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점 입찰 후폭풍
갱신→경쟁으로 바뀌며 ‘5년 시한부’ 논란
[일요서울|박시은 기자]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된 면세점 선정을 둘러싼 후폭풍이 거세다. 세간의 관심을 부른 시내면세점 선정 전쟁은 두산과 신세계, 롯데의 승리로 끝났다. 이번 면세점 선정은 롯데의 절반의 승리와 SK 탈락이란 결과로 인해 갱신에서 경쟁으로 바뀐 제도 비판의 불씨를 지폈다. 5년 시한부 특허란 논란이 일면서 찬·반 양론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특허 기간 10년으로…인력 흡수 가능”
재계의 시선을 집중시킨 서울시내 면세점 사업자 선정 결과는 두산과 신세계, 호텔롯데의 승리로 끝났다.
관세청의 심사결과에 따르면 SK 네트웍스의 워커힐 면세점은 신세계에 돌아갔다. 롯데면세점 소공점은 수성에 성공했지만 월드타워점은 두산에게 넘겨줬다. 관세청은 지난 14일 “서울시내 면세점 사업자 선정을 위한 프레젠테이션(PT) 심사를 벌인 뒤 이 같이 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서울시내 면세점을 둘러싼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전쟁은 끝났지만 5년마다 특허만료 시한이 정해진 제도 자체에 대한 논쟁이 불거진 것이다. 5년 특허만료 제도는 면세점 사업의 지속성을 보장하지 못하고 고용불안 등을 야기한다는 지적이다.
과거 면세점 특허는 기간이 만료됐을 때 자동으로 갱신됐다. 매출액의 0.05%에 해당하는 특허수수료만 내면 갱신이 됐다. 때문에 스스로 사업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평생 사업의 성격을 띠었다. 특허기간이 10년으로 정해져 있긴 했지만 형식상의 절차였다. 이로 인해 롯데나 신라 등 기존 면세점은 20년 이상 면세사업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2013년 관세법이 개정되면서 특허 갱신 요건이 사라졌다. 또 특허기간도 10년에서 5년으로 단축됐다. 특허기간 단축과 갱신 요건 상실로 기존 업체들도 심사를 통과해야만 특허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결과 SK네트웍스는 1992년부터 23년간 운영해온 워커힐면세점의 특허권을 신세계에 넘겨줬다. 호텔롯데도 1989년부터 25년간 운영해온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잠실점)을 두산에 넘겨줬다. 소공점은 지켜냈지만 월드타워점은 두산에게 넘어가 절반의 승리라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월드타워점의 경우 지난해 3000억 원을 들여 기존 잠실점에서 월드타워점으로 이전·확장했기 때문에 이번 결과에 대한 충격이 더 큰 모양새다. SK네트웍스도 지난해부터 1000억 원을 투자해 면세점 확장에 나섰지만 특허 상실로 물거품이 됐다.
이번 선정 결과에서 승자가 된 이들의 마음도 마냥 편한 것은 아니다. 5년 후 다시 이번과 같은 전쟁을 치러야 하고, 특허를 뺏길 수 있는 가능성의 문이 항상 열려 있기 때문이다.
면세사업의 지속성이 불투명해지면서 기업들은 중·장기 투자에 나서기가 부담스러워졌다는 분위기다. 면세점 특성상 초기에 시설비 등 대규모 투자가 선행돼야 하는데 사업 지속성이 불투명하면 5년 내 투자 원금 회수가 어려운 사업에 대한 투자의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또 사업 철수로 인한 종업원들의 대량 실업문제 발생에 대한 우려도 있다.
치열해진 경쟁
하지만 이 같은 불만이 합당한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시선도 있다. 5년 만에 손을 털고 나와야 하는 사업인데도 왜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하고, 면세점을 선점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난 7월에 있었던 서울시내 면세점 신규특허 선정 당시 기존 면세사업자들인 롯데와 신라, SK네트윅스를 비롯해 신세계, 현대백화점, 이랜드 등 대기업 7곳이 출사표를 던졌다. 이 때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면세점 후보 기업 PT 장소를 찾아가 발표자들에게 “너무 걱정 마세요. 잘 되면 다 여러분 덕이고, 떨어지면 제 탓이니까요” 라는 격려의 말을 남겨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번 서울시내 면세점 선정은 경쟁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 관세청은 보안에 철저히 신경쓰며 지난 7월 신규 면세 사업자 선정 당시 진행됐던 간담회도 생략했다. 또 사전 정보유출을 방지하기 위한 금속탐지기와 엑스레이 탐색기 등을 도입하고, 개인 휴대전화 사용도 제한했다.
이 같은 분위기로 미뤄 봤을 때 경쟁에 참여한 기업들은 모두 5년짜리에 불과할 수 있는 사업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뛰어들었다. 신세계의 경우 지난 7월 한 번의 실패를 경험했음에도 이번 서울시내 면세점 선정에 출사표를 던졌고, 두산은 그룹 주력사업과 거리가 먼 사업임에도 그룹 역량을 총동원했다.
때문에 현재의 우려들은 가정에 근거한 과도한 비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손익계산에 치밀한 대기업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면세점 사업에 뛰어든다는 것은 그만큼 돈이 된다는 얘기로 불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5년 뒤 특허를 다시 따내기 위한 공격적 투자의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에 부담감으로 투자가 위축된다고 보기 어렵다는 주장도 나온다.
또 고용불안 역시 면세점사업의 특성 상 인력을 많이 쓰지 않아 인력 흡수가 가능하다. 지난 14일 면세점 선정 발표 후 롯데와 워커힐은 스스로 100% 고용승계를 약속했다. 이들의 특허를 이어받을 신세계와 두산 역시 최대한 협력하겠다는 입장이다. 신세계의 경우 현재의 워커힐보다 더 넓은 매장을 준비 중이므로 추가 고용 여력이 가능할 전망이다.
때문에 면세점 선정 방식의 변화보다 특허 유지 기간을 10년으로 늘리는 것이 더 현실성 있다는 주장도 있다. 10년으로 늘리게 되면 해외에서 물건을 들여올 때나 협상할 때, 가격경쟁력이 떨어지거나 협상력이 떨어질 수 있는 부분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는 것이다.
면세점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제도 손질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면세점 운영 기업들은 “현행법에 착실히 따르겠다”고 밝혔다. 한 관계자는 “지금으로서는 제도에 따라 준비하는 것이 최선이다”며 “면세점을 운영하면서 향후 환경과 상황 변화에 따라 적절하게 대처해 나가겠다”고 전했다.