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잡힌 거물 무기중개상 최윤희 로비수사도 조여간다
군·검찰, ‘방산비리’ 수십억 유출 정황 포착
[일요서울 | 송승환 기자] 군과 검찰에 따르면, 금품로비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무기중개상 함태헌(59)씨가 정부를 상대로 납품 사기를 벌여 챙긴 수익을 미국으로 빼돌린 정황이 포착됐다. 군과 검찰은 은닉 자금의 존재와 사용처 등을 확인하기 위해 미국 정부에 사법공조를 요청했다. 지금 실체에 따라 함씨가 관여한 여러 방산 납품 비리는 물론 최윤희(62) 전 합참의장 등 군 수뇌부를 겨냥한 금품 로비 수사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20일 법조계와 방산업계에 따르면 방산비리 정부합동수사단(단장 김기동 검사장)은 최근 미국 법무부와 연방수사국(FBI)에 함씨가 대표로 있는 무기중개업체 S사의 미국법인 계좌 및 함씨 개인계좌 입·출금 자료를 요청했다. 미국 국적인 함씨는 시험평가서 조작으로 문제가 된 해상작전헬기 ‘와일드캣’(AW-159), 격발장치 결함으로 논란을 일으킨 K-11 복합소총을 중개하거나 납품한 인물이다.
美에 사법공조 요청…계좌 입출금 내역 요구
합수단은 함씨가 주도한 단안형 야간투시경, 기관총 주·야간조준경 사업 과정에서의 수상한 자금 흐름을 눈여겨보고 있다. 이들 장비의 납품 규모는 무려 2600여억 원에 달한다.
S사 한국법인이 핵심부품인 영상증폭관을 해외에서 수입 중개하고 함씨가 실질적으로 소유한 또 다른 방산업체 E사가 우리 군에 완성장비를 납품했다. 합수단은 이 과정에서 S사 한국법인이 영상증폭관의 수입 원가를 부풀려 정부 납품대금 88억여 원을 가로챈 사실을 확인하고 실무책임자인 S사 이사 신모씨를 올 9월 구속 기소했다. S사와 E사는 동일인 소유여서 원칙적으로 중개수수료를 받을 수 없다. 하지만 S사는 E사가 소유주가 다른 별개 회사인 것처럼 꾸며 중개수수료를 타내는 방식으로 수입 원가를 부풀렸다. 합수단이 S사 미국법인에도 수십억 원의 불법 중개수수료가 흘러들어간 단서를 잡고 미국 당국에 사법공조를 요청했다. 합수단은 정부를 상대로 한 납품 비리의 정점에 함씨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정부는 합수단의 공조 요청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함씨는 과거 미국 당국의 승인 없이 군수물자를 수출한 혐의로 FBI의 수사를 받은 적이 있다.
미국 현지 계좌 내역이 확인되면 함씨 수사도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계좌 성격이 단순 범죄수익 은닉용이 아닌 금품로비 자금의 ‘원천’일 가능성도 있다.
이 계좌의 자금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와일드캣, K-11 복합소총 등 다른 방산비리의 실체도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합수단은 기대하고 있다. 함씨가 방산장비 납품을 추진하며 금품로비를 한 정황은 이미 여러 곳에서 드러났다.
최 전 의장과 예비역 장성 출신인 정홍용 국방과학연구소(ADD) 소장의 아들, 국책연구기관 책임연구원의 친동생, 대기업 계열 방산업체 임원 등에게 금품이 건네졌다.
합수단은 이들 외에도 함씨가 전·현직 군 관계자와 그 가족을 광범위하게 접촉한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합수단은 최근 뇌물공여 및 배임수재 혐의로 함씨의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에서 기각됐다. 합수단은 최근 최 전 의장의 부인 김모씨를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김씨는 함씨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 자주 드나드는 등 함씨와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사업을 준비하던 최 전 의장 부부 아들은 함씨로부터 2000만 원을 받았다가 1500만 원을 돌려준 정황이 드러난 상태다. 최 전 의장은 2012년 와일드캣이 우리 군의 해상작전헬기로 선정될 당시 해군참모총장이었다.
정갑윤 국회부의장
“防産비리 사범 총살해야”
우리 군이 이 정도로 부패했나. 합참의장을 비롯해 해군·공군참모총장 등 예비역 장성들이 방위사업 비리나 군사기밀 유출 혐의로 줄줄이 사법처리 수순을 밟고 있다. 자신의 자리를 이용해 부정하게 금전적 이득을 취하는 사람들이 군을 지휘했다는 사실이 한심하다는 지적이다. 앞으로 합수단의 수사가 진행되면서 방산 비리사건들이 추가로 드러나고 체포되는 전현직 군인들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군(軍)피아’로 불리는 예비역 장성·장교들이 전역 후 방산업체의 이해관계에 휘둘리고, 금전의 유혹에 빠져 비리를 저지르는 행태가 이번 기회에 근절돼야 한다는 여론이다. 합수단은 방산 비리가 이처럼 고질화된 원인으로 방위사업청의 감독 시스템이 허술하고, 군문화가 예비역과 유착하기 쉬운 폐쇄적 구조로 돼 있으며 비리 예방기관의 기강이 해이해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방위사업 비리가 우발적이고 일회성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각종 폐해가 누적돼 발생한 구조적 비리라는 의미다. 이런 지적에 상응하는 전면적인 쇄신이 요구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동안 합수단이 적발한 방위사업 비리로는 통영함·소해함 장비 납품 비리를 비롯해 해군 정보함 사업비리, 공군전자전 훈련장비 납품 비리, K-11 복합형 소총 납품 비리 등이 대표적이다. 불행하게도 육군과 해군, 공군, 방위사업청이 모두 비리에 연루됐다. 이 중에서도 해군이 비리에 연루된 경우가 많았는데, 기소된 전·현직 군인 38명 가운데 무려 28명이 해군이었다.
특히 현역 해군 소장 1명은 해상작전헬기 도입 비리로 구속기소됐고, 황기철(58) 전 해군참모총장이 통영함 사건에 연루됐으며 정옥근(62) 전 해군참모총장은 해군 호위함 납품과 관련해 뇌물을 받은 혐의로 사법처리됐다.
또 해군 최신예 214급 잠수함은 잠항능력을 결정하는 핵심장비인 연료전지가 시운전 기간에 100번 이상 멈추는 결함을 보였는데도 3척이 그대로 인도됐고, 이 잠수함들은 최장 6년 동안 구형처럼 운용됐다. 천안함 폭침 사건을 계기로 최첨단 수상 구조함을 표방하고 건조된 통영함은 음파탐지기가 무용지물이라 발이 묶였다.
방위사업 비리 수사를 통해 방위사업청도 심각한 결함을 드러냈다. 특히 전·현직 군인의 유착 관계로 인한 비리는 반드시 끊어내야 할 고질병으로 확인됐다. 이미 정부는 방사청의 현역군인비율을 현행 50%에서 30%로 축소하고 핵심 기능인 무기획득사업을 수행하는 사업관리본부에서 현역 장성으로 보임되던 7개 국장급 직위 중 4개 자리를 일반직 고위공무원으로 전환하는 문민화 확대 방안을 마련한 바 있다. 또 한민구 국방장관은 사업관리체계를 개선하고 견제·감시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방위사업혁신 종합대책을 수립할 것도 약속했다. 그 밖에도 필요한 개선책은 없는지 관련 당사자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한다는 의견이다.
국회 부의장인 새누리당 정갑윤 의원은 지난 19일 “방산(防産)비리 사범들은 총살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정 부의장은 이날 김수남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방산비리를 척결, 엄단(嚴斷)해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런 사범들 때문에 제가 사형제 폐지에 앞장서지 못하고 있다”고도 했다. 방산비리에 분노한 국민의 여론을 대변하는 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