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부영·피죤·아워홈 ‘사장님 수난사’
[일요서울|강휘호 기자] 전문경영인 수난사(受難史)가 끊이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의 기업들은 대부분 오너와 그 일가 중심의 가족 경영 체제로 운영돼 왔다. 하지만 전문경영인이 경영 의사결정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전문경영인 체제의 중요성과 필요성이 부각되면서, 적지 않은 기업들이 전문경영인 체제로 돌아섰다. 다만 아직까지 전반적으로 전문경영인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모양새는 아니다. 그 중에서도 특정 기업 몇 군데는 벌써부터 전문경영인들의 무덤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실패의 연속이다.
시장 막론하고 재계 대표적 CEO 무덤은 어디?
영입할 땐 “기대가 크다” 퇴임할 땐 “개인적 사유”
전문경영인 무덤은 시장을 막론하고 나타난다. 우선 금융권에서는 ‘장수 경영인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평가마저 나돌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역대 KB금융 회장들이 연이어 풍파를 만나 자리를 떠나야 했던 일이다.
KB금융은 김정태, 황영기, 강정원, 어윤대 회장 등이 모두 징계를 당했고 임영록 회장 역시 이를 비켜가지 못했다. 금융당국의 철저한 조사와 감시를 받으며, 단 한 명도 명예롭게 물러나지 못한 것이다.
고(故)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은 2001년 초대 통합 국민은행장을 맡은 뒤 2004년 10월 사퇴했다. 당시 김정태 전 은행장은 국민카드와 은행의 합병 과정에서 회계기준 위반을 했다는 이유로 사퇴했지만, 그 이면에는 금융당국과의 불편한 관계도 한몫했다고 전해진다.
김정태 전 은행장을 차치하고 KB금융그룹 수장을 살펴봐도 어윤대 전 회장은 경징계를 받았고, 임영록 회장과 이건호 행장까지 합치면 6명의 전문경영인들이 금융당국의 제재를 받은 셈이다.
전문경영인들의 무덤 자리 이야기를 할 때 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곳은 부영그룹이다. 특히 부영그룹의 계열사 부영주택은 전문경영인들의 자리 이동이 너무도 빈번해 지적을 받은 바 있다.
부영주택의 최고경영자들은 처음에는 야심차게 영입됐으나 불과 몇 개월도 채우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두기를 반복했다. 호텔신라 상무이사 출신 사장급 전문경영인으로 파격 영입돼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안준호 부영주택 대표이사가 사임한 것은 채 5개월이 걸리지 않은 기간이었다.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이러한 경우가 안준호 부사장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1월말 부영주택 대표이사에 선임됐던 강시우 전 제주도청 도시본부장은 불과 3개월여, 후임으로 선임됐던 최수강 전 중앙건설 사장도 두달여가 지나고 일신상의 이유를 대고 자리를 떠났다.
일각에서는 부영그룹 안에서 보수적인 사내문화와 가시적인 실적에 대한 요구가 이어졌고 그런 분위기가 부영주택, 나아가 부영그룹이 전문경영인의 무덤으로 불리게 된 이유가 된 것이라고 수군거리기도 했다.
중견 생활용품 업체 피죤 역시 말할 것도 없다. 피죤 사장들의 재임기간을 살펴보면 그나마 2013년 재직했던 조원익 사장이 9개월로 최장 기간 사장을 지냈다. 이윤재 회장의 폭행과 배임 등 사태가 세상에 알려진 계기가 된 인물인 이은욱 전 사장은 4개월 만에 떠났다.
김준영 전 사장(2007년 8월~2008년 3월)은 7개월, 김동욱 전 사장(2008년 6~8월)은 2개월, 유창하 전 사장(2010년 2~5월) 역시 3개월만 사장 자리에 머물렀다. 나머지 기간은 공석으로 비어 있었다.
피죤에서 2007년 이후 이어진 전문경영인 사장들의 조기 퇴진 행렬은 강성으로 알려진 이윤재 회장의 이미지 덕분에 ‘회사의 오너와 전문경영인 간 의견 차이가 원인이 아니겠느냐’는 시선이 많았다.
이렇듯 대대로 전문경영인들의 무덤으로 일컬어지는 곳이 있는 반면, 올해 새롭게 회자되는 기업들도 있다. 외식전문 업체인 아워홈과 또 한번 화장품 신화를 일으키려 준비하는 토니모리가 그 주인공이다.
현재진행형
아워홈은 오너 일가와 경영진 간 갈등으로 6개월 만에 사장이 3차례 바뀌는 등 내홍을 치르며 뒤숭숭한 한 해를 보냈다. 괜한 세력다툼으로 인해 깨끗함을 추구하는 기업이미지도 타격을 받았다.
실제 아워홈은 올 1월 이승우 전 사장 사임 직후 김태준 전 사장을 영입했지만 그는 결국 4개월 만에 회사를 떠났다. 김태준 전 사장 후임으로 지난달 말 이종상 급식사업부 상무를 신임 대표이사로 임명했지만 한 달도 안 돼 이승우 전 사장을 다시 불러 들였다.
토니모리는 2년 동안 최고경영자 4명을 교체해 새로운 경영인들의 무덤으로 자리 잡았다. 오죽했으면 배해동 토니모리 회장이 4명의 전문경영인을 교체한 뒤 직접 최고경영자에 올랐을까. 그 가운데 올해 1월 영입한 호종환 사장은 1개월 만에 돌연 자리를 내놨다.
현재는 이달 초 양창수 신임 사장과 윤영로 신임 부사장을 공식 임명한 상태다. 창업주인 배해동 회장이 직접 경영 전면에 나선 지 8개월 만의 변화다. 양창수 사장이 1년도 채 버티지 못하고 나간 최고경영자들의 한을 풀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한편 전문경영인들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기업들이 하는 이야기는 대부분 일맥상통한다. 영입할 때는 “능력 있는 전문경영인을 영입했고, 향후 기대가 크다”고 말한다. 퇴임할 때는 “개인적인 사유로 사임했다. 자세히는 말하기 어렵다”고 대변하기 일쑤다.
다만 한 재계 관계자는 “내가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의 전문경영인들의 퇴임 사유는 개인사유 반, 오너가와의 대립 반 수준이다”면서 “기업 입장에서는 말할 수 없는 이유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상당히 애매한 상황에 놓이는 때가 많을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