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부패 개혁…공직으로 사정 타깃 이동
하필 총선 앞두고… 정·관계 ‘초긴장’ 내막
[일요서울 | 송승환기자] 김현웅(56) 법무부 장관이 부정부패 사범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라고 검찰에 지시하면서 새해 초 본격적인 사정(司正) 수사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기업 비리에 집중됐던 검찰 수사의 무게 중심이 정치인과 지방자치단체장, 고위 공직자 비리 쪽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김 장관의 특수 수사 인력 보강과 사정 수사 강화 지시가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사정정국을 조성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김 장관은 “부패와 부조리(不條理)의 악순환을 차단하지 않고서는 경제 재도약과 지속 가능한 성장은 요원하다”고 말했다. 특히 ▲공직비리 ▲중소기업인·소상공인을 괴롭하는 범죄 ▲국가재정 건전성 저해 비리 ▲전문 분야의 구조적 비리 등을 시급히 척결해야 하는 부정부패라고 언급했다. 그동안 기업 수사와 지역 토착비리, 서민 생활 안정을 해치는 범죄 수사로 상당한 성과를 거두기는 했으나 고질적인 부정부패가 근절되지 않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정치인·지방자치단체장 등…칼날 어디까지 뻗칠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제3자 기부행위’ 현직 의원 3명 수사의뢰
새해 박근혜 대통령 집권 4년차를 맞아 총선을 앞두고 정부의 공직기강 확립 및 고강도 사정 드라이브가 본격화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황교안(58) 국무총리가 지난 6월 ‘내부 자정 시스템 강화’를 강조하며 “반부패 개혁을 확실하게 추진하겠다. 비리(非理)와 적폐(積弊)를 도려내고 비리가 자생하는 구조를 과감하게 제거하겠다”면서 “각 기관의 내부 감찰과 감사 기능을 보강하는 등 내부 자정 시스템을 강화하겠다. 부패척결 관련 법(法) 집행기관 간 협업(協業)도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현재 총리실은 각 부처와 공동으로 점검단 등을 구성해 비리구조를 찾아내고 개선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무엇보다 일시적으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가 해체하는 방식이 아니라 비리가 근절될 때까지 상시적으로 운영하는 방식이 눈길을 끌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각 부처 내부의 감사팀에 독립된 권한을 부여해 내부 자정기능이 활발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법무부 장관 출신인 황 총리를 정점으로 검찰과 감사원 등 주요 사정기관이 총선 전까지 부패척결과 공직감찰을 위한 강도 높은 협업체계가 구축된 것 아니냐는 전망도 제기했다. 정부의 이런 공직기강 확립 움직임은 임기 후반부로 갈수록 힘이 빠지면서 국정과제 추진에도 속도를 내기 어렵게 되는 상황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나아가 박 대통령의 임기가 2년 이상 남았지만, 4월 총선을 앞두고 여권(與圈) 내 권력 변화에 맞물려 공무원 사회에서 생길 수 있는 공직사회의 이른바 ‘줄대기’를 차단하겠다는 뜻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상황은 18년 전과 매우 비슷한 상황이다.
18년 전과 비슷한
‘司正 신호탄’
김대중(金大中) 정부 초기인 1998년 6월 19일. 청와대는 박주선(66) 법무비서관 주재로 국가기강 확립대책 실무협의회를 열고 사정 국면 돌입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부정부패를 ‘국가 존립 저해 범죄’로 규정하고, 수사과정에서 드러나는 정치인·관료·경제인 비리를 엄벌하겠다고 밝혔다. 이때부터 숨가쁜 수사가 시작됐다. 검찰은 청구그룹 사건 비리, 공천(公薦) 비리 등과 관련해 현역 국회의원 10명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국회로 보냈다. 정치인 사정으로는 가히 역대 최대라고 할 만했다. 당시 여·야 중진이던 정대철(71), 이기택(78)씨도 각각 구속되거나 불구속 기소됐다.
앞서 IMF(국제통화기금) 환란(換亂) 수사와 관련해 강경식(75) 전 부총리, 김인호(73) 전 경제수석도 구속됐다. 역대 정권들은 크건 작건 사정 작업을 벌였다. 1993년 집권한 김영삼(金泳三) 문민정부는 고위공직자 재산공개를 시작으로, 군(軍) 하나회 숙청 등 집권 1년을 개혁과 사정으로 시종했다. 다만, 정·관·재계 인사들을 망라한 대대적인 사정 드라이브는 김대중 정부 때가 사실상 마지막이었다고 법조계 인사들은 말한다. 노무현(盧武鉉)·이명박(李明博) 정부 때는 전국적으로 동시다발적인 사정을 벌이진 않았다. 김대중 정부의 사정으로부터 18년이 흐른 지금, 또 다시 전방위적인 사정한파가 휘몰아칠 태세다.
황교안 총리는 지난 7월 박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 참석해 “국민 생활과 밀접한 분야의 각종 비리에 대해 비리유형별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해서 단속과 함께 제도 개선을 아우를 수 있는 총체적인 대책을 추진하겠다”며 고강도 사정을 예고했다. 1998년 청와대가 부정부패 척결을 강조했던 것과 비슷하다.
김대중 대통령은 사정 작업 1년 뒤인 1999년 2월 국민과의 대화에서 “상층부는 부패가 없어지고, 중하위부도 많이 없어졌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그 뒤로 부패가 사라졌다고 믿는 사람은 없었다. 전직 검찰 고위 간부 출신 변호사는 “복지부동하는 공직사회에 대응하려면 사정이 정공법(正攻法)으로 소리소문 없이 상시적으로 의지를 갖고 해야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선관위, 입법로비 의혹
도선사협회 13명 검찰고발
한편, 중앙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이인복 대법관)는 지난 12월 21일 이른바 ‘입법(立法) 로비’를 위해 국회의원 후원회에 불법 정치자금을 기부함으로써 정치자금법을 위반한 혐의로 한국도선사협회(회장 나종팔) 관계자 13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또 도선사협회가 확보한 전시회 공간을 지역구 업체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소개한 의혹을 받고 있는 현역 국회의원 3명에 대해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선관위에 따르면 도선사협회 본부의 A씨와 지회장 11명은 도선사 정년 연장 법안을 입법화하려는 목적으로 지난 2012년 4월부터 올해 10월까지 법인 관련 자금 2억1320만 원을 31개 의원 후원회에 기부했다.
특히 A씨는 지난해 각 지회에 후원 대상 국회의원과 후원금액을 지정하고 회원 131명의 이름으로 기부금을 나눠 낸 것으로 조사됐다.
이와 별도로 A씨는 협회 소속 B씨와함께 ‘2015년 한국농산어촌 산업대전’에 총 5060만 원을 후원해 23개의 전시공간을 배정받은 뒤 일부 국회의원에게 무료로 배정받았다고 말하고 이들 의원의 지역구 업체가 사용할 수 있도록 제공한 혐의도 받고 있다.
선관위는 이와 관련, 3명의 국회의원이 도선사협회에 전시공간을 기부하도록 지시하는 방식으로 제3자 기부행위를 제한한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는지 여부를 밝히기 위해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고 밝혔다.
선관위는 “이번 조사를 위해 국회의원과 도선사협회 관계자 등 111명을 대상으로 금융거래자료 및 신용카드 사용내역을 확인하고 컴퓨터와 휴대전화에 남아있는 증거 확보를 위해 각종 디지털 정보를 분석해 범죄 단서를 찾는 이른바 ‘디지털 포렌식(Digital forensics·컴퓨터 법의학이라 불리는데 전자증거물을 사법기관에 제출하기 위해 휴대폰, PDA, PC, 서버 등에서 데이터를 수집 분석하는 디지털수사과정)’ 방식을 동원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