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치·폭행·살인, 알려진 것보다 많아 한국 경찰 수사팀 현지 파견도

필리핀 한국 교민 또 피살

2015-12-28     김현지 기자

[일요서울 | 김현지 기자] 필리핀에서 거주하는 한국 교민들이 피살되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올해 공식적으로 집계된 것만 11명. 하지만 일각에선 11명보다 그 수가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알게 모르게 발생하는 살인사건을 필리핀 경찰이 다 파악할 수 없을 것이란 지적 때문이다. 유독 한국인들의 피살 소식을 자주 접하게 되는 배경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사상 처음으로 한국 경찰 수사팀이 필리핀으로 파견돼 필리핀 경찰과 공조수사를 진행했다.


유독 한국인 표적…올해에만 11명 피살돼 
무시, 비하 등이 원인? 사건 더 많아 심각 


해외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해 수사팀이 파견되는 등 현지 경찰과 공조수사에 나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런 배경엔 ‘필리핀 내 잇따른 한국인 피살’이 있다.


최근 필리핀에 거주하고 있는 한 남성이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괴한의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현지시간으로 지난 20일 오전 1시30분께 필리핀 바타캉스 주 말바르시에 거주하는 남성 A씨(57)가 그의 자택에서 피살됐다. A씨는 현지에서 건축사업을 하고 있던 중으로, 4명의 괴한에게 총격을 받았다. 이후 괴한들은 A씨의 금품을 훔쳐 달아났다.


경찰은 단순 강도와 청부살인, 두 가지의 경우에 맞춰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청부살인의 경우 사업상 원한관계 등에 초점을 맞췄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최근 A씨가 부인과 이혼소송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이 새롭게 알려져, 이 부분에 대해서도 수사망을 넓히고 있다. 이 여성은 A씨와 7~8년 전부터 별거 중이었고, 이혼소송과 관련해 재산분할 다툼 등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둘 사이에 청부살인 협박까지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에만 필리핀에서 피살된 한국인은 총 11명이다. 2012년부터 집계된 피살자는 총 39명으로, 약 1/3의 희생자가 올해에만 발생했다. 일각에선 필리핀 내 한국 교민들의 피살이 증가하고 있는 이런 사실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이에 강신명 경찰청장은 지난달 초 필리핀에서 강력사건이 발생할 시 합동수사를 하기로 필리핀 경찰과 협의하기도 했다. 이번 수사팀 급파는 A씨의 사망 및 강 청장의 발언에 대한 후속조치인 셈이다.

한국인 타깃, 이유는?

이번 A씨 피살 사건을 계기로 한국인들이 유독 필리핀에서 피살되는 사건이 증가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필리핀엔 다양한 인종이 사는 만큼, 유독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살인 사건을 두고 그 원인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필리핀에서 약 2년간의 유학생활을 했던 B(여·25)씨는 일련의 피살 소식에 대해 ‘자업자득’이라는 입장이다. B씨는 “(내가 본) 한국인들은 전반적으로 동남아인들을 자신들보다 하등하다고 생각한다”며 “이런 인식이 필리핀 사람들에 대한 무시, 차별 등을 낳았고 이러한 문제가 필리핀과 한국인 간의 감정적 문제를 만든 사례를 많이 봤다”고 말했다.


또한 B씨는 실제로 필리핀에선 인건비가 저렴하기 때문에 일반 가정집에 여러 명의 하우스메이드(하녀와 비슷하게 고용된 여성)들이 기본적으로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유독 한국인 가정에서만 (필리핀 하우스메이드에게) 온갖 일을 시키는데다, 길거리에서 대놓고 필리핀 사람들을 무시하고 폭행하는 경우를 더러 봤다”고도 언급했다.


다른 유학생 C(여·26)씨 역시 이런 의견에 동조했다. C씨는 “이 외에도 경제적이 이유가 있을 수 있다”며 “한국인들이 현금을 많이 들고 다니고 현지에서 소비도 꽤 하기 때문에 필리핀 사람들이 ‘한국인들은 부자다’라는 인식을 가진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B씨 역시 “내 지인의 경우 현지에 있는 윤락업소를 수시로 드나드는데, 업소여성에게 거금인 양 돈을 많이 준다”며 “하지만 한국인의 입장에서 봤을 때 그가 주는 돈은 적은 돈이라, 이를 통해 (그 여성에게) 생색을 낸다고밖에 생각이 들지 않았다”고 말한 바 있다. 현지에 거주하는 일부 한국 교민들이 필리핀 사람들을 상대로 차별적 발언을 하며 무시하거나, 경제적 풍족함을 생색내는 등의 행위가 저항감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감정적 갈등 유발

실제로 감정적 갈등 및 한국인들에 대한 선입견이 연이은 피살 및 알려지지 않은 폭행 등의 사건으로 나타났다. 이번 A씨 피살 사건의 경우엔 수사가 진행되고 있어 명확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현재까지 원한관계에 의한 청부살인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번 사건을 계기로 ‘올 한 해 11명의 한국인들이 피살됐다’는 내용이 논란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유학생 등 필리핀에 거주했던 이들을 중심으로 11명의 사망자 외에 다른 피해자가 상당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알려지지 않은 살인, 폭행 등의 사건이 비일비재하다는 지적이다.


유학생 B씨는 “필리핀에 있었던 2012년부터 최근까지 상당히 많은 피해 혹은 피해를 당할 뻔한 사례들을 접했다”며 “실제로 나 역시 (본인이 다녔던 학교 앞에 있는) 육교 위에서 필리핀 사람이 칼로 허리를 찌르며 위협한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지갑은 물론, 안에 있는 돈도 모두 주겠다’고 말하며 ‘나는 중국인이다’란 사실을 강조해 말했더니 지갑만 통째로 가져갔다”고 덧붙였다.


또한 B씨는 “본인과 동갑 학생이 필리핀 남성에게 총에 맞아 살해된 사건도 있었다”며 “기사로 보도되지 않은 사건들이 많은데, 올해 피살된 11명 외에도 분명 더 있다”고 말을 이었다.


복수의 유학생 및 거주자들은 특히 필리핀에서 납치범들이 유독 한국인을 타깃으로 많이 삼는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택시를 타다 납치를 당할 뻔하거나 실제로 납치됐던 사례 등을 언급하며 우려를 표했다.


한편 한국 경찰 수사팀이 파견돼 필리핀 경찰과 공조수사를 벌였던 만큼, 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yon88@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