016년 3월 27일 통합을 완료할 예정인 가운데 새 회장 선출 시까지 통합체육회의 업무를 어떤 식으로 분담할지 김정행 대한체육회장과 강영중 국민생활체육회 회장이 협의해 결정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준비위는 통합체육회 회장 선거를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이후인 2016년 10월 31일까지 회장 선거를 하도록 의결해 통합출범이후 양측 회장이 공동회장체제로 운영된다. 

이처럼 정부 측에서는 통합을 위해 속도를 내고 있지만 일각에서 이와 관련해 헌법 소원 움직임을 보이면서 갈등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강경파 헌법소원에
정부 경고

우선 체육단체 통합과 관련해 대한체육회 측 강경파들이 헌법소원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져 실제 실행에 옮겨질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부에서는 정부에 대한 엄포용 카드로 해석하고 있지만 체육회 가맹경기단체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는다면 힘을 얻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더욱이 대한체육회는 준비위에 들어가 통합의 절차와 방법을 논의하는 가운데 다른 한 쪽에서 헌법 소원을 청구하는 이율배반적인 상황을 만들면서 내홍을 겪고 있다.

더욱이 대한체육회 측 강경파의 입김이 거센 가운데 김정행 행장은 통합과 관련 리더십을 상실한 지 오래다. 앞서 통합에 도장을 찍었다가 반발이 커지자 이기흥 부회장에게 통합의 전권을 위임한 상태다.

사실상 이 부회장이 대한체육회를 이끌면서 ‘체육회장 위에 있는 부회장’이라는 비난도 있지만 김 회장에 대해 ‘비겁하다’는 원성이 더 큰 상황이다.

물론 엘리트 체육을 놓고 각 단체들이 협력관계보다 각자 살기를 도모하면서 헌법 소원 실행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보고 있지만 이에 대해 정부 측은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지난 11일 문체부 당국자는 헌법소원 움직임과 관련 “법에 의해서 규정을 정하면 당연히 해산되는 게 법정 법인의 숙명”이라고 지적하며 “법적으로 말하자면 대한체육회는 법으로 정한 법정 법인이다. 민간 법인이면 정관에 따라 대의원 총회에서 3분의 2 의결이 필요하겠지만 (대한체육회는) 법정 법인이어서 법으로 강제해 해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정부에서도 대한체육회 강경파의 헌법 소원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전달한 셈이다.

하지만 이미 통합체육회 정회원 자격에서부터 양 단체의 입장이 엇갈리면서 실질적 통합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돼 대한체육회 측의 반발에도 힘이 실리는 양상이다.

정회원 자격,
통합 고비 되나

우선 준비위에 따르면 통합체육회는 57개 정회원단체와 15개 준회원단체, 11개 인정단체, 13개 등록단체로 구성될 예정이다.

문체부 관계자는 지난 16일 “통합체육회의 회원종목단체들에 대해 종목 경쟁성과 저변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등급을 조정·분류했으며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이 끝난 뒤 이를 재평가해 조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2년 뒤 재평가 과정에서 정회원단체가 되려면 17개 시도종목단체 가운데 최소한 6개 시도종목단체를 갖춰야 하는 규정이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시도종목단체 하나를 인정받으려면 그 하위조직인 시군구종목단체의 3분의 1이상을 갖춰야 한다. 예를 들어 서울시협회를 인정받으려면 25개 구 가운데 3분의 1이상인 9개 구에 해당 종목단체가 구성돼야 한다는 것.

대한체육회 소속 일부 가맹단체들은 “이는 엘리트 체육의 특성을 무시한 처사다. 2년 유예 기간이 지나면 이 규정 때문에 올림픽 종목이 통합체육회 정회원 단체 자격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동호인 위주의 생활체육은 시군구 단위로 조직구성이 수월하지만 동호인이 많지 않은 전문 엘리트 체육의 경우 하위조직을 갖추기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문체부는 파장을 우려해 2년의 유예기간을 정했지만 체육관계자들은 종목별 특성상 지금 상황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그럴 경우 35개의 올림픽 종목 중 21개가 정회원 단체에서 준회원 단체로 바뀌게 된다. 실제 대표 메달 종목으로 꼽히는 빙상, 양궁, 유도, 레슬링 등이 준회원 단체로 강등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통합체육회는 정회원 단체, 준회원 단체, 인정단체 등 3등급으로 분류된다. 정회원 단체에서 준회원 단체로 강등되면 총회에서 발언권 및 의결권이 없어지는 것은 물론 체육회가 국가올림픽위원회 활동 및 각종 종합체육대회 개최 등을 통해 얻는 수익을 배분받을 권리 또한 사라진다.

이에 대해 문체부는 “기본적으로 해당 규정은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가 합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며 “기존 대한체육회 규정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 있지만 이것을 엄격하게 적용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관계자는 또 “종목별 협회의 존재 이유가 국가대표 양성에만 국한돼서는 안 되고 국민 전체 저변 확산에 대한 업무도 같이 해야 한다”며 통합체육회 목적을 재차 지적했다. 이와 함께 문체부 측은 “국가대표 선수에 대한 경기력지원 향상금은 정회원단체나 준회원 단체나 전혀 차이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양 단체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엘리트 체육계의 반발을 누그러뜨리기에는 부족하다는 시각이 제기되고 있다. 또 체육계 정서뿐만 아니라 국민적 공감대 확보라는 측면에서 전통의 올림픽 메달종목들이 정회원단체에서 줄줄이 준회원단체로 강등된다면 이를 국민들이 납득하기에는 다소 힘들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곳곳에 가시밭길,
양측 모두 불만

이뿐만 아니라 지난 16일 준비위는 정회원단체 종목을 발표하면서 ‘봅슬레이·스켈레톤과 루지’ 통합을 결정해 반발을 사고 있다.

문체부는 썰매 안에 탑승하는 봅슬레이, 엎드려 타는 스텔레톤, 누워 타는 루지 모두 통합관리가 가능하다는 판단에서 하나의 단체로 묶었다.

문체부 관계자는 “두 종목의 차이는 사실 (썰매를) 어느 방향으로 타느냐의 차이다. 굳이 분리돼 운영될 필요가 없다”면서 “지금 선수들도 연습을 같이 하는 게 맞다. 같이 훈련하러 나가면 된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일본, 노르웨이, 호주, 독일은 통합돼 운영되고 있는 점을 예로 들었다.

하지만 이들 모두 메달을 목표로 내건 가운데 평창올림픽을 2년 앞둔 상황에서 경기력과 후원사 모집 등에서 차질을 빚게 됐다며 반발하고 있다.

성연택 봅슬레이스켈레톤 연맹 사무국장은 “어떤 종목은 200만 원을 주는데 우리는 합쳤으니까 400만 원 주겠습니까”라고 반문하며 “천만의 말씀이다. 똑같이 주는 거다 인구는 늘었는데 지원은 똑 같은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또 이들은 국제연맹에도 두 단체가 따로 있는데 굳이 합칠 이유가 있느냐는 입장을 내놓고 있어 살림을 합치기까지는 진통이 예상된다.

이에 준비위는 부랴부랴 평창올림픽 이후로 통합 시점을 늦추기로 입장을 선회했다. 하지만 종목별 엇갈린 입장차를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더욱이 벌써 13번째 준비위가 소집됐지만 가시밭길을 걷고 있는 상황이다. 종목 단체들이 항의에 나서는 한편 국민생활체육회 측 단체들도 동호인의 의견을 반영하지 못한다며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이에 따라 경기력 향상과 저변 확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고 시작된 통합움직임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면서 한 마리 토끼마저 잡기 힘들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해져 정부 측이 어떤 해법을 내놓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정치인 단체장 금지로
대폭 물갈이

한편 준비위는 통합체육회를 기점으로 정치인 체육단체장 금지를 명문화 시키기로 해 향후 종목단체의 임원직을 놓고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앞서 지난해 11월 3일 정의화 국회의장은 43명의 국회의원에게 ‘겸직불가 및 사직 권고’ 조치를 내린 바 있다. 하지만 겸직불가 통보를 받은 의원은 모두 물러났지만 사직 권고를 받은 의원 중 일부(8명)는 아직까지 단체장을 맡고 있다. 협회에서 재임을 원한다는 게 이들의 변명이다.

하지만 준위비는 국회의원의 종목단체 임원 선임 금지내용을 담은 통합체육회 정관을 마련해 2016년 3월 초 문체부 장관 승인을 받을 예정이다. 이에 현재 단체장들은 통합체육회 출범하는 2016년 3월 말 전까지 물러나야 한다.

결국 정치인의 체육단체장이 금지되면서 체육단체들의 대대적인 물갈이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그 빈자리에 기업인 단체장을 영입하기 위해 단체들의 물밑작업에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실제 2013년 기준 대한체육회 산하 56개 단체 총예산은 2766억 원인데 이 가운데 74%인 2046억 원은 각 단체 회장 출연금이나 자체 사업 등으로 메웠다. 이 가운데 대한축구협회처럼 1000억 원 가까운 예산을 쓰면서도 재정자립도 96%를 자랑하는 몇몇 종목을 제외하고는 모두 외부 지원에 의존하고 있다.

이에 4대 재벌, 10대 재벌 총수 등을 단체장으로 영입한 단체들이 넉넉한 지원환경에 화색을 띠고 있다. 핸드볼협회의 경우 최태원 SK회장의 지원으로 시베리아 벌판에 있다가 따뜻한 온실 환경으로 옮겨온 경우다.

또 정의선 현대차 회장은 대한양궁협회 연간 예산의 60%인 30억 원을 출연했다. 아이스하키협회도 정몽원 한라 회장이 10여년간 수백억 원의 사재를 쓰면서 복 받은 종목으로 꼽힌다.

이밖에 신동빈 롯데 회장이 맡은 스키협회, 김재열 제일기획 스포츠총괄사장이 맡은 대한빙상경기연맹도 살림이 좋은 단체로 분류된다. 

todida@ilyoseoul.co.kr

<사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